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는 이렇게 말했다, 헤르만 헤세
2018년 스위스 가족 여행을 하면서 루가노라는 지역을 지날 때, 문득 이곳에 헤르만 헤세가 노년을 보냈다는 사실이 떠올라 급히 헤세가 살았던 집과 그의 무덤을 찾아간 적이 있다. 정갈하게 정리된 그의 집과 대문호의 무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한 무덤을 보았을 때 과연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람이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공동묘지 속 묘비를 들여다보기 전에는 어떤 무덤이 헤르만 헤세의 무덤인지 알기 어려웠기에 대문호라 할지라도 죽음 앞에서는 보통의 사람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오히려 화려하게 꽃으로 장식된 무덤이 헤르만 헤세의 무덤인 줄 알고 찾아갔으나 그의 무덤이 아니라는 것을 금세 알고 이곳저곳을 찾아다녔다.
그의 무덤은 공동묘지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고, 그를 기리는 몇 개의 꽃이 놓여 있었지만 내가 기대했던 크고 화려한 무덤이 아닌 보통의 무덤이었다. 화려한 문체보다는 자신이 직접 삶에서 깨달은 것을 글로 표현했던 그의 작품처럼 인생의 덧없음을 말하는 것과 같은 그의 무덤마저도 깨달음을 전하는 것처럼 보였다.
헤르만 헤세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작품들이 남아 그의 생각을 전한다. 헤세의 노년은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스위스에서 보낼 수밖에 없었지만, 그가 걸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길을 걸으며 헤르만 헤세처럼 생각에 잠겼던 일을 회상한다.
당시 나는 <데미안>만 읽었던 터라 귀국 후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찾아 읽으며 그의 집과 무덤에서 했던 생각을 정리했다. 과연 헤르만 헤세는 그의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했고 어떤 것을 남기려고 했는지를. 죽은 자는 말이 없는 것처럼 그의 무덤도 헤르만 헤세라는 묘비 외에는 그의 무덤인지도 모를 정도로 말이 없었다.
위대한 작가 헤르만 헤세도 세월의 흐름을 막을 수 없었고 죽음 앞에서는 보통의 인간처럼 한없이 작은 존재였다. 하지만 헤르만 헤세는 진작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의 작품 속 인간의 유한함을 인정하며, 그 유한한 시간 속에서 유의미한 것을 추구해야 한다고 했다. 마치 그의 삶도 언젠가는 끝난다는 것을 알기에 자신도 유의미함을 추구하려고 노력했던 모습이 고스란히 그의 작품 속에 남아 있다.
작가는 현실의 문제에 대해 날카로운 감각으로 해석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실은 현실일 뿐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자세는 방만이며 현실 문제에 대한 동조라고 여긴다. 작가가 이것을 글로 표현한다고 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지만, 글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문제로 인식하게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의 세계 대전을 거치며 인간의 잔학성을 경험했던 헤르만 헤세는 결국 인간이 회복해야 하는 것, 진정 추구해야 하는 것을 ‘사랑’이라 표현했다.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사랑을 회복하는 휴머니즘을 노래했다.
헤르만 헤세가 전한 사랑의 문장이 담긴 그의 작품을 보면서 앞으로 인생에서 무엇을 추구해야 할지 생각한다. 그가 진정한 인간이라면 현실에서 회복해야 할 인간의 본성을 찾고, 온 세상을 사랑으로 바라보고 행동한다면 헤르만 헤세가 전한 대로 세상을 살만한 공간이며, 인생도 충분히 살아봄직할 것이라 믿는다.
헤세는 이렇게 말했다 / 헤르만 헤세 / 책 읽는 오두막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