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여여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아 May 07. 2024

홋카이도 가족여행 1일 차

아름다운 운하의 도시, 오타루

 새로 생긴 게이트를 지나 홋카이도로 가는 비행기는 사람이 붐비지는 않았다. 어린이날 연휴이긴 하지만 이 시기 홋카이도는 성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홋카이도의 성수기는 삿포로 눈 축제가 있는 12월, 후라노 라벤더 축제가 있는 7월이 극성수기이다. 홋카이도처럼 겨울과 여름 모두 성수기인 여행지가 드물기에 여유롭게 즐기기 위해서는 극성수기를 피해 홋카이도에 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김해국제공항에서 약 두 시간 이십 분 정도 소요되는 홋카이도의 주요 관문은 신치토세 공항이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신치토세 공항으로 나오면 오랜 시간 사랑을 받아온 도라에몽이 반갑게 맞이해 준다. 파란 도라에몽이 보이는 순간, 비행 피로가 사라질 정도로 인증샷을 찍고 국제선 방향으로 이동해서, 렌터카 사무실로 이동하기 위해 접수를 했다.


 

유명 관광지라 많은 렌터카 업체가 있지만 언제부터인지 <타임스 카 렌털>만 이용한다. 공항 밖에 있어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며, 노란색 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가면 넓디넓은 주차장이 있는 곳에 다다른다. 주변 렌터카 업체와 비교해 보아도 넓은 부지에 많은 차가 주차되어 있어 선택지가 넓은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성인 5명, 아이 3명이 탈 수 있는 미니밴을 신청했고 도요타 노아를 기대했는데 닛산 세레나를 받았다.


 닛산 모델은 거의 이용해 본 적은 없지만 일본 미니밴은 말 그대로 거기서 거기 일 정도로 비슷한 점이 많다. 최근 도요타의 미니밴 모델 알파드가 인기리에 판매된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미니밴 수요가 충분하다고 생각하기에 카니발 외에 별다른 선택지가 없는 RV 시장이 더 다양해졌으면 좋겠다. 일본 미니밴은 내부 수납공간도 곳곳에 있어 8명의 짐은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는다.



 오타루로 출발하기 전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식당을 찾다가 신치토세 공항을 한 바퀴 돈 후 지나가는 길에 우연히 본 식당을 보고 맛집 일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으로 방문한 곳에서 맛있게 소바를 먹고 작지만 아름다운 운하의 도시, 오타루를 향해 이동했다. 영화 <러브레터>의 주요 촬영지로 유명한 오타루는 결혼을 앞둔 커플들의 웨딩 촬영을 많이 하는 곳이기도 하다.


 오타루는 삿포로시에 작은 도시이지만, 볼거리 먹을거리가 정말 많은 곳이다. 특히 오르골당이라는 상점은 작은 오르골의 아름다운 선율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곳으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는 해리 포터 덕후인 나의 판타지 세계로 인도하는 마법의 주문과도 같다. 1층뿐만 아니라 2층에서 다양한 오르골이 진열되어 있어 두세 시간은 거뜬히 보낼 수 있는 빠져나오기 어려운 곳이다.

 특히 오르골당 앞에 있는 증기 시계탑은 매 30분, 정시마다 ‘뿜뿜’ 증기기차와 같은 소리를 내며 시간을 알려주는데, 이 소리를 듣기 위해 시계탑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유명 관광지이다. 나는 오타루를 방문할 때마다 매번 우연히 증기 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하늘로 향해 사라지는 증기를 보며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눈에 보인다는 느낌이 들어 시간을 더 소중하게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다.


 수많은 오르골을 보자 눈을 어디에 둘지 몰라 고민하던 아이를 아내 손에 맡기고 장모님과 함께 오르골당 근처에 있는 ‘LeTAO’라는 카페에 왔는데, 이곳은 홍차와 디저트의 천국이다. 차를 좋아하시는 장모님도 오타루 현지의 맛을 느끼실 수 있도록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고 있으니, 아내도 아이의 손을 잡고 합류했고 오타루의 홍차와 치즈케이크를 먹으며 잠시 여행의 피로를 달랬다.



 오타루는 운하의 도시라는 별명과 함께 수산물이 유명한 도시이다. 일본 전체가 섬나라이니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오타루는 특히 청어잡이로 유명하며 청어잡이가 번영했던 시절 운하 근처에 있는 거대한 창고들이 지난 역사를 알려준다. 오타루 상점 거리를 거닐며 생전 처음 보는 신기한 모습에 심취된 아이의 흥분 레벨은 최고치를 경신하는 듯 보였지만, 아직 홋카이도의 매력을 느끼기에는 한참 부족하게 보였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한 숙소에 짐을 풀고, 각자의 취향에 맞게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아내의 추천으로 <와라쿠>라는 초밥집에 갔다. 아이들을 위해 테이블 좌석을 신청했는데, 이날 20명 가까운 대식구들이 나보다 먼저 와 계셔서 웨이팅 지옥을 경험하며 한 시간 정도 기다린 후에 겨우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현란한 손길의 초밥 장인이 만들어주는 초밥을 먹으며 텅 빈 배속을 채우고 진짜 오타루의 매력을 느끼기 위해 다시 운하로 향했다.

 낮보다 밤이 아름다운 도시, 특히 눈 내리는 밤의 오타루 운하는 내 안에서 사라진 낭만을 되살릴 정도로 낭만 그 자체인 공간이다. 운하를 가로지르는 유람선을 타지 않더라도 어둠이 짙게 내린 오타루 운하 옆을 거닐고 있으면 마음속 깊은 곳에 잠자고 있던 추억이 떠오르고 메마른 감수성이 활짝 꽃 핀다. 특히 운하 주변에 있는 가로등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으면, 패트릭 해밀턴의 <가스등>이 떠올라 마치 유럽 어느 곳에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오타루에서 숙박을 한 것은 호텔 소니아 이후 두 번째로, 빡빡한 여행 일정으로 오타루에서의 숙박을 어쩔 수 없이 포기한 사람들이 후회할 정도로 낮과 밤이 모두 아름다운 곳이다. 낮에는 상인들의 활기와 고즈넉한 운하의 낭만, 그리고 어둠이 내린 거리의 고요함이 합쳐져 오타루만의 매력을 발산한다. 괜히 영화 <러브 레터>의 촬영지로 선별된 것이 아니라는 느낌을 주는 메마른 감성이 채워지는 사랑의 도시이다.  그래서 오타루를 사랑할 수밖에 없고 홋카이도를 방문할 때면 늘 오고 싶어지는 곳이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홋카이도 가족여행 프롤로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