글쓰기라는 축복
이과 출신, 창작과는 아무 연관 없는 분야에서 일하는 직장인으로 굳이 글쓰기와의 연결 고리를 찾아본다면 보고서 이외에 글쓰기를 할 이유가 없던 나였다. 이사를 위해 짐을 정리를 시작으로 우연한 기회를 통해 개설 후 방치되어 있던 블로그에 책 리뷰를 작성하면서 글쓰기 인생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글쓰기를 하는 나도, 그 글을 제일 먼저 읽은 나도 손발이 오글거리는 수준의 글쓰기밖에 안 되었지만 처음부터 유명한 작가님처럼 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타인의 눈에 대한 의식이 없어졌다.
루티너리의 삶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변화의 시도는 늘 제자리로 돌아왔고 내가 꿈꾸던 루티너리의 삶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삶의 모습이었다. 40이 넘은 나이에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는 것에 대해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제2의 인생을 살고 싶었기에 삶의 중대한 결정을 해야만 했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닌 결국 나는 변화를 선택했다. 굳은 결심으로 시작한 도전도 현실 앞에서는 한낮 의지에 불과했고 매일 책 읽기와 글쓰기를 하고자 했지만 일주일에 3번 정도 하면 정말 많이 한 것으로 생각해야만 했다.
그래도 난 포기하지 않았다. 기회가 되는대로 책 읽기와 글쓰기를 하려고 시도했고, 실패해도 다시 시도했으며 몸이 기억할 때까지 시도하고 또 시도했다. 무모해 보일 수 도 있지만 그래도 난 변화를 위해서 무엇이라도 해야만 했고 그만큼 간절했다. 8년 간의 셀러던트로 살아왔지만 매너리즘이 찾아왔고, 배움에 대한 열정도 점점 학위 콜렉터로 변질되어 감을 느끼던 때였다. 그래서 과감히 셀러던트의 삶을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8년 동안 나를 나타내던 정체성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지만 성장에 대한 갈급함으로 변화를 선택했다.
문맥 상으로 앞뒤 맞지 않고, 논리적으로도 빈약했던 글쓰기가 하루 이틀 한다고 변할 수는 없었다. 부끄럽지만 부족한 내 글쓰기를 오픈하면서 글쓰기를 통해 글쓰기를 배우고 있다. 글루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글쓰기를 하게 되었고 이제 9개월 차에 접어들면서 글린이의 수준을 거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다.
처음에는 하얀 백지를 보며 당황스럽던 내 마음도 지금은 정해진 시간에 매일 하려고 하는 반자동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물론 상황이 안 될 때는 미리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해야만 한다고 생각해서 아무 불만 없이 매일매일 한다. 아니해야만 하며 하루라도 안 하면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과거로 돌아갈 것만 같은 무의식적 불안감이 있다.
만약 나 혼자 했더라면 지금처럼 글쓰기를 계속하지 못했을 것이다. 함께 글쓰기를 하는 작가님들이 계셨기에, 그분들의 관심과 응원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나와 나의 글쓰기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농담처럼 했던 “글루틴 130기까지 하겠습니다 “라는 말도 이제는 당연한 것을 여기며 중장기 목표로 설정했다.
글쓰기를 10년 정도 하면 부끄럽지 않은 글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 있는 자신감이 생겼기에 일단 10년 동안은 글쓰기를 할 생각이다. 이제 다음 달에는 10기라는 두 자리의 기수가 되는 글루틴 프로젝트는 매일매일 나를 변화시키고 성장의 길로 인도하는 마법이다. 이 세상 사람 아무도 알 수 없는 변화이기에 나만이 알 수 있지만, 나는 글쓰기로 변화를 표현하고 이 글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도 이 변화를 나누고 있다.
매일매일 글쓰기를 하며 나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통해 나에게 늘 물어본다.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정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지를 묻고 있지만 아직 나는 모르겠다. 사춘기가 훌쩍 지난 지금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 어리석게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죽는 순간까지 글쓰기를 하며 나 자신에게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정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끊임없이 물어볼 것이다. 이런 질문과 대답의 과정에서 나는 성숙한 나의 내면을 가지며 성찰의 시간을 통해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글쓰기는 나에게 있어 엄청난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