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 사람과 고구려인이 남긴 흔적

국토박물관 순례 1, 유홍준

by 조아

요즘은 사람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력이 좋은 편이었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얼굴은 생각나는데 이름이 바로 떠오르지 않아 한참을 끙끙 앓다가 무릎을 딱 치며 이름을 기억해 낸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나를 보면 참 우스꽝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이미지로 그 존재를 기억한다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어떤 한 대상을 떠올릴 때 바로 연상되는 이미지는 그 대상의 표상이자 모든 것이다. 과연 나는 이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까 생각하며, 만약 가지고 있지 않다면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가야 할지를 고민한다.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이 우리에게 알려 주듯이 인간은 방금 배운 것도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내가 기록하는 이유도 잊기 위해서 기록하는 것이지만, 결코 잊으면 안 되는 것도 있다.



바로 우리의 역사이다. 과거 제국주의 열감의 탐욕으로 암흑기를 보냈던 일본에 의해 우리 민족의 역사는 무참히 짓밟혔다. 나의 성씨를 쓰지도 못했고, 나라의 국기도 함부로 들지 못했으며 찬란한 우리의 역사는 그들의 사관으로 해석되어 식민사관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 있다.


역사가 있다면 반드시 그 기원이 있는데, 유물을 통해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인 고인돌, 순우리말로 돌을 괴어서 받치고 있다 해서 고인돌 또는 지석묘라고 불린다. 전 세계적으로 6만 여기가 존재하는 고인돌 중 4만 여기가 한반도에 분포한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한반도에서 청동기 시대 많은 사람이 거주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단순히 고인돌이 많다고 해서 청동기 시대에만 한반도가 번창했던 것은 아니다. 구석기,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유물들이 동굴, 구릉지, 해안가에서 발견되어 한반도는 구석기시대부터 인간이 살았던 풍요로운 땅이었음을 증명한다.



대표적인 구석기 유적지로 전곡리 선사 유적이 있는데 그레그 보웬이라는 미군 병사에 의해 우연히 ‘주먹도끼’가 발견되어 유럽에서만 발견되었던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동북아시아에서 사용되었다는 것을 밝혀 내었다. 한탄강, 임진강, 차탄천이 만나는 비옥한 이 땅에서 구석기인들이 살았고 그들의 흔적을 고이 남겼다.



이뿐만 아니라 부산 영도 동삼동에 있는 조개무지 또는 패총으로 불리는 유적을 통해 신석기시대 해안가에서 무엇을 먹고살았는지 알 수 있다. 패총은 신석기인들의 쓰레기장으로 조개껍질, 생선의 뼈 등을 버렸던 것이 쌓이고 쌓인 흔적이다. 울산 울주군에는 천전리 각석과 반구대 암각화를 보아도 고래를 사냥하며 살았던 그들의 삶이 바위에 기록되어 있다.


이 유적지들은 모두 내가 방문해 본 곳으로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로 이어지는 선사시대의 흔적과 그들의 삶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전곡리 유적지에서 가장 크게 놀랐던 사실은 그레그 보웬이 고고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주먹 도끼가 그냥 돌이라고 생각했지만, 보웬의 눈에는 몇 백만 년 전을 거슬러 과거의 비밀을 풀어주는 열쇠로 보였을 것이다.



시간이 흘로 한반도에는 삼한이라는 연맹체에서 고구려, 신라, 백제라는 고대국가가 태동했고 각자의 빛나는 문화를 만들었다. 그중 수, 당나라와의 경쟁에서 전혀 밀리지 않고 그들의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던 드넓은 북방의 대륙을 호령했던 개마 무사의 기상이 대표적인 고구려, 가 보고 싶어도 자유롭게 가 볼 수 없는 타국의 땅이 되어 버린 우리 민족의 찬란한 흔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반도에 고구려의 흔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충주에 있는 중원고구려비부터 단양의 온달 산성, 경주의 호우명 그릇까지 한반도 곳곳에 고구려의 영향이 있었다는 것을 유물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런 유물은 고구려가 지배했던 땅으로 갈 수는 없지만 고구려인을 만나기 위해 과거로 여행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타임캡슐과도 같다.


고구려인이 남긴 유물 중 가장 보고 싶은 유물은 중국 집안 시에 있는 광개토태왕비인데, 거대한 크기만큼 고구려인의 기상을 느낄 수 있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광개토태왕비가 보고 싶을 때마다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에 있는 석당 박물관을 찾아간다. 여기에는 광개토태왕비의 모조품이 있어 광개토태왕비는 아니지만 모조품만 보더라고 그 여운을 충분히 달랠 수 있다.



지금의 K2 흑표전차처럼 강력한 기동력을 자랑했던 개마 무사가 고구려의 대표적인 군사력으로 알고 있지만 고구려인은 공격뿐 아니라 방어에도 능한 사람들이었다. 특히 적성성(돌을 쌓아 만든 성)의 축조하였고 고구려성은 ‘치’라는 독특한 구조물을 만들어 효율적인 방어를 할 수 있게 하였다. 지형을 이용할 줄 알았고 ‘치’를 통해 삼면에서 공격하는 적을 방어할 수 있는 그들의 지혜는 과연 전쟁에 능했던 인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상들이 남긴 역사는 승자의 역사라 망국이 되어 버린 고구려의 진짜 역사를 알 수는 없지만 이런 유물을 통해 그들의 정신과 문화를 추정할 뿐이다. 고구려도 우리 조상이요, 백제도, 신라도 우리의 자랑스러운 조상이다. 비록 삼국을 나누어져 서로 경쟁하고 전행하였지만 한 뿌리에서 나온 우리의 조상이자 기원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들의 역사가 남긴 유물을 통해 역사가 증언하는 소리를 경청하며 역사를 잊지 않고,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 앞으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야 할 중책을 다시 한번 더 상기하며 오늘을 살아 나만의 역사를 만들 것이다.



국토박물관 순례 1 / 유홍준 / 창비 /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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