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산소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
주말에 아내 외할머니 산소에 다녀왔다. 가끔 뜬금없이 아이가 왕할머니가 보고 싶다며 눈물을 글썽일 때가 있어서 지난 일요일에 연휴 전 최적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벌초는 이미 되어 있는 상태라 부담 없이 갈 수 있었다.
아내 외할머니는 왜관에 계신데 집에서 거리가 있기 때문에 가고 싶어도 쉽게 갈 수 없어서 이번 기회에 가기로 했고, 아내는 이런 나의 제안을 고마워하는 눈치이다. 솔직히 나는 운전만 하면 되는 것이라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편도 100km 정도의 거리는 고민 없이 바로 출발하는 것이 내 스타일이니 생색을 낼 필요도 없다.
하지만 나의 외할머니 산소는 어디인지도 모르고 있고,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나 자신을 질책해 본다. 경기도 어디쯤 있다는 말만 들은 적이 있는데 나중에 휴가를 내서 어머니 모시고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삶과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죽음은 인간의 노력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것으로 영원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 인간의 오랜 욕망도 죽음을 거스를 수는 없다. 지금은 의료 기술이 발전해서 기대 수명이 예전과는 달리 증가하고 있지만 그래도 인간은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아내는 외할머니의 첫 손주여서 나는 자연스럽게 첫 손주 사위가 되었고, 아내의 외할머니는 이런 나를 엄청 이뻐해 주셨다. 말로 표현하지는 않으셨지만 항상 할머니댁에 가면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고 하시며 맛있는 것을 많이 사주셨다. 특히 양념치킨을 많이 사주셨는데 내가 좋아한다는 것을 눈치 채신 것 같다.
평소 아내는 한 마리 시켜서 나눠먹어야 하지만 할머니는 늘 내 몫으로 두 마리나 시켜주셨다. 그래서 할머니 집에 오는 날은 늘 체중이 증가해서 가게 되었고 포만감이 주는 졸음운전과 싸워야 할 때도 있었다. 그만큼 손주사위를 잘 먹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할머니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의 외할머니는 우리 부부의 아이에게 증조모와의 관계를 몸소 알게 해 주셨고, 마침 아이도 증손주 중에서는 첫 번째라 알게 모르게 더 이뻐해 주시는 것을 많이 목격했다. 티 안 나게 하시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자신이 먹을 것, 살 것 아껴가시며 모으신 돈으로 손주사위와 증손주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시는 걸 최고의 기쁨으로 아셨던 아내의 외할머니는 암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다. 아이가 크는 모습을 조금 더 보셨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아이도 외증조할머니가 자신을 사랑해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산소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처음 묘소를 조성할 때 개미 때가 꼬여서 아이와 해충제를 뿌리며 잡았던 일도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외증조할머니 산소에 대한 애착이 큰 아이이다.
산소 주위에 밤나무가 있어서 햇밤이 맛있게 익어가고 있었다. 아이는 이 밤을 외증조할머니가 주시는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이곳저곳에 떨어져 있는 밤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나에게 지시했고, 나는 아이의 지시에 따라 열심히 밤을 주었다.
까다로운 아이의 검수를 통해 벌래 먹은 밤은 버리고 속이 꽉 찬 알밤만을 모으니 대략 20개가 넘은 밤을 모을 수 있었다. 여기에 같이 가신 장모님이 주위에서 밤을 엄청 주어 오셔서 아이의 주머니가 터질 정도로 밤을 모으게 되었다.
아이는 가을이 되면 밤을 수확할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고, 오늘 모은 밤은 돌아가신 외증조할머니가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 밤은 삶아서 먹기도 하겠지만 잘 보관하고 있다가 다람쥐에게 줄 생각까지 하고 있다.
자연에서 얻는 것을 자연 속 구원성들과 함께 나누는 마음을 가진 아이가 살아갈 지구에서 나도 아이도 그들과 동증한 구성원일 뿐이다. 인간의 욕심으로 그 구성원들의 먹잇감을 모조리 가져가는 만행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머니가 빵빵해질 정도로 많은 밤을 모은 것은 가을산이 주는 선물이자, 자신의 산소를 잊지 않고 방문해 준 외증조할머니의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를 보며 죽음으로 단절되어 보이는 관계의 끈이 남아 있음을 느낀다.
아이의 외증조할머니는 이제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아이의 마음속에는 늘 자신을 사랑해 주신 왕할머니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