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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Oct 18. 2023

생일

축하로 성장하는 날

 오늘은 내 생일이다. 아내한테 말하지 않고 연차를 썼고 하루 종일 집에 있을 계획을 세웠다. 아이의 등교를 챙기고 싱크대에 쌓여 있는 아침 식사의 흔적을 치우는 것부터 집안일이 시작된다.


 어쩌다 가끔 집안일을 하는 나에게 오늘 같은 날은 아내에게 점수를 따는 날이다. 증기 배출이 잘 안 되는 밥솥을 청소하고 설거지를 하며 싱크대 주변의 물기와 음식물 쓰레기를 정리한 후,  밖에 있는 음식물 쓰레기 수거통을 가져와 냄새가 나지 않도록 깨끗이 세척을 한다.


 음식물 쓰레기를 정리할 때는 보통 비닐장갑을 착용하지만 오늘처럼 여유 있는 날은 손에 묻어도 씻으면 되니까 손에서 조금 냄새가 난다 한들 전혀 문제가 되질 않는다.  싱크대를 정리하면 이제 빨래를 해야 하기에 마음이 급하다.


 요즘 같이 낮에 기온이 올라갈 때는 밖에서 빨래 건조하기 최적의 날씨이지만 여러 번 해야 하기에 거실에서 말리기로 했다. 주말 동안 나온 아이옷과 속옷이 대부분이라 적어도 2번 정도는 헹굼을 해야 하기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기에, 아내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빨래가 제일 효용가치가 높다. 세탁기를 돌리는 동안 책 읽기와 글쓰기를 하면서 주방을 떠나지 않는 내 모습을 보니 전업주부의 고단한 삶이 조금은 이해되었다. 어머니가 하루 종일 집에서 이렇게 시간을 보내셨을 생각을 하니 오늘 나를 태어나게 해 주신 은혜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아침부터 문자로 카톡으로 생일 축하를 받으면서 주말을 이용해 미리 축하 파티를 했기에 조금은 무덤덤하지만 잊지 않고 기억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과분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아내의 놀팸(놀이터 패밀리) 모임에서 받은 선물을 정리하면서 나를 기억해 주는 분들에 대한 감사를 또 한 번 느낀다.

 힙한 야구모자와 오랜만에 전의를 불타오르게 하는 레고는 어린 시절 나를 꿈꾸게 만들었던 마중물이었다. MLB 모든 팀의 모자를 모으면서 야구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고 레고를 만들면서 매뉴얼이 아닌 상상 속의 창작물을 태어나게 하는 창의성을 알게 하던 유희의 시간이었다. 이렇게 생일 선물은 늘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몇 년 전부터 생일날이 되면 생일의 주인공은 내가 아닌 나의 어머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이 아니면 절대 알 수 없는  280여 일을 품으면서 동거동락했던 시간보다 더 큰 사랑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생각해 보면서 감사함을 느낀다.


 어머니께 감사인사를 전하며 또 오늘을 기억해서 축하해 주시는 지인들을 통해 나는 오늘 한 뼘 더 성장하며 받은 사랑을 나눠줄 수 있는 성숙한 인격체가 되고 있다. 축하를 통해 성장하는 오늘, 더없이 기쁜 날이자 내가 좋아하는 책 읽기와 글쓰기를 하면서 나 스스로 만든 한계를 넘는 날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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