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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 베풂의 행복

순례주택, 유은실

by 조아

요즘 여행에 대한 생각을 할 때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다는 욕망을 떨쳐 버릴 수 없다. 직장인으로 살면서 긴 휴가를 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순례기를 걸을 수 있을지 큰 의문이 든다. 운 좋게 휴가를 내어 산티아고 순례길을 갔는데 완주를 못하고 돌아오게 될까 봐 걱정하는 마음도 크게 작용한다.


‘순례’라는 단어 때문에 산티아고 순례길이 거창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달리 본다면 그냥 길이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라고 불리는 이 길은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의 무덤으로 가는 길이다. 그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길, 즉 성인의 무덤으로 가는 길을 걷는 순례자들이 하나둘씩 생기면서 순례길이라는 또 다른 이름이 붙었다.


순례자들이 생기면서 이들이 여행의 피로를 풀고 여장을 풀 수 있는 알베르게가 생기면서 순례자들이 더 편하게 순례의 길을 떠날 수 있었고, 한때는 많은 사람이 몰려 순례의 길이 아닌 관광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곳도 사람들이 사는 곳이고, 순례자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 중 한 명일 뿐이다.



과거 이곳을 배경으로 촬영한 <스페인 하숙>이라는 방송을 즐겨 봤다. 정말 가고 싶은 곳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사실도 좋았지만, 실제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이 더 좋았다.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고, 무엇을 찾기 위해 걷는지를 나누는 솔직한 그들의 이야기는 나의 온 관심을 주목시키기 충분했다.


누군가는 깨달음을 위해 왔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주목받기 위해 왔을지도 모른다. 혹여 다른 목적을 가지고 왔다 하더라도 이 길을 걷다 깨달음을 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천사를 만나는 영적 체험을 했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천주교 신자뿐만 아니라, 깨달음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산티아고 순례길은 성지순례와도 같을 것이다.


친구 중 한 명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와서 경험담을 들은 적이 있다. 자전거로 유럽 여행 중 들렸기에 걷는 대신 자전거를 타고 그 길을 달렸는데,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이 길을 각자의 다양한 이유로 걷는 모습이 정말 경이로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어쩌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내 안에 쌓여 있는 모든 근심과 걱정을 쏟아 버릴 곳이 필요할 때마다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올린다. 요즘 글쓰기를 하며 근심과 걱정을 정화하고 있지만 순례길에서 떠오르는 생각은 이런 속세의 염려마저도 모두 흡수해 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순례 주택> 속 김순례 할머니는 마치 순례길을 걷는 이들에게 편안한 잠자리와 휴식처를 제공하는 알베르게 주인장과 같다고 생각한다. 누구도 관심 가지지 않는 순례자의 이야기와 사정에 귀 기울이고 관심을 가지며, 그들에게 하나라도 더 주기 위해 진심을 다하는 모습은 현대 도시 속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인간미 넘치는 모습이다.


오늘을 살아가기 바쁜 현대인에게 주변의 도움이 필요한 손길은 솔직히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앞만 보고 달려도 힘든데 옆과 뒤를 보며 달릴 수 있는 여유가 없기도 하겠지만, 혹여 그런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을 때 뒤 쳐질지 모른다는 염려와 선의의 행동이 오해받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으로 시도조차 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자세는 오직 나만이, 나의 가족만이 잘 먹고 잘 살아야 하는 동기를 만든다. 물론 나와 나의 가족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나쁘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나와 나의 가족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나밖에 모른다면, 나의 가족만을 위한다면 과연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을 어떤 방법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또한 나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자기중심적 사고로 변질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정도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해결되었다면 무엇을 위해 사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한다. 잘 먹고 잘 사는 것도 무엇을 위해 사는지에 대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면 결국 존재의 의미를 설명하지 못한다.



손흥민 선수를 키운 손웅정 감독님은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라는 그의 저서에서 항상 인간이 먼저 될 것을 요구했다. 그런 교육관 덕분에 손흥민 선수의 인성이 어떤 순간, 그 어느 곳에서도 항상 바름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낀다. 공부를 잘해 명문대에 진학하고, 돈이 많아 풍족함을 누리는 것도 좋지만 그전에 선행돼야 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 되는 것이다.


풍족한 유산을 누릴 수 있지만 부도덕한 방법으로 벌었다는 이유로 유산을 상속하지 않았던 김순례 할머니의 결단은 어쩌면 어리석은 선택으로 평가받을 수도 있지만, 할머니가 세운 순례 주택에서는 그 돈은 결코 참 되게 사용되지 못했을 것이다. 함께 산다는 진정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공간에서 가족보다 더 가족애를 느낀 수림이의 고백처럼, 같은 지향점을 가진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물론 가상의 공간인 순례 주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각자의 이유로 이곳에 왔지만, 순례 주택에 살게 되면서 김순례 할머니의 규칙을 따르며 강퍅한 현실의 차가움이 아닌, 나눔과 베풂으로 채워지는 따뜻함을 배웠을 것이다. 이런 따뜻함이 명문대 학위증과 떳떳하지 않은 유산보다 더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한 곳, 바로 순례 주택이다.



순례주택 / 유은실 / 비룡소 /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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