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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Dec 16. 2023

사라진 가게의 잊을 수 없는 맛

20년 전 자장면의 맛을 떠올리며

 밥보다 면을 더 좋아하는 식성 때문에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면 요리를 즐겨 먹었다. 현미식물식을 한 후로는 잘 먹지 않지만, 한국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영혼의 음식'으로 사랑받고 있는 자장면은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였다. 단 한 번도 보통을 먹은 적이 없을 정도로 항상 중화요리를 먹을 때면 자장면 곱빼기를 시켜 먹고는 했다.


 나의 20대 시절, 대학교 다니며 선배들과 함께 점심으로 즐겨 먹었던 음식 중 잊지 못하는 음식이 두 가지 있는데 김치볶음밥과 자장면이다. 20년 전 일이라 가게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당시 구 정문 인근에 있던 식당은 노부부께서 운영하셨다.


 메뉴는 오직 하나 김치볶음밥이었고, 양이 많기로 소문난 집으로 맛은 여느 김치볶음밥과 별 차이는 없었지만 냉면 그릇에 담겨 나오는 엄청난 양은 굳이 곱빼기를 주문하지 않아도 배가 차는 충분한 양이었다. 먹어도 늘 허기졌던 혈기 왕성한 시기, 배고픔에 다 먹으니 잘 먹는다며 처음 주셨던 양만큼 더 주시던 사장님의 정과 인심을 잊을 수가 없다.


 또 다른 하나는 점심시간 이후 강의가 없을 때, 자주 가던 '영성방'이라는 중화요릿집 수타 자장면이다. 내가 다니던 대학교 인근 중화요릿집 자장면은 학생들을 위해 저렴한 가격이었지만 기름기가 많아서 항상 먹으면 속이 더부룩함을 느끼고는 했다.


 그런데 오직 영성방 자장면은 가격은 조금 비쌌지만 먹으면 더부룩함은커녕 항상 남겼던 양념까지 다 먹을 정도로 담백한 자장면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담백한 맛에 반해서 졸업할 때까지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꼭 가던 나의 단골집이었는데 졸업 후 그 맛이 그리워 다시 찾아갔지만 사라지고 없어 너무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


 특히 어디로 이사 간다는 말도 없이 사라진 나의 맛집을 그리워하며 대학원 다니는 동기들과 학부 후배들에게 부탁해 수소문해 보았지만 사장님께서 몸이 안 좋으셔서 그만두셨다는 것 밖에는 알 수 없었다. 너무나 아쉬웠지만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겠거니 하고 잊어버렸다.


 올해 삼 년 정도 근무하던 부서에서 새로운 부서로 발령 나면서, 예전에 하던 업무를 다시 하게 되었는데 외근 업무차 방문했던 곳에서 우연히 20년 전 나의 맛집과 똑같은 이름의 중화요릿집을 발견하였다.


 대학교 때 있던 곳과는 너무나 먼 곳이었기에 설마 하는 생각에 언제 한 번 가봐야지 생각하다  뜨끈한 짬뽕 국물이 생각나도록 비가 내렸던 어제, 영성방을 찾아갔었다. 20년 전 먹었던 자장면의 맛을 추억하며, 자장면을 주문해서 내가 기억하는 그 맛을 느끼는 순간, 눈가에 눈물이 고일 정도로 그리움에 사무치고 말았다.  


 지금까지 수많은 중화요릿집을 가보았지만 단 한 번도 느낄 수 없었던 특유의 담백한 맛과 수타면의 식감이 혀를 감싸고 식도로 내려가는 이 행복감은 그 자리에서 자장면 곱빼기를 하나 더 시키고 싶은 정도로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맛이었다.  20년 전 추억이 가득한 내 머릿속 기억의 방에서 꺼내, 지금 내 입안에 가득한 그 맛과 연결하며 온몸에 퍼지는 전율은 자장면 하나만으로 이 세상 모든 것을 가진듯한 행복감을 느끼게 했다.


 이 행복감이 진짜인지 확인하고 싶어 계산을 하면서 사장님께 대학교 근처에 있던 가게가 맞는지 물어보니, 어떻게 아느냐며 반문하셨다. 졸업생인 것을 말씀드리자, 지금 주방에서 일하는 아드님도 같은 동문이라며 너무 좋아해 하셨다. 20년 전의 이야기를 한참 하시며 서로의 추억을 떠올리는 짧은 대화는 마치 과거 대학생이 중화요릿집 사장님과 자장면에 대해서 대화했던 시간 여행을 하게 해 준다는 착각이 들게 했다.


 오랜 가게 운영으로 어깨 수술을 하시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가게 문을 닫아야 했던 사정과 건강을 회복하시고 원래의 장소로 다시 오픈하려고 하셨지만 너무 올라버린 부동산 시세 때문에 이곳에 영성방을 여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동안 가게가 없어진 이유를 알고 나니 20년 동안 간직했던 수수께끼가 풀린 기분이었다.


  계산을 마무리하고 나오며 아직 내 입을 감싸고 있는 자장면의 여운은 20년 전 맛과 어제 맛은 소름 끼칠 정도로 똑같았다. 이런 느낌을 다시 느끼고 싶기에 다시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며 2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겨울비 내리는 어제 하루 종일, 그리고 지금까지도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사라졌던 가게의 잊을 수 없는 맛을 다시 맛본 이 행복감은 20년 전, 같이 자장면을 먹으며 행복해했던  선배들을 떠올리게 하며, 스마트폰에 있는 전화번호를 찾아 영성방의 존재를 알리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지금은 모두 가장이 되어 각자의 보금자리에 있지만 언제 기회를 만들어 다시 영성방에서 함께 자장면을 먹는 행복한 상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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