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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Jun 11. 2024

눈물 없는 역사는 없다

역사를 잊으면 안 되는 이유

 벌써 20년도 지난 과거의 일이지만 군 복무를 하면서 마음속에 새기고 있는 것이 있는데 바로 전쟁이 일어났을 때 마음가짐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반드시 승리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승리해야만 한다”라는 문장으로 정리했던 전시 태도이다. 나는 단 한 번도 전쟁을 경험해 보지는 못했지만 전쟁의 참혹한 결과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전쟁이 나면 최대의 피해자는 여성과 아이이기에 이들이 고통받지 않기 위해서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군대라는 가장 비효율적인 조직 내에서 다짐했던 흔적이 아직도 가슴속에 남아 있다.


 한국전쟁 기간 중 태어나신 아버지는 전후 고통의 순간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참 어렵게 컸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셨다. 아버지 고향인 경남 고성까지 인민군이 쳐들어와 소를 끌고 갔다는 이야기부터 인민재판을 해서 한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다는 이야기까지 어릴 적부터 들어온 한국전쟁의 이야기는 전쟁의 문턱도 들어가 보지 못한 나에게 전쟁만은 피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져다줄 정도로 상상하기도 싫은 최악의 고통이 되었다.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잊히겠지만 이 땅에 한국전쟁이 일어났다는 사실만은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한국전쟁이  발발한지도 벌써 74년이 지났지만 아직 종전이 아닌 휴전 상태이며, 최근 경기도에서 북한이 보낸 오물 풍선의 피해에 대한 뉴스를 보면서 끝나지 않은 전쟁을 요즘 사람들은 어떻게 기억할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전쟁 초기에는 연일 뉴스에 보도될 정도로 온 세계인의 관심을 받았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지만 전쟁 중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전쟁은 인간의 역사를 통째로 바꿔 놓았으며 전쟁이 끝난 후 그 지역은 인구의 감소는 물론 생활의 터전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비참한 최후를 맞보았다. 물론 동전의 양면처럼 피해를 본 지역이 있으면 이득을 본 지역도 있는데 한국전쟁의 사례를 보면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 최악의 시절을 보냈던 일본은 한국전쟁 때는 미국의 전진기지로 군수 물자 판매를 통해 패전국의 기억을 잊을 정도로 호황의 시기를 보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국토의 80% 이상이 초토화될 정도로 역사상 최악의 시절이었다.


 이런 전쟁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나라가 어디 한국뿐이겠냐마는 일본 속의 타국, 오키나와에서도 한국전쟁과 같은 전쟁의 아픔이 있었다. 바로 오키나와 전투인데 1945년 4월 1일에 시작하여 무려 81일 동안 지속되었던 태평양 최대의 전투로 이 기간 동안 오키나와 주민의 3분의 1이 이상이 비참하게 목숨을 잃었다. 전쟁에 참여하면 황국신민의 자격을 주겠다는 감언이설로 전투의 최전선에 세워 총알받이로 사용한 일본군의 괴략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전쟁의 희생양이 되었다.


 오키나와 전투에서도 많은 오키나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도 오키나와 땅을 점령한 이들에게 차별과 멸시를 받으며 해상무역으로 작지만 독자 세력을 가졌던 류큐왕국을 이어가며 그 땅에 살았던 우치난츄(오키나와인)의 어두운 삶이 시작되었다. 내가 중학생 때 오키나와에 대해 처음 알게 된 20대 젊은 미군이 오키나와 여중생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뉴스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지만 그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으로 더 많은 사건, 사고가 오키나와에서 발생했다. 누군가에 의해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오키나와는 그 누구의 땅이 아닌 오키나와 사람들의 땅이다. 지금은 일본에 합병되어 일본어를 쓰고 있지만 원래 이곳에는 오키나와어가 있었고 지금도 노령층에서는 일부 사용하고 있다. 외세의 침략으로 나라가 짓밟히고 핍박받아도 자신의 말과 글을 잊지 않고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헌신 덕분에 지금도 한글을 사용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같은 사례는 전 세계를 찾아보아도 드물다. 한국인의 강한 정신력을 다른 나라의 역사를 보며 알게 되는 기쁨은 그 어떤 것으로도 표현하기 어렵다.

 

 힘이 약한 민족에게 눈물의 역사가 있지만 역사를 교훈 삼아 다시는 아픔의 시간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전쟁의 아픔과 오키나와 전투의 아픔을 가진 한국과 오키나와는 고려 삼별초의 이야기와 홍길동전 속의 율도국의 모델로 추정하고 있을 정도로 우리와 역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사서에도 유구국에서 조공을 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와 깊은 관계가 있었던 류큐왕국의 후예인 오키나와 사람들을 볼 때마다 오키나와 전투의 아픔이 나에게도 전해지는 것 같다.


진정한 작가라면 당대의 고통, 상처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 누구도 말하지 못하는 고통을 말하지 않는다면 작가가 아닌 글쟁이라는 평가를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역사의 흔적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아닌 역사를 교훈 삼아 두 번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사람들에게 알리며 전하는 것이 작가의 임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매일의 글쓰기로 나의 흔적을 남기는 것처럼 내 민족, 내 나라의 흔적도 기억하고 후대에 물려주는 역사의 하루를 보낼 것이다.



오키나와의 눈물 / 메도루마 슌 / 논형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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