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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Feb 12. 2024

해인사 일주문 앞에서

세속과 성역의 경계

 태생이 집돌이인 내가 천성적으로 집에 있을 수 없는 아내를 만나 여행을 가고 주말 나들이를 간다는 것은 결혼 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에 여행이 삶의 낙이 신 장모님, 아내의 유전자를 50 퍼센트 물려받은 아이까지 다수결의 투표를 해도 나의 의견은 받아들이기 힘들기에 주말이나 공휴일이 되면 의례 내가 먼저 아내에게 나들이 계획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곤 한다. 수소 충전의 문제도 있지만 이동 계획을 세우고 움직여야 하는 나의 성향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나들이에 참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컨디션이 안 좋거나 일을 해야 할 때는 나에게 자유시간을 허락해 줘서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때도 있다. 책 읽는 것도 좋지만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해서 가급적이면 가족 나들이에 동참하며 내가 운전하는 것이 마음 편하기 때문이다.


 나들이 목적지는 거의 아내가 결정하기 때문에  출발 전 목적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목적지 가는 방향이나 인근에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살짝 끼어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거리가 있어서 가고 싶었지만 나들이 가는 겸사겸사 갈 수 있었던 곳이 몇 곳 있었다. 최근 다녀온 합천 해인사가 그런 경우이다.


 우리나라 사찰 중 삼보사찰로 유명한 사찰이며 동시에 대몽항쟁의 중심인 팔만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다. 이 팔만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어 삼보사찰 중 법보종찰로의 품격을 유지하는 고귀한 사찰이다. 산세가 깊은 가야산 자락에 위치하여 수행하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 템프 스테이를 하는 사람이 많이 방문하기도 한다. 마침 방문한 날에도 한 스님께서 템플 스테이에 참여한 사람들을 인솔하시며 경내의 곳곳을 소개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해인사를 5번 정도 방문했지만 방문할 때마다 궁금한 것이 있는데 대웅전을 기준으로 동탑과 서탑이 있는데 해인사에는 탑이 한 개밖에 없어서 늘 궁금했다. 마침 스님께 질문하고 싶었지만 템플 스테이에 참가하시는 분들께 방해가 될 것 같아 꾹 참았다. 창건한 지는 천년이 넘었지만 대웅전이 200년 밖에 안 된다는 사실은 화제로 소실된 것이 많다는 이야기로 들렸기에 내가 알지 못하는 기구한 사연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해인사 일주문 앞에서 서면 저 멀리 가지산 자락과 함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기념하는 기념비가 있다. 하지만 이들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것은 고목들이다. 한참 동안 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면 더 이상 사찰 내부로 들어가고 싶은 욕망을 잠재우며 일주문 계단에 앉아 계속 나무만 보아도 충분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창건된 지 천 년이 넘은 고찰의 처음과 모든 것을 지켜본 증인들이지만 그 비밀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는 입이 무거운 존재이다.


 일주문 앞 나무들은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조금씩 성장하며 지금의 모습으로 변함없이 서있지만 그중 일부는 시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폐사목이 된 나무도 있다. 대부분의 나무들은 둘레만 얼핏 보아도 천년은 족히 넘을 나무가 한자리에서 해인사를 지키는 보디가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폐사목에서도 생명이 끊어지지 않고 새로운 줄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서 나무의 위대함을 느끼며 나무 같은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일주문은 사찰의 정문으로 기둥이 일렬로 서있는 문으로 이곳을 경계로 부처님의 세계와 세속의 세계가 구분된다. 대부분의 사찰 일주문 안쪽에는 사천왕이 있어 일주문으로 신성한 부처님의 세계로 악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키고 있다. 구별된 세상 속에 부처님의 말씀이 기록된 경전의 목판이 있는 이곳은 세속의 눈으로 보아도 신성한 곳이라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하지만 일주문을 지나는 순간 세속의 눈이 아닌 참선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부처님의 세계가 펼쳐진다.

 부처님의 말씀이 저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껴보라는 취지같이 가파른 경사의 계단을 올라야지 다를 수 있는 대웅전과 그보다 높은 곳에 있는 장경판전은 해인사의 중심이자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법보종찰로 불리는 이유도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기 때문이며 삼장으로 불리는 경장, 율장, 논장인 성스러운 불교 경전이 모두 담긴 그릇을 뜻한다. 얼마나 성스러우면 계단을 하나 오를 때마다 합장하며 예를 다하는 수행자의 모습을 보면서 종교와 상관없이 경의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한 글자 한 글자를 목욕재계하며 정성스럽게 목판에 새긴 마음으로 몽고군이 물러가기를 염원한 호국 정신이 깃든 대장경판은 무려 81,350장이나 되며 보관고도 습기를 막기 위해 앞 뒤 바람문의 크기를 대칭으로 설치한 조상님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몇 해 전 한 사람의 몰지각한 행동으로 숭례문이 화제로 소실된 것을 생각하니 팔만대장경판도 화제로 소실되는 불상사가 없기를 바랐다. 부처님의 말씀이 담긴 성스러운 불교 경전이 있는 곳이자 우리 조상님의 숨결이 녹아 있는 해인사가 후손 대대로 전해지면 좋겠다.


#글루틴

#팀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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