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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Feb 26. 2024

부산의 위엄

웬만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 곳


 어제 새벽 창밖의 날씨를 보니 왠지 눈이 올 것만 같았다. 눈 내리기 전 특유의 흐리고 찌뿌둥한 한 하늘이면 어김없이 눈이 내리곤 했다. 2년간 경기도 북부지역에서 눈을 치우던 야생의 감각이 되살아 나며 눈이 쏟아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잠시 후 눈이 빗발처럼 내리더니 금세 산 중턱과 나무 위에 쌓이기 시작했고 나는 어떻게 운전을 해야 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제 내가 바라본 하늘은 부산의 하늘이 아닌 대구의 하늘이었다. 대구는 지형적으로 분지이기 때문에 같은 경상도라도 눈이 오는 날이 제법 되는데 어제가 딱 그날이었다. 다행히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아 도로가 얼어 빙판길이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내리는 눈을 보며 낭만과 신기함보다는 안전에 집중하며 부산으로 내려갔다.


 대구에서 출발해서 현풍을 지나 창원에 이르렀을 때도 하늘에서 눈이 내리고 있었고, 부산처럼 창원에서도 눈 내리는 날이 정말 드문데, 온 동네 강아지들이 꼬리를 흔들며 하늘을 향해 점프를 할 것처럼 제법 눈이 쌓였다. 특히 산에는 눈이 쌓여 나무 위에 하얀 설탕 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크리스마스 시즌의 분위기가 연출되어 있었다.


 부산 은근 창원에도 눈이 내렸으니 조금 더 가면 도다르게 될 부산에도 눈이 내리지 않았을까 기대하며 조심스럽게 운전했는데, 내 기대와는 달리 부산의 하늘에서는 싸릿비가 내리고 있었고, 산이나 나무 그 어디에도 눈이 쌓인 곳은 없었다. 이런 모습을 보자 아내는 “부산은 한국의 동남아”라고 하면서 부산에는 웬만해서는 눈이 내리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내심 기대는 했지만 아내의 말이 전적으로 맞다. 부산에서 30년 넘게 살아왔지만 눈 내린 날을 봤던 기억은 세네 번도 안 될 정도로 손에 꼽는다. 눈 내리기 딱 좋은 날씨여도 바다가 있는 부산의 하늘은 웬만해서는 눈이 내릴 수 없다. 설령 눈이 내린다고 해도 금세 비로 변하기 때문에 천문학자처럼 계속 하늘을 지켜보지 않는다면 비로 변하는 눈조차도 볼 수 없을 것이다.


 군 복무를 하는 동안 살면서 봐야 할 눈은 다 봤다고 생각하지만 눈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아이 때문에 겨울이 되면 눈 내리는 곳을 찾아 여행을 가곤 한다. 마음 같아서는 내 키보다 더 많은 눈이 내리는 삿포로로 같이 여행을 가고 싶지만 올해는 어렵고 내년에 기회를 노려봐야겠다. 눈을 그토록 싫어했던 내가 삿포로의 눈을 보며 순백의 느낌을 경험했던 것처럼 눈을 좋아하는 아이는 어떤 느낌을 경험할지 궁금하다.


 눈 내리는 날은 신비로움과 낯섦, 안전에 대한 걱정 등 온갖 느낌이 교차하는 날이라 마음이 싱숭생숭하지만 눈을 좋아하는 아이를 보고 있자면 그 어떤 감정과 염려도 사라지는 것 같다. 이미 세상 물정을 다 알아 세상의 때가 묻은 나이지만 순백의 눈을 동경하는 아이의 마음처럼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싶다는 욕망이 차오른다.  


#글루틴

#팀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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