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의 재회
아이의 겨울방학 마지막 날, 눈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눈을 보여 주고 싶어 아내 몰래 연차를 내고 장모님, 아이와 함께 덕유산 눈꽃을 볼 계획을 세웠다. 덕유산 케이블카 예약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깜빡해서 아내에게 비밀 여행을 들켰지만, 어디든 세 명이 꼭 함께 다녀야 한다는 조건으로 쿨하게 허락해 주었다.
아이는 눈을 너무나 좋아해서 방학 숙제 중 하나인 그림일기 마지막 날을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을 만드는 것으로 하고 싶다고 해서, 강원도 여행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당일치기로 가기에는 기상 악화 등과 같은 변수가 많아서 한 번 가본 적도 있고, 나름 거리가 짧은 곳을 찾다가 덕유산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집에서 덕유산까지 편도 2시간 30분 정고 걸려서 운전이 조금 부담되기도 했지만, 장모님과 아이 둘만 보내고 걱정하는 것보다는 내가 운전하는 것이 더 마음이 편하기에 무덤덤하게 운전을 했다. 먼 길 떠나기 전에 수소부터 가득 충전하다 보니 예정 출발 시간을 훨씬 지나 출발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여행의 순간은 언제나 즐겁고 행복하다.
평소 편도 100km 정도 거리는 고민도 하지 않고 출발한다고 말했던 나이지만 주말처럼 혼잡하지 않은 평일이라서 이 정도의 거리는 충분히 감안해야 했다. 아이의 방학 대미를 장식할 그림일기의 글감을 찾아서 떠나는 여행은 제일 중요한 한 가지를 확인하지 못한 채 출발하였다. 바로 덕유산 케이블카 운행 여부이다.
향적봉의 눈꽃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케이블카를 다려고 하니 기상 악화로 운행을 하지 않는다는 방송이 흘러나왔고, 당황한 마음에 매표소에 물어보니 어제부터 운행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미안함 마음에 당황한 표정의 장모님과 케이블카 운행 중단과는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옆에서 눈을 만지며 이미 놀고 있는 아이 사이에서 잠시 눈치를 봐야만 했다.
하지만 하염없이 기다린다고 운행이 재개될 수 없음을 알고 매표소 인근에서 아이와 눈사람을 만들며 놀았다. 이미 눈오리를 만들어 놓으신 어떤 분의 선행으로 근처 눈오리를 수집하며 아이만의 눈사람이 만들어지는 동안 저 멀리 보이는 향적봉 인근의 눈꽃나무를 보는 것만으로도 멀리 달려온 노고를 치하받는 기분이 들었다.
향적봉 가는 것을 포기하니 생각하지 못한 여유 시간이 생겨 2년 전 방문했던 <무주창고>라는 카페와 곤충 박물관이 있는 <반디랜드>를 갔었는데 예상치 못한 일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만들어 주었다. 특히 반디랜드 곤충 박물관은 아이 취향을 저격하는 곳으로 아이가 좋아하는 수많은 나비가 있었다. 무주 인근 생태계에서 사는 반딧불이의 일생을 관찰할 수 있고, 반딧불이와 연관된 ‘형설지공’과 같은 사자성어의 유례를 직접 배울 수 있는 체험 학습의 장이기도 했다.
곤충박물관을 관람하고 나와서 주변을 살펴보니 놀이터도 있고 사계절 썰매장, 수영장 그리고 오두막까지 있어서 1박을 하기에도 좋은 장소여서 다음을 기약하며 채식을 하는 우리 가족이 자주 가는 베지나랑 본점인 <베지나랑 키친>으로 향했다. 거창에 있어 먼 거리 때문에 처음 방문하지만 즐겨 먹었던 익숙한 메뉴가 있어서 즐거운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야간 운전에 방해되지 않도록 약간 배가 찰 정도만 먹고 다시 먼 거리를 운전에 집으로 향했다.
장거리 운전이 조금 피곤하긴 하지만 아이가 잠 들어서 150km의 거리를 단 숨에 올 수 있었다. 눈 내린 시골 정경을 바라보며 적막함보다는 고즈넉함을 느끼고 방학 숙제인 그림일기의 글감을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하루를 보냄에 감사할 뿐이다. 매일을 여행하는 삶을 보낼 수는 없겠지만, 여행을 계획하는 순간 이미 그곳에 가 있는 마음만이라도 즐겁고 행복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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