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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Dec 05. 2023

아프지만 해야 할 일

일상의 거룩한 부담감

지난 일요일 아내는 외출하고 나는 하루 종일 아이랑 노는데, 엄마가 없으니 피자가 먹고 싶다고 했다. 평소 패스트푸드를 먹이지 않고 건강한 음식을 주려고 하기에 아이가 피자를 먹는 일은 일 년 중 한두 번도 안 된다. 평소 친구들과 어울릴 때 피자를 안 먹어 봤기에 혹여 소외당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건강한 음식을 먹는 것은 그것보다 중요해서 과감히 결단을 했다.


 자녀가 해달라고 하는데 안 해주는 부모가 없기에 아내가 없는 틈을 타서 피자를 주문했고, 아내도 피자 먹는 것을 허락했기에 마음 놓고 먹을 수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먹는 피자였기에 기대가 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먹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불길한 예감이 들 때, 한 번 더 생각해 봐야 하는데 오랜만에 피자를 먹는다고 들떠 있는 아이를 보니 주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온 가족이 맛있게 피자를 먹고 잠자리에 들었고, 새벽에 인기척에 거실로 나오니 아이가 밤새 토를 했다고 한다. 평소에서 치즈를 먹으면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아프다고 했는데 결국에는 피자가 문제를 일으켰다. 아내는 모두가 잠든 새벽 이불 빨래를 위해 세탁기를 돌렸고, 아이가 창백해진 얼굴로 끙끙 앓는 모습을 보니 왜 피자를 주문했을까 하는 자책을 하였다.


 피자를 먹고 아이도 토를 하고 탈이 났는데 사실 나도 속이 울렁거리고 컨디션이 좋지 않음을 느꼈는데, 월요일이라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 월요일 출근해서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머리가 아프고 속이 좋지 않아 점심을 안 먹고 싶었는데, 새로운 팀원들이 처음으로 같이 식사를 하는 자리가 거절하기 어려웠다.


 인사치레로 조금만 먹어야지 하는 생각이었지만 먹다 보니 밥 한 공기를 다 비웠고, 얼큰한 김치찌개 국물이 속을 따뜻하게 해 준다고 느꼈다. 왜 이런 느낌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나만의 착각이었다. 퇴근길 운전하는데 속이 메슥거렸고, 고속도로 운전 길이라 꾹 참고 집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니 자연스럽게 구토가 났다.


 한참 구토를 하고 나니 속이 개운해졌지만 머리가 띵하고 온몸이 힘이 하나도 없었다. 집에 오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바로 침대로 들어갔다. 오한도 들고 두통까지 와서 힘들었지만 바로 잠들기 위해 노력했다. 지난 5월 교통사고로 입원하면서 연차를 모두 소진했기에 더 이상 사용할 수 있는 연차가 없어서 아무리 몸이 아파도 출근해야만 했다.


 몸에 힘이 없어서 바로 잠들었지만 밤새 오한에 시달리서 온수 샤워를 하며 잠을 설쳤다. 새벽 책 읽기와 글쓰기를 하려고 노력했지만 오한으로 떨리는 손으로는 도저히 책을 읽을 수 없었고, 글쓰기도 불가능했다. 새벽 루틴을 실행하는 것보다 어떻게든 몸을 추슬러 출근해야 했기에 조금이라도 더 쉬었다.


 오늘 출근길은 평소보다 멀고 힘들었는데 어떻게 도착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정상 컨디션은 아니었지만 사고 없이 도착했고, 다행히 외근하는 날이라 중간중간 쉬어가며 컨디션을 회복했다. 몸이 아파도 쉬지 못하는 직장인의 비애와 연차를 모두 소진한 무계획의 허탈함을 느끼며 점심도 거른 체 밤새 뒤척이느라 못 잔 잠을 자며 컨디션을 회복했다.


 유난히도 길었던 하루를 끝내고 집에 오는 길은 출근할 때보다 조금 괜찮아졌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아 기운이 없었는지 장모님께서 죽을 해주셔서 곡기를 보충하니 눈에 조금 힘이 들어왔다. 죽을 먹고 가만히 앉아 있으니 그저 침대로 들어가 눕고 싶었지만 오늘의 할 일을 하지 않은 찝찝함이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만약 내가 글루틴과 졸꾸머꾸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면 나 스스로 타협을 하려고 했겠지만 매일의 글쓰기를 해야 하는 거룩한 부담감은 오늘도 나를 글쓰기의 자리로 인도했다. 그리고 이제 다시 피자를 먹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건강한 음식을 먹으며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건강관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건강해야 내가 그토록 원하는 죽을 때까지 글쓰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하루였다. 입에 맛있는 것을 먹으려 하지 말고, 입에서는 맛이 없어도 몸에 들어갔을 때 좋은 역할을 하는 건강한 음식을 먹으며 운동을 하고 체력을 길러서 글쓰기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내가 건강해야 나의 글쓰기도 존재할 수 있음을 뼈저리게 느낀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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