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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Feb 09. 2024

나무 같은 인생

나무가 전해주는 세 가지 지혜

  글루틴 15기 오프닝 줌 미팅을 할 때 탕수육을 먹을 때 부먹이냐 찍먹이냐와 같이 시대의 난제로 양립할 수 없는 질문이 아니지만 산을 좋아하는지 바다를 좋아하느냐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산을 선택하는 이유는 내가 물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5학년 지리산 계곡에 빠져 죽을 뻔한 이후로는 물 근처도 가지 않는 나의 트라우마 때문이다.


산은 지금까지 나와 많은 추억이 있는 장소이기도 한데 가장 잊을 수 없는 기억은 군 복무 당시 관측반 활동을 하며 천고지를 무거운 관측장비를 이고 지고 숨을 헐떡이며 왔다 갔다 했던 일이 떠오른다. 내가 산 너머에 있는 포대의 눈이 되어 정확한 자표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높은 위치에서 내려다볼 수 있어야 가능했기에 관측반에 있으면서 산에 오르는 것을 산책처럼 했던 시절이었다.


 산에 오르면 온갖 종류의 나무를 볼 수 있는데 관측반에서 활동할 당시도 그렇지만 일 년 후 다시 왔을 때도 나무는 항상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것이 나무의 가장 큰 매력인데 늘 한결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내가 나무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무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지만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매일 조금씩 땅속 깊이 뿌리는 내리고, 하늘 향해 가지를 뻗는다.


 캘리포니아의 레드우드처럼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무는 아니지만 하늘을 향해 뻗어나가는 나무를 보여 저 높은 곳을 동경하기도 했고, 나무 그늘에 앉아 더위를 피하기도 했다. 이렇게 나무는 동경과 쉼을 주는 존재로 일상에 지칠 때면 나무 아래 앉아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무가 있는 산에 자주 가니 바다보다는 산을 더 좋아할 수밖에 없다.


나무를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무에 대한 책을 읽고 글쓰기를 하기도 했지만 나무는 나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영감을 주는 존재이다. 지난 주말 가족들과 함께 우리나라 삼보사찰 중 법보사찰인 해인사에 다녀왔다. 팔만대장경판을 보고 싶기도 했지만 산세가 수려한 가야산의 정경과 수령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나무를 보고 싶었다.

 특히 해인사 일주문 앞을 지키고 있는 나무만 보아도 좋은데 팔만대장경까지 있으니 나에게 이보다 좋은 곳을 없겠지만 그동안 거리가 멀어 쉽게 올 수 없었다. 인간보다 오랜 시간 지구에 살았고 어쩌면 인간의 탄생을 조용히 지켜보았을 수도 있는 나무의 수령은 80,000년이 넘는 것도 있다. 고작 100년 정도 살 수 있는 인간보다 800배가 넘는 시간 동안 살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를 생각하다 나무의 지혜 세 가지가 떠올랐다.


 첫 번째, 나무는 묵묵하고 꾸준히 성장한다. 고개가 아플 정도로 한참 나무를 올려다보아도 나무의 높이를 측정할 수는 없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어가는 가지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흙을 움켜쥐고 줄기를 지탱해야만 한다. 뿌리 깊은 나무와 그렇지 않은 나무는 환경의 변화가 생기면 쉽게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뿌리는 성장의 기초와도 같은 것이다.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 나무는 홍수나 비바람에 쉽게 쓰러지고 만다. 영속의 세월을 버티기 위해서는 깊이 뿌리내리는 작업을 해야만 해서 나무는 이 세상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남몰래 비밀스러운 작업을 한다. 묵묵히 꾸준히 매일 뿌리를 내려 물과 양분을 흡수하고 햇빛이 드는 쪽으로 가지를 뻗어서 태양을 맞이한다. 이것이 생존 비결이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이 세상 단순한 진리를 실천하는 나무의 지혜이다.


 두 번째, 나무는 선택과 집중의 성장을 한다. 나아갈 때와 멈출 때를 알아 물이 부족한 가뭄의 때는 가지 뻗기를 멈추는 대신 땅속 깊이 뿌리는 내린다. 반대로 물이 풍족한 때는 가지 뻗기에 집중하며 상황에 맞는 집중도를 선택한다. 오랜 시간 한자리에 머물면서 환경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하지 못했다면 나무는 금세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무는 성장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해인사 일주문 앞에는 천년의 세월을 누리고 죽은 폐사목이 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폐사목에서도 새로운 가지가 뻗어 나와 생존의 투쟁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누가 봐도 죽은 형체를 하고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은 곳에서는 끊임없이 삶과의 투쟁을 하며 성장을 포기하지 않는다.


 때론 기력이 다해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기도 하지만, 주변의 생물들에게 아낌없이 나눠주고 새로운 생명이 잉태하도록 도움을 준다. 자신은 사라져도 다른 개체 속에 살아남아 불멸의 성장을 하는 것이다. 통일신라 시대 창건된 해인사를 변함없이 지키고 있는 일주문 앞 나무는 쪽이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자리에서 묵묵하고 꾸준하게 성장을 하고 있다.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변화의 속도 속에서 변함없이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는 성장이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성장하고 또 성장하고 있다. 남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인생보다는 나에게 집중하려고 하는 삶의 태도는 나무의 가치관이다.  남에게 자랑하거나 돋보이려 하지 않고 남몰래 비밀의 시간을 보내는 나무처럼 늘 한결같은 사람으로 묵묵하며 꾸준하게 나무의 지혜를 실천하는 나무와 같은 인생을 살고 싶다.


#에세이

#나무

#지혜

#글루틴

#팀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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