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애주가의 고백

술의 역할을 잊은 자에게 고함

by 조아

정확하게 인류에게 언제 술이 전해졌는지는 모르지만 포도를 수확하고 남은 포도를 보관하다 우연한 사건으로 발효가 되며 와인의 시초가 전해졌다는 추측이 있을 뿐이다. 인류에게 처음 전해진 술은 곡식을 수확했을 때, 부족의 제사를 드리는 특별한 날에만 마실 수 있는 귀한 것이었으며 권력자에게만 허락된 일종의 귀중품이었다. 사회가 발전하고 술 제조 기법이 다양해지면서 편의점에 가면 쉽게 구할 수 있는 상품이 되어버린 술은 하루의 고단함을 풀어주는 최고의 선물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새벽녘 고성방가의 원흉도 알고 보면 술이요, 각족 사회 문제를 보도하는 뉴스를 들으면 술 취해서 몰랐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또한 최근 미국에서는 전업주부로 경력단절과 육아, 집인일에 대한 우울증으로 주부의 알코올중독(kitchen drunk)이 사회적 문제가 된 이슈가 있었다.


술은 좋은 것일까?, 아니면 나쁜 것일까? 하는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술 자체의 좋고 나쁨은 없다. 본가에 100년이 넘은 안동소주가 있는데 개봉조차 하지 않고 바라만 보고 있는 이유는 아무도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몸이 허약해서 술을 못 마신다고 농담을 하기도 하지만 사실 신앙적인 이유로 술을 마시지 않는다. 물론 성경에 ‘술 마시지 말라’는 말은 없지만 ‘술 취하지 말라’는 말이 있어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은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술을 마시지 않을 뿐이다. 예전 와인에 대해 관심이 있어 시음해보기도 했지만, 와인은 술이 아닌 음식이자 문화라고 생각하면 된다는 말에 잠시 고민하기도 하다가 내가 술을 감당하기 힘들다고 판단해서 마시지 않는다. 나도 나의 주사가 어떤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굳이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회생활하면서 술을 마시지 않고 어떻게 할 수 있어요?”라는 질문에 할 수는 있지만 쉽지는 않다고 대답해 왔다. 내 경험으로도 정말 쉽지는 않았는데 처음에는 회식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고욕이었다. 나 빼고 술 취한 사람들 속에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맨 정신에 그냥 두고 가는 것은 없는지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확인하고 사람들 소지품 챙기는 일을 하다 보니 나는 회식자리에 빠지면 안 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특히 집이 나와 같은 방향인 사람들은 꼭 나를 회식자리에 데리고 가서 맛있는 것을 사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나처럼 술 마시지 않는 운전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쁜 날은 기뻐서 술을 마시고, 힘든 날은 힘들어서 술을 마시며, 슬픈 날은 슬퍼서 술을 마셨던 인간 감정의 도우미가 된 술은 일 년 중 수확이나 특별한 행사의 상징에서 일상적인 것이 되었지만 절제되지 않은 술은 각종 문제의 원인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알코올중독과 음주운전, 미성년자 음주 등 사회적 문제의 원흉으로 지탄받고 있지만 문제는 술이 아닌 술을 마신 사람이 원인이라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관련 법규도 아쉬운 점이 미성년자에게 주류를 판매한 사람에게만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처럼 일정 시간이 지나면 주류 판매점의 문을 닫게 하거나 술을 구입한 사람까지도 처벌하는 법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은 ‘술 마시면 그럴 수도 있지’라는 술에 대해 관대함이 있기 때문에 더욱 심각한 문제를 유발한다. 이제는 술에 대한 관대함을 버려야 할 때이다.


종교에 귀이한 수도자와 같은 절제가 아닌 일상 속에서 자신의 주량을 알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상태까지만 음주를 하는 절제력이 필요하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으로 일본의 반주문화는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술의 풍미와 음식 본연의 맛이 더해진 입 속의 향연이 주는 먹는 즐거움은 인생의 묘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으면 배부르고, 자주 먹으면 질리는 것처럼 술이 음식이라는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술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 술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닌, 자리를 더욱 빛내고 안면의 홍조를 만들어줘서 살짝 기분 좋은 상태로 만들어 주는 것이 본연의 술이 가진 역할이다. 그 이상이 되면 술은 독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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