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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Nov 09. 2023

타인의 시선

늘 그 자리에 있어 보이는 나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오랜 기간 하다 보면 익숙해져서 보지 않아도 눈에 보이고, 직접 손으로 누르지 않아도 마치 손으로 누르는 것처럼 허공에 대고 손으로 누르는 시늉을 할 정도로 몸이 기억하는 경지에 이른다. 나도 달인의 경지는 아니지만 화면을 보지 않아도 눈에 보이는 수준이라 굳이 찾아보지 않고 말할 수 있다.


 며칠 전 존경하는 선배님의 전화를 받았다. 회사 사람 중 유일하게 존경하는 분이고 예전에 팀장님으로 모셨던 분이라 그분이 뭐라고 하시면 아무런 불만이나 토를 달지 않고 그대로 듣고만 있는다. 설령 틀린 이야기들 듣고 나를 혼내셔도 그 자리에서는 그 부당함에 대해 토로하지 않고 잠잠 코 듣기만 했다.


 나에 대한 말이 나오게 된 이유를 내 나름대로 추정해 보면 전표 관련 문제로 설전이 있었는데 예전 이 선배님께 정산을 배우면서 ‘전표는 돈’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에 교육팀에서 근무할 때도 이점을 늘 강조해서 교육했고 지금도 동일하다. 한 번 전표를 잘못 만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손실이 생기기 때문에 늘 강한 어조로 말한다. 이런 어조 때문에 그분이 기분이 나쁘셨는지 나로서는 인정할 수 없는 있지도 않은 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고 추측할 뿐이다.


 회사라는 조직의 구성원으로 살면서 틀린 것이 맞는 것이 되고, 맞는 것이 틀린 것이 되는 것을 수없이 봐왔지만 확실한 근거 자료가 없으면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냥 좋은 방향으로 처리해 왔다. 굳이 그 부당함을 설명하는 것이 옹졸해 보인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솔직히 에너지 낭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회사에서 야망이 있고 애정이 더 있었다라면 나의 정당함을 어떠한 방법과 수단을 통해서 알리고 정정했겠지만 지금 나에게는 그저 부질없는 것이 되었다. 그래서 업무적으로 만나는 관계에서는 확실한 선을 긋고 행동하며, 일은 일 개인적인 취향은 개인적인 취향으로 구별한다. 절대 일을 개인적인 것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선배님의 전화는 확실히 나를 걱정하는 마음에 하셨다고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부산에서 근무할 때부터 나를 보왔고, 나의 개인 생활에 대해서도 100 퍼센트는 아니지만 회사 사람 중 가장 잘, 그리고 많이 나에 대해서 알고 계신 분이라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선배님은 나에 대한 소문을 아쉬워하시며 “너는 늘 그 자리에 있는 것 같다”라고 하셨다. 회사에서 다 내려놓아도 포기했다는 뉘앙스는 풍기면 안 된다는 애정 어린 조언이었다. 솔직히 맞는 말이었기에 잘 알았다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걱정하게 만들어 드린 것도 죄송하지만 선배님의 말이 계속 뇌리에 남아 오늘 새벽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다른 조직보다 소문이 날개 돋친 듯 빠르게 퍼저나 가는 우리 회사의 경우 나를 잘 모르는 타인의 시선으로 볼 때 어쩌면 나는 회사에서 늘 그 자리에 있었다고 보일 수도 있다. 다른 업무를 하기에 요즘 잘 못 보는 선배님의 경우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같이 살고 있는 가족들도 나를 잘 모를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여도 절대 그대로 있지 않았다. 매일 성장에 대한 갈급함으로 내면적인 성장을 위해 발버둥 치고 있고 유영만 교수님의 <끈기보다 끊기>라는 책을 읽고는 성숙하기 위해 고민하고 행동한다. 지금 근무하고 있는 회사와 자발적인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 나에게 과연 회사 사람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할지 모르겠지만 나에 대한 오해는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도 변함없이 난 그대로 있지 않고 책 읽기를 통해 세상의 지식과 지혜를 배우고 생각하며 행동으로 옮기는 것에 대한 고민과 실행을 한다. 마치 커다란 우유통에 빠져 그대로 죽음을 기다리는 개구리가 아닌,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 보이는 것처럼 보여도 끊임없이 다리를 움직이며 우유를 치즈로 만들어, 그것을 발판 삼아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는 개구리처럼 살고 있다.


 단지 타인의 시선에는 보이지 않을 뿐이며, 내가 타인에게 제발 봐달라고 굳이 애쓰거나 알리지 않을 뿐이다. 나는 그냥 내가 만족하는 삶을 살기 원하기에 타인의 시선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타인들 속에 나로 살아가는 순간도 있기에 유별나게 튀지 않는 나로 살아갈 뿐이다. 나는 그냥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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