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매일 달릴 뿐
달리기를 시작할 때쯤 나의 루틴은 하루를 책 읽기와 글쓰기로 시작했다. 이 루틴을 하기 전 일어나자마자 몽롱한 상태로 책을 읽는 것이 정말 가능할까 의구심을 품기도 했지만, 실제 해보니 오히려 글자가 더 또렷하게 눈에 들어옴을 알 수 있었다. 이 루틴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일 년 정도 노력했고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고 있을 무렵, 나는 또 한 번의 변화를 시도했다. 일종의 정체기이기도 했지만, 하루를 보다 에너지 넘치게 사용하고 싶었기에 기상 후 바로 달리기를 하는 루틴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처음 시도했던 것은 극악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7월부터로 일 년 동안 공들여 만든 습관을 놓치고 싶지 않아, 새벽에 일어나하던 대로 루틴을 하고 퇴근 후 달리기를 하는 연습을 했다. 하지만 체력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라, 저녁 달리기는 수면에도 영향을 주어 새벽 기상을 힘들게 했고 해가 진 저녁이라 할지라도 열대야 현상이 지속되던 때라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날 정도의 날씨에 달리기를 하는 것은 그 자체가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시도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기를 여러 번 하다 결국 다섯 번 정도 달리기를 했던 7월과는 달리, 8월부터 새벽 달리기로 전략을 바꾸었다. 퇴근 후 하는 달리기는 수면에도 방해가 되고, 혹여 회식을 하는 날에는 달리기를 할 수 없기에 출근에 문제가 없는 선에서 새벽 달리기를 한다면 매일의 달리기는 물론 에너지 넘치는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달리기로 체력 소모가 일어나지만 에너지가 넘친다는 역설적인 말을 믿기 어려웠지만, 일단 해보기로 했다.
일어나자마자 달리기를 하러 밖으로 나가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았기에 초반에는 운동복 차림으로 자는 날도 있었다. 일어나서 양치질만 하고 한 모금의 물을 마신 후 밖으로 나가 달리기를 하는 최단 코스를 유지해야 고민할 시간을 주지 않았기에 빠르게 밖으로 나가기 위함이었다. 특히 비가 오는 날에는 오늘도 달려야 하나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한 번 우중 달리기를 해보니 이제는 비가 와도 바람이 강하게 불어도 무조건 달리기를 하러 나간다. 한 번이 어렵지 한 번 해보면 두 번은 어렵지 않다.
달리기를 싫어했던 사람이 달리기를 평생의 습관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도 믿기 어렵고 우습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가족들과 주변의 시선보다는 내가 진정 원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달리고 또 달렸다. 처음에는 그만 달리고 싶다는 유혹이 들기도 하고, 고작 2km밖에 달리지 않았는데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숨이 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의 달리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일 년에 100km는커녕 10km의 거리도 달리지 않았던 내가 8월에는 무려 125km를 달렸고, 9월에는 180km를 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으나 예상보다 빨리 10km 가상 마라톤을 연습하게 되면서 목표를 200km로 수정했다. 목표를 세우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매일의 달리기를 했을 뿐인데 어제 드디어 8월 한 달 동안 200km를 달리겠다는 목표를 이루었다. 아직 이틀이나 남았지만 궂은 날씨라도 담담하게 밖으로 나가 달렸기에 목표를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8월의 달리기 습관은 매일의 달리기를 위한 체력을 만들기 위함이었다면 9월의 달리기 습관은 10km의 거리를 달릴 수 있는 몸을 만들기에 초점을 두었다. 아직 한 시간 십 분대로 페이스는 빠르지 않지만, 런데이 애플리케이션 가상 마라톤 프로그램에서 8번 완주를 했다. 순위는 중요하지 않지만 나름 순위도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 단 한 번도 중도 포기하지 않고 모두 완주했다는 점에 큰 의미를 둔다.
10월부터는 11월 3일에 참가할 예정인 10km 마라톤 대회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위해 12km와 15km 가상 마라톤을 집중적으로 연습할 계획이다. 처음 10km 마라톤 대회에 참가할 시기를 고민할 때도 15km의 거리를 달릴 수 있는 체력을 만들었을 때로 정했을 정도로, 10km 마라톤 대회를 위해서는 그 이상의 거리를 달릴 수 있는 체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대회 버프의 효과를 누릴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인 체력이 되지 않는다면 대회 전 충분히 연습하지 않는다면 대회 버프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나의 목표는 10km 마라톤 완주가 아니라 마라톤 풀코스를 넘어 100km 울트라마라톤에서 완주하는 것이기에 10km 마라톤을 달릴 수 있는 체력을 만드는 것에 그칠 수 없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홋카이도 사로호를 달리는 울트라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여 무라카미 하루키와 같이 달릴 수 있는 영광을 누릴 날을 상상한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느낌이 넘치는 달리기를 평생의 습관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매일 달려야 한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냥 달리면서 심장이 뛰는 것으로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며, 멈추지 않고 완주할 때까지 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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