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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Feb 17. 2024

나의 냉면 사랑

부산 사람이 밀면보다 냉면을 좋아하는 이유

 https://brunch.co.kr/@ilikebook/540

 

 최근 봄이 오는 소리를 들으며 읽은 <평양랭면, 멀리서 왔다고 하면 안 되갔구나>를 통해 냉면이 주었던 좋은 추억이 생각났다. 부산으로 이사 와서 남포동 원산면옥에서 먹은 함흥냉면을 시작으로 나의 냉면 사랑은 오늘까지 지속되고 있다. 추운 겨울, 냉면을 먹겠다고 하면 아내는 조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지만 사실 냉면은 겨울음식이다. 특히 온돌이 발달한 한국에서는 눈 내린 동짓날, 뜨끈한 온돌 바닥에 옹기종이 모여 앉아 차가운 육수에 담긴 쫄깃한 면발을 후루룩 먹는 것은 정말 역설적인 운치의 맛이다.  


 보통 물냉면으로 평양냉면, 비빔냉면으로 알려진 함흥냉면이라고 알고 있으나 사실 북한에는 함흥냉면은 없고 함흥농마감자국수가 있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 온 실향민에 의해 만들어진 이름으로 물냉면과 구별 짓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가설이 가장 설득력 있다. 굳이 따져본다면 평양냉면이라는 말보다는 ‘평양순면’이란 말이 정확한 표현이다. 왜냐하면 차가운 육수만을 하지 않고 온면으로도 즐기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물냉면과 비빔냉면의 차이를 육수의 양과 소스에 있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주재료의 차이가 가장 크다. 평양냉면은 메밀가루를 반죽해서 면을 만들고, 함흥냉면은 고구마 가루를 반죽해서 면을 만든다. 소스에 의해 주재료에서 비롯된 면의 식감을 잘 못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확실히 비빔냉면의 면 굵기가 얇고 쫄깃한 식감이 좋다.


 냉면의 유래에 대한 여러 가지 가설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메일의 유래에 대한 내용인데 한반도 북방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을 괴롭히려고 장기간 복용하면 위에 치명적인 증상을 초래하는 메일을 전해주면서 죽기를 바랐던 중국인들이 그다음 해에 가보니 사람들이 아프기는커녕 오히려 얼굴이 더 좋아 보였다고 했다. 그 이유를 알아보니 메밀로 국수를 만들어 먹었는데 그 안에 꿩고기를 넣어서 메밀의 부작용을 중화시켰기 때문이었다.


 문헌 상에 냉면에 대한 이야기는 고려 시대부터 조상들이 즐겨 먹은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오랜 시간 한국인의 입을 즐겁게 만들어 주며 사랑을 받아온 냉면은 한국전쟁으로 인한 분단으로 원조의 알력이 전 지역으로 퍼져나가는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맞이한다. 이는 냉면을 더 많이 즐겨 먹던 북쪽 지방 사람들이 남쪽으로 피난 오면서 그들의 식문화까지 가지고 왔기 때문이다.



 냉면의 디아스포라와 함께 또 신기한 일이 생겼는데 바로 밀면의 탄생이다. 평양냉면은 메밀을 이용해 만드는데 전쟁통에 농사는커녕 보관하고 있던 메밀가루를 챙길 정신도 없었기에 시원한 평양냉면을 먹고 싶었던 실향민들은 성에 차지는 않지만 연합국이 보급해 준 밀가루로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어 평양냉면의 맛을 재현하고자 했다.


 이렇게 탄생한 밀면은 냉면과의 관계를 따져보면 친척 관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제부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이차가 많이 나는 형, 동생 사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밀면은 한국전쟁 시기에 부산에서 처음 만들어진 냉면의 동생으로 지금은 부산은 대표하는 먹거리로 오랜 시간 사랑받고 있으며 부산 사람들의 자부심이다. 그만큼 부산에는 밀면집이 많은데 첫 밀면을 만든 우암동에 위치한 <내호냉면>이 가장 대표적이다.

 실향민 할머니로부터 대대로 전해져서 현재 5대째 운영 중인 내호냉면은 평양이 고향이신 손님의 증언에 따르면 옥류관 냉면과 거의 흡사한 맛이라고 한다. 내가 옥류관 평양냉면을 먹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내호냉면은 밀면도 맛있지만 냉면이 더 맛있는 냉면 맛집이다.




 평양냉면을 제일 좋아하는 내가 주로 활동하는 경상도 지역을 기반으로 내가 자주 가는 냉면 맛집 세 곳이 있는데 첫 번째가 앞서 소개한 부산 우암동에 있는 <내호냉면>이고, 두 번째 냉면맛집은 부산 당리동에 위치한 <해주냉면>이다. 무려 1962년에 문을 연 역사를 가진 냉면집으로 슴슴한 맛이 아닌 붉은 양념이 들어간 평양냉면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해주교반’으로 유명한 황해도 해주는 평양보다 남쪽에 위치하며 황해 인근 바닷가 지역이라서 신선한 해산물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해산물의 비린 맛을 중화시키는 양념이 발달했고 물냉면에서 붉은 양념을 추가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평양냉면의 슴슴한 맛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분이라면 해주냉면의 평양냉면을 드셔 보시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구 동산동에 위치한 <대동면옥>이다. 출장을 다니며 대구 토박이 동료의 추천으로 알게 된 곳으로, 이 평양냉면을 먹기 위해 부산에서 대구까지 찾아갔지만 휴업으로 번번이 발길을 돌려야 했던 콧대 높은 집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휴업을 했던 이유가 도토리를 숙성해서 육수를 만들기에 시간이 걸려 완벽한 평양냉면을 제공하지 못해서임을 알게 되어 더더욱 가보고 싶다는 욕망이 끌어 올랐다.


 원래 있던 자리는 골목에 주차도 힘들었지만 현재 이전한 자리는 대로변에 한옥으로 지어 쉽게 찾을 수 있다. 대동면옥의 평양냉면은 슴슴한 맛의 극치로, 냉정하게 말하면 정말 아무 맛도 나지 않는 무(無) 맛이다. 그리고 점성이 약한 메밀이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밀가루를 추가하여 반죽한 면은 차가운 육수와 환상의 조합을 이뤄 내 입을 즐겁게 하고 허기진 배를 가득 채워준다. 나의 유별난 냉면 사랑에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던 아내도 극찬을 아끼지 않은 무맛의 극치, 내 기준으로 최고의 평양냉면 맛집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대동면옥의 평양냉면이 생각나 해가 뜨면 대구로 가고 싶다는 욕망이 들 정도로 자고 나고 생각나는 맛, 평양냉면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이다. 심지어 자주 먹지 못하기 때문에 한 번 갈 때마다 두세 그릇을 먹어 아쉬움을 달래는 집으로 이 평양냉면 때문에 대구로 이사 갈 고민까지 했었다. 완벽한 육수를 만들기 위해 휴업까지 한 사장님의 장인 정신이 깃든 평양냉면 한 그릇을 먹으면서 온몸에 슴슴한 맛이 흘러 항상 냉철한 이성이 깃든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


#평양냉면

#글루틴

#팀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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