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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Feb 10. 2024

설날 아침 풍경

유희와 신뢰 사이에서

 오늘은 음력설, 새해의 첫날이다. 어릴 적 양력과 음력의 차이를 몰랐을 때는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설날이 두 번이라 마냥 좋았다. 신정, 구정이라는 표현을 쓰며 까치의 설날과 우리의 설날을 구별하기도 했지만 쉬는 날이 많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그냥 좋다. 전 세계 민족 중 음력설을 지내는 민족은 한민족과 유대인만 있다는 사실에 특별함을 느끼기보다는 공휴일 지정의 명분이 있다는 것이 더 좋다.


 사실 설날이라고 해도 공휴일이라고 해도 나의 일상은 특별한 변화는 없다. 평소보다 여유를 가질 수 있어서 좋지만 늘 변함없이 똑같은 루틴을 하며 하루를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늘 변함없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 내 마음의 표현이자 의지의 표상으로,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이런 내 루틴이 가족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도록 나만의 공간에서 고요함을 누리며 보내는 나만의 시간은 하루 중 내가 가장 기다리고 기다리는 시간이다.


 이런 나의 성향이 아이에게도 전달되었는지 아이도 자신의 루틴을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가족들에게 문안 인사를 하고, 화장실에 가서 볼 일을 보고 양치를 한 후 물 한 컵 마시는 것이 아이의 아침 루틴이다. 요즘은 같이 책을 보는 것까지 추가되었지만, 아이는 나름 자신의 루틴에 진지하며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대견하다. 하지만 아이는 아이인지라 내일이 주말이나 공휴일이면 늦게 자고 싶어 한다.


 어제 산소에 다녀와 처남 가족들과 저녁을 먹고 밤늦게까지 닌텐도 게임을 하며 환호를 지르고 온몸으로 놀았는데 아이는 지치지도 않았는지 동갑내기 조카와 함께 만들기 놀이를 하고 싶다고 했다. 설 연휴라 아이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기도 했지만, 내일 나의 루틴이 걱정되어 도안만 출력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코팅하고 만들기를 하자고 제안했다.


 아이도 나의 루틴을 잘 알고 있어서 내 제안에 순수히 동의를 했고 각자의 방에서 설 연휴의 피로를 풀도록 잠을 청했다. 평소 언행일치의 삶을 살고자 하는 나에게 아이와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하며 그런 신뢰의 행동을 통해 아이와의 유대감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지상 과제이기도 하다. 나만의 루틴을 한 후 약속을 지키기 위해 새해 첫날부터 코팅을 했다.

 단잠을 잔 아이와 조카가 와서 코팅하는 모습을 보고 빙긋이 웃더니 자신들의 루틴을 하고 만들기 놀이를 시작했다. 무엇보다 만들기에 진심인 아이를 보며 인간에게 유희한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어린아이에게도 존재할까 의구심이 들만한 본능적인 호모 루덴스(Homo Ludens)의 모습을 보면서 유희가 주는 기쁨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깨달을 수 있다.

 아이와 조카의 놀이 준비를 해주는 동안 내 침대를 자신들의 인형으로 장식해 준 아이들의 동심을 보며 인형이 아이들에게 전해주는 촉감의 안정과 애착이 정서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느낀다. 자신의 안정과 애착을 나에게 내어주는 아이의 모습을 보내면서 약속을 지키려는 행동이 관계의 신뢰를 더욱 강화시키는 묘약이라 생각한다.

 설날 아침의 풍경은 여느 집과 다름없이 떡국을 준비하는 주방과 곱디고운 한복을 입으며 새해 문안 인사를 준비하는 분주함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내가 속한 풍경은 그 속에서도 글감을 찾고 어떻게 글쓰기를 할지 생각하는 고민으로 가득 차 있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고 하지만 글감의 선택이 글쓰기를 좌우한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내 시선으로 보이는 모든 것이 소중한 글감이자 내 글쓰기의 시작이다.


#설날

#약속

#글루틴

#팀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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