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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Nov 23. 2023

살고 싶다는 농담

생의 의지에서 나오는 삶의 태도

 참 감사하게도 아직 단 한 번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거나, 그런 생각이 든 적은 없다. 다르게 표현하면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든 일을 겪어 보지 않았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40여 년을 살면서 크고 작은 사건에 휘말리면서 최악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모두 내 기준에서였지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었다.


 가장 큰 사건은 가장 신뢰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던 일인데 그 사람이 말한 모든 것이 거짓말이었고, 의도적으로 속였다는 것에 분노를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나를 흔들어 놓았다. 다시는 사람을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해운대 바닷가 앞에서 겁을 먹고 나를 피하는 그 사람을 다시 보았을 때 나는 오히려 분노가 아닌 측은한 마음이었다.


 살면서 다시는 안 볼 줄 알았겠지만 사람이 죄를 짓고 편하게 살 수 없는 이유는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말은 신기하게도 그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나를 피해 도망가는 그 사람의 뒤를 쫓아갔지만, 그런 행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그냥 보내주었다.


 혹여 다시 만나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고민도 해보지만, 그런 고민조차도 필요 없는 이유는 그 사람은 더 이상 내가 신경 써야 할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의미 없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나 스스로 만들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들어 준 것도 바로 이 사건이다.


 다행스럽게도 이 일이 생겼을 때 나는 부산으로 근무지를 옮겼고 이곳에서 이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 또한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상처받은 부위를 회복하였고 마음의 근육도 단단해져서 더 이상 동일한 일로 상처받는 일은 없었다. 남이 들으면 부끄러울 정도로 어리석었던 과거의 내가 느꼈던 지우고 싶은 감정은 지금의 나를 만든 감정의 자양분이었다.


 이 사건 때문에 심리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그토록 원했던 대학원에도 진학하여 학업을 잘 마무리해서 심리학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게 되었다. 내가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을 그렇게 싫어했던 그 사람은 처음부터 나와 맞지 않은 사람이었던 것을 왜 몰랐을까 하는 자조적인 푸념을 해보기도 했지만, 과거를 바꿀 수는 없기에 두 번 다시 그런 실수를 하지 않기로 했다.


 절대 사람을 잘 본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자만하지. 않고 경청하는 자세를 가지게 해 준 이 사건은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나를 성장하게 만들어준 계기가 되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지금의 내가 과거에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잠시, 그때의 사건이 만약 계속되었더라면 지금은 나는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파국의 결과가 나에게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힘들었지만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의 응원과 걱정 덕분에 무사히 견뎌내고 내 생활로 돌아올 수 있었기에 지금 생각해도 당시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감사할 뿐이다. 그들이 나를 잡아주지 않았다면 더 어리석은 행동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애정 어린 걱정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 감사하고 소중하다.


 다행스럽게도 인생의 밑바닥을 찍은 사건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다. 죽고 싶다는 생각도 감정도 들지 않았다는 것이 정말 감사하다. 하지만 병마와 싸우며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살고 싶다는 생각이 사치로 느껴질 만큼 고통에 시달리는 환우들을 보면 어떤 말로도 위로하기 어려울 것이다.


 호스피스 병동으로 봉사 활동 갔었을 때 그곳에서 생의 의지를 느끼기 어려웠지만 그 가운데서도 생명의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병마와 싸우던 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 이 순간 살아 있음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단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셀 수 없는 감사의 말을 할 정도로 감사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 장소를 벗어나면 내 주위의 것들이 눈에 들어와 감사함으로 충만한 마음을 비교의 잣대로 채워간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함을 느끼던 나와 더 좋은 것을 쳐다보는 세상의 시야에 이질감을 느끼면서도 부러워하는 것은 소돔과 고모라의 마지막 날, 절대 뒤를 보면 안 된다는 천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편안했던 과거를 잊지 못해 뒤를 돌아보아 소금 기둥이 되었다는 롯의 아내를 떠올리게 한다.


 생의 의지만 있다면, 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삶의 태도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에 대한 희망 고문이 아닌 삶의 밑바닥에서도 하늘 위의 태양을 바라보게 하는 힘이자, 다시 높이 올라가는 날을 상상하게 만드는 동기부여가 된다.


 오늘 밤 눈을 감으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게 하는 생의 의지는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마저도 뒤로 물러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 강력한 힘으로 생의 의지를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세상은 나라는 존재가 살아 있기에 의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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