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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에 문을 여는 서점에서 산 책

필요하지 않았고 필요해진 것에 대하여

by 유앤나
그리고 이렇게 매일
인사를 해야 하는 사람이 한명 더 있는데요.

아침 7시에 문을 여는 서점 두번째 이야기




첫번째 이야기 ▼



바로 '나'입니다.
네 아침에 가장 먼저요.



오늘 아침, 인사를 해보셨나요?

간밤에 한두번 깼다거나, 어떤 꿈을 꾸었다거나, 평소와 다르게 요즘 아침에는, 이른 새벽에는 어떤 기분이 드는지.. 요즘따라 좀... 요즘 왠지... 라는 말이 늘어난다면, 인사를 해야할 때가 된겁니다.


큰 일이 일어나면 알죠. 그런데 작은 일은 약간 불편한 마음이 들어도 일단 그냥 합니다. 새삼스럽게 묻지 않으면 나중엔 스스로 확인하는 방법도 어려워지죠. 그러다보면 나도 날 잘 모르겠다고 마무리를 하고 맙니다.


내가 기억하는 내가, 몇달 전 혹은 몇주전의 나라면요. 내가 나에 대해 마지막으로 안 내용이 그 언젠가라면, 기억 속 나로 알고 있는거죠. 그래서 학자들은 하루에, 반드시, 물어봐야 한다고 합니다. Beverly Hills의 치료사이자 명상 교사인 LMFT Elizabeth Winkler는 “시간을 들여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있는지, 무엇을 알아차리고 있는지 확인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 내 인생에서,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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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잠깐의 시간을 내어서 나에 관한 글을 쓰라고 하는데요. 글을 쓰는 시간은 밤보다는 아침이 더 좋습니다. 보통 밤에는 있었던 일을 쓰지만, 아침에는 일어난 일이 없기 때문에 내 상황과 감정에 대해 쓰기 때문이죠.


밤은 반성을 하게 하지만,
아침은 기대를 하게 하죠.
그리고 일어난 일이 아니라,
나에 대해 쓸 수 있는거죠.

할일을 체크하거나 확인하고 검사하는게 아니라, 딱 인사로 시작하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그저 인사를 건네보는 거에요. 요즘 어때? 툭 던지듯 물으면 술술 풀어나올지도 모릅니다. 은근히 부담됐던것이나, 사실은 버거웠던 일, 못내 지쳤던 일들이. 먼저 말하기엔 뭣하지만 물어봐서 대답할 수 있는 것들이.

제가 좋아하는 모닝일기중에는요, 인디언들의 일기가 있는데요. 이들은 몸이 아프기 전에, 혹은 조금 아파올때 이렇게 묻는다고 해요. 최근 춤을 췄는가, 노래는 불렀는가(흥얼거렸는가), 좋은 이야기를 듣거나 누구에게 들려줬나, 충분히 침묵했는가, 주변은 정돈되어있는가. 여기서 저는 하나를 더 묻곤 합니다. 안된다거나, 어렵다는 말을 얼마나 했지? 일주일동안 거의 안했다면 나를 돌봤을 시간은 아마 없었을테니까요. 제가 거절을 잘 못하거든요. 되도록 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그런데 이런 시간은 따로 떼어놓거나 계획에 있는게 아니라서, 정말 틈틈이 시간과 마음 그리고 모든 상황에 영향을 미치더라고요. 글래서 뭔지는 모르지만 소모되고 있는거죠. 바로 상황을 바꾸기는 어렵다고 해도, 적어도 알수는 있죠. 이 틈중에 몇개는 내가 날 돌봐야 하는지. 퍼져나가던 힘을 다시 안으로 밀려오게, 바람의 방향은 바꿀수 있으니까요.


이 서점에서요 한참을 구경했습니다. 그 아침에요, 책은 아마 안살거라고 생각하고 가방도 가져가지는 않았는데요. 아마 구경만 하지 않을까 하고요. 이 아침에. 일곱시에 저는 네권이나 사고 말았습니다. 다녀와서 침대에 펼쳐놓은 거고요. 이렇게 단골의 말마따나 내가 필요한지 몰랐는데, 필요한게 있었구나 혹은 필요해 졌구나, 하고 알려준 서점에서요 제가 물었어요.


그림1.jpg 그 아침에요, 이렇게 이른 시간에 네 권이나 사버렸죠. 필요해졌거든요.



여러분 혹시 모지스 할머니 아시나요? 미국의 화가인데요, 무려 일흔 여덟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분인데, 이 그림이에요. 너무나도 정겹고 아름답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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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서요 주로 마을 풍경과 가족의 이야기를 그렸는데 처음 그림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손자, 손녀들의 물감과 붓을 사용해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75세부터 101세까지 약 1,600여 점이 넘는 그림을 그렸는데, 할머니의 그림책을 한국에서도 정말 좋아했거든요.


“사람들은 늘 ‘너무 늦었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지금’이 가장 시작하기 좋은 때입니다.”

