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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Apr 26. 2023

졸업식

아이의 말을 이해하는 시간

어제 사랑하는 아이의 졸업식이었다. 출근해서 업무를 하다가 중간에 잠시 얼굴만 비칠까 하다가, 아이가 처음 경험해 보는 졸업식에 제대로 함께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서 반차를 쓰고 졸업식장으로 향했다. 동래에서 시작된 우리의 집은 아이의 교육을 위해 아내의 직장 근처인 김해로 왔고 이곳에서 아이의 학업에 대한 기억이 시작되었다. 대기자가 많아 대학교 부설 어린이집에 입학하기까지 가정 어린이집부터 다녔지만, 엄마 아빠를 떠나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처했을 아이의 불안감은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공포였을 것이다. 혹여 버려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막역한 두려움 속에 밖으로 보이는 눈물보다 더 많은 눈물을 마음속으로 흘렸을지도 모른다.


 아이는 내가 등원시키고 하원시켜주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관리 업무를 할 때는 시차출근제를 이용해서 등원은 함께 했지만, 신나게 놀고 집으로 향하는 하원은 함께 하지 못했다. 가끔 휴가나 일찍 퇴근하는 날, 하원시키러 어린이집에 가면 복도부터 나를 향해 뛰어오는 모습이 생각한다. 물론 나 손을 붙자고 엄마는 절대 사주지 않은 것을 얻기 위해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지만, 아이가 어린이집을 옮길 무렵 그 편의점은 폐업을 하였고, 아이는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대학교 부설 어린이집으로 옮긴 후 엄마와 같이 등, 하원을 같이 하면서 자신보다 더 큰 학생들이 사용하는 대학교에 대해 신기했는지, 하원 후에 대학교 이곳저곳을 산책하면서 건물에 들어가 보고 무엇을 하는 공간인지 물어보고는 했다. 대충 말해줄까 하다가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말해주고, 나도 모르는 것은 찾아보고 알려주었다. 그때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나는 모르지만, 아이는 꽤 진지하게 듣고 자신이 궁금한 것에 대해 다시 물어보았다. 이렇게 우리 아이의 이른 대학생활은 시작되었다.



2주 전 한라산 등반을 할 때도 아이는 곧잘 따라왔다. 눈을 좋아해서 그런지 눈 구경 가자는 말에 새벽잠을 포기하고 따라와서 윗세 오름까지 갔다 하산하는 여정이 힘들었을 건데 잘 견뎌주었다. 지금까지 파악된 우리 아이의 강점 중 하나, 잘 걷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물영아리부터 천고지 이상 되는 웬만한 오름 정도는 가볍게 따라오며, 가끔 안아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하지만 끝까지 완주하는 것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두 번째 아이의 강점은 말을 엄청나게 많이 한다는 것이다. 어느 수준이냐 하면 잘 때 빼고 모든 시간 동안 말을 한다. 나름 말을 많이 한다고 자부하는 아이 엄마도 아이 앞에서는 비교불가인 이인자일 뿐이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태동이 너무 없어서 초음파 검사를 하려 할 때만 존재를 확인할 수 있어서, 태어나기 전에 아이의 목소리가 너무 궁금하다는 말을 자주 했는데 지금까지 분에 넘치게 아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우리 아이는 내가 퇴근해서 집에 오면 자신의 일과를 하나도 빠짐없이 나에게 말한다. 거의 대부분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이지만 내 무릎 위에 앉아서 자신의 이야기를 다 할 때까지 말하고 나는 그냥 듣는다. 숲 체험 간 이야기, 다람쥐 이야기, 곤충 이야기 등 다양한 소재의 이야기를 들으니 마치 우리 아이가 스토리텔러인 것 같은 착각을 하기도 한다.


 10시 30분에 시작하는 졸업식이라 20분 정도 일찍 가서 미리 준비된 식전 영상을 보며 앉아 있었다. 지난 3년간의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활동한 모습을 보면서 아이가 내게 말해주었던 이야기가 하나씩 떠올랐다. “이런 것을 하고 나에게 말해주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아이의 눈으로,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식전 영상은 자신의 경험을 나와 공유하고 싶었던 아이의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해 주지 못했던 나의 무지를 한탄하게 만들어 주었다.



너무 고맙게도 책을 좋아하는 아빠에게 동화책을 읽고 나눔 활동을 잘해서 최고 소통상을 받은 아이가 무척 대견스럽다.


 아이는 이곳에서 추억이 자라고 꿈이 자라며 개인이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 함께하는 것을 배우고, 사제 간의 정이 시작된 추억의 장소 어린이집이 폐원을 하기에 더 아쉬움이 많았는지 졸업식 장의 분위기는 더 숙연하였다. 인구 절벽의 시대를 체감하는 충격적인 폐원 결정은 많은 이의 아쉬움으로 눈물을 자아내었고 이곳에서 20년을 통학차량을 운행해 주신 선생님의 노고와 아이에 대한 사랑을 알 수 있는 귀한 시간이기도 했다. 졸업의 노래를 부르며 말없이 눈물을 훌리는 아이를 보고 아내도 펑펑 울었고 나도 가슴이 아팠다. 아이가 자란 추억의 장소가 없어진다는 것보다 아이가 슬퍼한다는 것이 더 가슴이 쓰라렸다.


 아이의 눈물을 보면서 문득 머릿속에 아이의 이름으로 장학금을 주어서 어린이집을 재개원하도록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몇 년간 적자에 허덕여서 어쩔 수 없이 폐원하는 현실을 거부할 수는 없지만, 아이의 꿈을 크게 만들어준 이곳에 보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학사업이라는 것은 큰돈이 들어가지만 꼭 하고 싶다는 욕망이 가슴속에 가득하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26/2018102600220.html

아직 내게는 이런 재력이 없다. 하지만 인생의 변화를 꾀하고 있는 오늘을 시간을 관리하고 더 성장하는 시기로 만들어 간다면 내게도 자연스럽게 돈이 따라오고 재력이 생길 수 있음을 믿는다. 나도 이분들처럼 나눔의 삶을 실천하고 싶다.


인간은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다. 하지만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사랑을 눈에 보이게 하는 방법은 오직 행동과 표현뿐이다.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안아준다면 상대방도 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려움에 처한 이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 이것이 자녀에 대한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일 것이다. 우리 아이를 넘어 튀르키에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고통받는 아이에게도 사랑이 전해지는 세상이 되도록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지금 내가 사용하는 시간을 열심히 금을 만들어 세상에 나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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