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행복, 김신지
내가 중, 고등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생일을 음력으로 지내는 사람이 꽤 많았기에 다이어리에 생일을 기록할 때는 음력이면 날짜 옆에 ‘-(마이너스)’ 표시를 해두었다. 당시에는 컴퓨터가 있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검색하기에는 상당히 불편했기 때문에 양력으로 표시하고 다시 달력을 찾아 음력으로 며칠인지 찾아야 했다.
예를 들어 2024년을 기준으로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인 추석은 음력 8월 15일이지만 양력으로는 9월 17일이다. 음력과 양력의 날 차이가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지만 예전부터 음력과 양력을 구분해서 쓰는 것이 정말 불편했다.
음력을 사용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이스라엘, 중국, 베트남 등의 나라에서 사용되고 있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농사와 관련해서 음력을 사용하게 되었다. 특히 추운 겨울이 나가 봄이 왔을 때부터 농사를 시작하는 계절적 지표로 음력을 사용했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이 음력만을 사용했던 것은 아니다. 세종 때 ‘칠정산’이란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역법서를 통해 한 해를 24절기로 나누고 농사에 이용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24절기를 나누는 기준이 음력이 아닌 양력이란 사실이다. 천구상 태양이 1년에 걸쳐 이동하는 경로를 ‘황도’라고 하는데 황도의 360도를 15도 간격으로 나눈 것이 바로 24절기이다.
24절기는 계절을 세분화한 것으로 대략 15일이 한 절기이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부터 가장 추운 대한까지 24절기를 보면 이름만 들어도 계절의 변화를 짐작할 수 있다. 농사에 있어 비가 정말 중요한 데, 비 우(雨)라는 한자가 들어가는 절기는 단 두 개, 우수와 곡우이다. 아무리 농사를 잘 지어도 비가 오지 않으면, 그해 농사는 망칠 수밖에 없기에 비 내리는 때를 아는 것은 정말 중요했다.
‘철부지’라는 말의 어원도 절기, 제철을 모른다는 것에서 유래되었으며 지금이 어느 때인지 모르고, 이때에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으면 한 해의 농사를 망칠 수밖에 없었다. 제철을 모르는 철부지와 달리 철이 든 사람은 지금 무엇을 해야 하고, 다가올 제철을 위해 미리 준비해야 하는 것을 아는 사람을 뜻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은 참 드물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일, 지금 해야만 할 일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제때를 알고 행동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봄을 알리는 입춘부터 농사를 준비하고 절기에 맞춰 미리 준비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추운 겨울 먹을 것도 없이 배고픔에 시달렸을 것이다. 절기를 안다는 것은 생존이며, 겨울을 준비하는 행동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절기는 존재하지만 조선시대와는 달리 농사가 나라의 근본은 아니기에 절기를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지만 인생의 절기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노년에 맞이하는 대한이 추위와 배고픔이 지배하지 않도록 풍요로운 대한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인생의 절기를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제철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누릴 수 있는 행복, 제철의 행복을 누려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아니면 누릴 수 없는 행복은 지금 당장 누려야 한다. 나중에, 조금 있다가 하면 제철은 금방 지나간다. 제철의 행복을 누리는 것은 철이 든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과일 단식을 하면서 가장 누릴 수 있는 제철 행복은 바로 제철 과일을 먹는 것이다. 무더운 여름 수박과 복숭아를 마음껏 먹으며 ‘대서’를 무사히 견디며 이제는 가을의 길목 ‘입추’를 지나 ‘처서’를 맞이한다. 앞으로 찾아올 겨울을 알리는 백로가 찾아오기 전 여름옷을 정리하고 긴팔과 두툼한 겨울옷을 꺼내 놓은 것부터 두툼한 겨울 이불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계절의 변화를 24절기를 통해 느끼며 제철을 아는 지식으로 제때를 즐기고 제철의 행복을 누리는 삶이 진정 일상의 행복을 누리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제철의 행복이 삶에서 넘치도록 내가 어느 절기 생인지 확인하며 24절기를 아는 철든 존재가 될 것이다.
제철 행복 / 김신지 / 인풀루엔셜 /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