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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Sep 08. 2023

교사에게 강요된 침묵

누구를 위한 침묵인가

 대한민국 국민으로, 교육 분야에서 근무했던 사람으로 현재 학부모의 입장에서 서이초 사태를 보면서 착잡한 심경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극단적인 결과를 선택하게 만든 원인도 중요하지만 교육제도가 현실적인 괴리가 있다는 아쉬움이 더 컸다. 보호받지 못하는 선생님이 과연 학생을 보호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며 교권마저 보장받지 못하는 교육 현실에 대한 분개가 일기도 했다.


 또한 최악의 교권 추락 사태 속에서 과연 교육부와 교육제도는 학교 속 선생님들에게 백년지대계를 수행하기 위한 어떤 도구를 쥐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40대 초반인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솔직히 체벌이 존재했고, 학생이 잘못했을 때의 훈육 방법이기도 했다. 심지어 복도를 지나는데 선생님을 쳐다본다고 뺨을 맞은 적도 있었지만 그것에 대한 불만을 가지지는 않았다.


 지금의 기준으로 본다면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학생이 선생님을 쳐다본다고 뺨을 때리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며 정당화될 수 없을 것이다. 한 인격체가 다른 인격체에서 정당하지 않은 이유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거의 모든 선생님들이 학생을 사랑하고 존중하시지만 이때는 이런 것으로 시시비비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나의 학창 시절보다 더 심한 체벌 경험이 있으신 부모님 세대에서 보는 교사에 대한 시각은 남다른 것 같다. 한창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에 부모님이나 친척들이 장래 교사가 될 것을 추천하셨지만 나는 나의 성향을 알고 있었기에 그들의 추천을 고사하며 교육 분야에는 발도 딛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심지어 아버지, 누나가 기업교육 분야에서 활동하셨지만 나는 교육 분야와 전혀 상관없는 분야에서 일하려고만 했다.


 내가 교육 분야와 거리를 두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보다 피교육자를 책임질 수 없는 역량이 있지도 않았고, 특히 예의 없는 행동에 견딜 수 없는 분노를 가지고 있었기에 더더욱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교사가 되었다면, 벌써 교직에서 쫓겨났을 것이며 심지어 9시 뉴스에 나왔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내가 교육 분야에 거리를 두려고 했던 것처럼 세상의 많은 분야 중 이 분야는 정치적인 관심을 멀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야가 있는데 바로 군인이다. 5.16, 12.12 사태를 통해 군사정권이 득세했던 시기도 있었고, 국방과 안보에 힘써야 할 군인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군사력이 남용되며 힘에 의한 지배가 일어난다는 것을 7,80년대 민주주의 역행의 길을 경험하였다.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해 주는 정치 세력에 대한 무비판적인 동조는 군인 출신 정치인이 장기 집권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고 ‘하나회’ 같은 육사 출신 소수 모임이 서로의 연줄이 되어 투명성을 흐리는 흙탕물이 되기도 했던 것이 정치에 관여하면 안 되는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극강의 상명하복 집단인 군인에게는 비판적 목소리를 낸다는 자체가 항명이자 조직의 치부가 되는 소위 ‘꼴통 짓’이 된다. 까라면 까야하는 조직 문화도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고 아무리 군대라는 조직의 특수성이란 프레임을 적용해도 민주적인 합치가 일어나기를 어렵다고 본다. 최근 용사들의 인권이 많이 향상되었지만 끌려왔다는 무의식적 사고가 존재하는 곳이라 분명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고등교육 기관인 대학교를 포함해서 교육 분야는 군대와 엄청난 차이가 있다. 국가의 미래 초석을 양성하는 기관인 학교에서 선생님의 말 한마디, 정치적 성향 등이 학생에서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 연유로 국가공무원법의 제정을 통해 교육공무원인 교사는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만 하며, 만약 정치적 색깔을 드러내면 범법행위로 처벌받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교사가 민주시민이 아닌 것은 아니다. 분명 교사들도 우리 사회의 시민이고 민주주의의 구성원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교사들에게 정치적 중립을 강요하는 것은 비판적 사고와 시각을 뺐는 것과 같은 행동이다. 학생에게 교육적 가르침을 주기 위해 자신들이 먼저 최소 학사부터 박사과정에 이르기까지 교육의 길을 먼저 걷고 시대정신에 입각한 실용적인 교육을 해야 하는 교사들에게 사실에 기반을 둔 논리적이고 비판적 사고는 교육의 자율성과도 같은 것이다.


 최근 킬러 문항에 대한 발표에 오열하는 학생들을 보고 잘못된 어른들의 판단에 왜 자신의 미래가 불행해져야 하는지 되물었던 인터뷰가 머릿속에 남아 있다. “진료는 의사에게 처방은 약사에게 교육은 전문가에게”라는 말이 지켜지도록 교사에게 무기를 더 줄지언정 있던 무기는 뺏지 말아야 한다.


 교사가 정치적 편향을 가지고 있고, 대한민국 헌제 상 3대 무능력자로 판단하는 미성년자인 학생들에게 무비판적인 정치적 성향을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보다 정의롭고 자유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성숙한 민주시민을 길러야 할 막중한 책임을 부여한 교사에게 눈과 귀를 막고 허공을 허우적거리게 만드는 침묵은 없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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