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루틴9기의 인증률
작년 12월, 1기를 시작으로 다음 달 10기의 출발을 앞둔 글루틴 프로젝트는 ‘글쓰기 루틴’을 만들자는 브런치스토리 팀라이트 작가님들의 무모한 기획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울며 한 달 글쓰기라는 가칭으로 기획된 것이지만 쉼과 글감의 충전을 위해 주말은 제외하고 한 달에 20개의 글쓰기 하는 규칙이 적용된다.
주말을 제외하고 한 달에 20개의 글쓰기를 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글쓰기의 소재 제한은 없지만 막상 글을 쓰려고 하면 생각나지 않고 나를 망막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글감의 부재이다. 사실 일상의 모든 것은 글감이 될 수 있는데 출근길 창밖으로 본 풍경, 오늘 점심 식사 메뉴, 오후의 커피 한 잔 등 나의 경험과 느낌이 묻어 있는 것은 아주 훌륭한 글감이 된다.
하지만 주위에 글감이 넘쳐남에도 글감을 선택하는데 늘 어려움을 겪는다. 무엇을 써야 할지 결정하기 어려움을 느낄 때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바로 ‘글감 달력’이다. 처음에는 운영진으로 참여하시는 작가님들께서 선정해 주셨지만 8기부터는 마지막 미팅 때 참여하는 작가님들이 함께 모여 직접 글감을 모으고 선정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내가 직접 고른 글감이라 그런지 미리 글쓰기 재료를 수집하고 글쓰기를 하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더 수월하게 작성할 수 있다. 글쓰기의 재료가 없을 때 글감 달력보다 더 확실한 지원군은 없을 것이다. 이런 연유로 글감을 수집하는 사람이 되고 있는 요즘 일상 속에서 내 주위를 유심히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다. 관찰함으로 특별함을 찾고 글감으로 연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투영된 특이한 행동이 글쓰기의 자세를 만들어 준다.
글쓰기는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는 행동이지만 이보다 특별한 행동은 이 세상에 없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글로 표현하는 것만큼 특별한 것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 생각과 느낌은 나만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그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특별한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대중적인 것보다 개인적인 것에도 집중하는 시대이기에 우리는 특별함에 집중해야 하며 특별함은 특별함을 만든다.
8월에 진행된 글루틴 9기는 13명의 작가님들이 참여하셨는데 첫날부터 100% 인증을 시작으로 마지막 날인 어제까지 모든 작가님께서 100% 인증을 하시는 전설적인 기록을 남겼다. 내 기억으로도 1기에 93% 인증도 대단하다고 느꼈는데 20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모든 작가님이 글쓰기를 한다는 것은 엄청난 결과이며 한 개인의 노력으로만 달성할 수 없는 공동체적 정신의 산물이다.
몇 분을 빼고는 실제로 본 적도 없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 교류한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드는 것은 나의 글을 함께 나누고 읽으며 응원하는 문화가 글루틴 속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가족조차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내 글은 함께 글쓰기를 하는 작가님들이 읽고 댓글을 달며 공감하는 행위 속에서 가족보다 더 깊은 소속감을 느끼는 마법에 사로 잡힌다. 정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이 소속감은 이 감정을 계속 느끼고 싶어 계속 글루틴에 참여하게 만든다.
그리고 함께 함의 또 다른 마법이 있어 글쓰기 어려운 상황에 있다 할지라도 자발적인 글쓰기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분위기와 글쓰기를 독려하는 응원이 있기에 짧은 글이라도 쓰게 하며 내일 회식이나 저녁 약속이 있다면 미리 글쓰기를 하게 만드는 강요가 아닌 자발적인 의식의 변화를 불러온다. 이런 변화는 그만큼 글쓰기에 진심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증거라 생각한다.
글쓰기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습관이 아니다. 어쩌면 평생 글쓰기를 한다 할지라도 습관이 되지 않을 수도 있고 잠시 다른 생각을 하면 불안정한 물질처럼 금방 눈앞에서 사라져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글쓰기 루틴을 만들어주는 글루틴에 1기부터 9번 참여하면서 이제는 130기까지 참여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글쓰기를 10년 해보고 정말 나에게 습관으로 자리 잡는지 지켜보고 싶은 마음으로 10년의 글쓰기 생활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