"삶이 내게 준 것들로 나는 최고의 삶을 만들었어요. 결국 삶이란 스스로를 만드는 것이니까요."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Anna Mary Robertson Moses, 1860-1961)


그래서 할머니의 책을 원서로 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물었죠. 모지스 할머니의 책이 있냐고 하니 없다고해서 비슷한 책이 있냐고 물으니까. 서점이 물어요. "모지스 할머니와 비슷한게 ... 어떤거죠?" 마을, 자연, 추억, 사랑, 여성 화가, 가족 혹은 그림의 주제 무엇을 말하냐고. 모지스 할머니라는 키워드로 좁혀가는게 아니라, 모지스 할머니라는 키워드로 출발해서 너무 다양한 이야기로 그려가는 거에요. 좁힐 생각은 애초에 없는것처럼. 할머니 집 옆에 동네가, 길이, 가게가... 생기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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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여차저차 가족, 전원, 또 이런 동화같은 분위기를 설명을 하니까 그녀와 비슷한 작가들을 추천하고, (그녀와 비슷한 작가-제인 우스터 스콧) 저에게 그럼 시카고의 어느 서점에 모지스의 책이 있을지 한번 보자는거에요. 저는 아, 검색해주려나? 했는데요. 시카고 지도를 펼쳐놓고요, 서점들을 하나하나 보면서 어디있을거 같고 어디엔 없을거 같고를, 말해주는거에요. 조금 놀랐죠. 너무 아날로그 방식 이기도 하고요. 재고를 파악해주는것도 아니고, 게다가 그땐 몰랐으니까요. 그렇게 인사와 대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서점이라는걸. 근데요 모지스의 책이 어디있을지 보다 어디에 없을지도 말하면서, 대신 뭐가 있을거라고 말해주는거에요. 아마 서점은 알려주고 싶었겠죠. 책이 어딨는지 알려주는건 누구나 할수 있지만, 어디에는 없는지 알려주는 곳은 없으니까. 그런데 대신 무엇들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그거말고, 다른것들이 훨씬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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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다고 믿죠. 내가 뭘 바라는지. 이를테면 새해 소원을 항상 비는것도요. 가족이 행복하길 바라는것! 이라고 하지만요. 어떤게 가족의 행복일까? 물으면 사실은 가족마다도 그 답이 다르고 나도, 대답이 달라질겁니다. 아프지 않은 것. 자주 모여서 밥을 먹는것. 아니면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가 잘 살아가는것. 혹은 여행을 가는것. 또는 용서를 해주거나, 묵혔던 감정을 푸는 것... 묻지 않으면, 어디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수없죠. 그래서 우리는 최종 목적지의 단어가 아니라, 수많은 갈래의 길에서 안부를 물어야 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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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서점에서 알려준 서점으로 가면서 생각했습니다. 연결되고 이어지는 길을 알면, 잘못들어도 샛길로 갈수있다고. 그때마다 서로를 구해줄수 있는게 인사일지도 모른다고.

아침 7시에 문을 여는 서점엔요. 아마,

찾는책은없을거라고.
대신 지도를 펼쳐줄거라고.
내가 갈 길이 아니라,
갈 수 있는 길을 알려줄거라고.



이렇게 인사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서점에서요, 마주칠때 그리고 헤어질때 나눈 인사가 어떻게 사람들의 길을 바꾸고 있는지. 목적지를 바꾸진 않지만 샛길 하나를 더 만들고 있는 곳을 들려드렸어요.


그리고 나 역시, 매일 물어야 한다는 것. 대단한 일을 적는게 아니라 오로지 나에 대해 물어야, 화제가 없이도 계속 말하고 싶어질 거라는 것. 말할거리, 없이도 말하고 싶어질때 더 잘 살고 싶어질 거라는것.

오늘부터 우리가 나누는 인사가, 조금 달라지길 바라면서요.


트레이더 조에서 제가 산 카드인데요. 저는 조가 이런 컨셉으로 유명한곳인지 모르고 갔을때 너무 분위기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특이한게 웬만한 문구점이나 소품샵보다 훨씬 더 이런 메시지 카드가 많은거에요. 근데 특별한 기념일 카드가 아니라요, 명절이나 생일이나 크리스마스나.. 정말 너무 다양한 메시지가 써져있어서 기념으로 하나씩 사다보니까 꽤나 많이 사게 됐는데요. 말 그대로 기념일 카드가 아니라 인사 카드인데요.

색깔별로 나눠져있기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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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런 기사가 실리기도 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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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는요,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카드를 보내거나, 새해에는 “올해는 정말 여행을 꼭 같이가자”는 말을 건넬 수 있죠. 네, 새해인사가 아니라 새해에 하는 인사로 말이죠.



아침에 할 수 있는 인사를 들려드리며,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를 할게요.



지금 당신의 피부에 닿는 공기는 어떤 느낌인가요?

당신의 주변에 있는 아름다운 한 가지를 바라보세요. 그것의 처음, 그리고 예전의 모습을 떠올려보세요.

지금 이 순간 당신의 몸에서는 어떤 감정이 느껴지나요?

당신에게 내면의 평화를 가져다 주는 세 가지를 떠올려보세요.

당신을 내면에서 미소 짓게 만드는 하나를 들려주세요.

심호흡을 세 번 하고 마음에 떠오르는 단어를 적어보세요.

이 아침, 가보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요?

그리고 오늘 일어난 나에게 인사를 건네보세요. 오랜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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