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함을 느끼는 온도와 마음이 편안해지는 색깔, 아줄레주.
작은 부분이라고 더 빨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같은 곳을 몇 겹이나 덧칠해야 할 때도 있다.
느리고 오래 걸려도 그래야만 하는 과정이 있다.
오븐에서 꺼낸 도시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단단하게 구워진 바닥, 아기자기한 무늬로 이루어진 거리, 파스텔 색으로 칠해진 건물. 세월에 바래 군데군데 벗겨진 자국. 낡은 오븐에서 꺼내면 오래도록 구워진 이야기를 맛볼 수 있는, 리스본이다.
포르투갈의 길거리는 반짝반짝 윤이 나는 돌로 만들어졌다. 비단 거리뿐만이 아니다. 건물의 벽과 집의 대문까지도. 그렇게 단단하게 구워낸 도시다. 유럽에서 돌로 된 길을 마주치는 일은 흔하지만 포르투갈의 바닥은 조금 다르다. 큼직한 돌덩이가 아닌 자그마한 돌이 옹기조기 모여있으며, 물고기나 꽃 같은 그림이 그려져 있기도 하다.
아줄레주라는 말은 '작고 아름다운 돌'이라는 아라비아어에서 유래되었다. 포르투갈의 마누엘 1세가 그라나다 알람브라 궁전에 방문해 이슬람 문화에서 전해진 타일 장식에 매료되었고, 포르투갈에 돌아온 후 왕궁을 아줄레주로 장식했다고 한다. 이후 아줄레주는 포르투갈 전국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1755년 리스본 대지진으로 도시가 파괴되자 도시 재건에 박차를 가하면서 길과 거리, 건물을 아줄레주로 가득 채웠다고 한다. 많은 이들의 발길이 닿아 더 단단하고 매끈하게 빚어지는 거리와 시간이 지날수록 바래지는 은은한 온기, 타일 하나하나를 그리고 구워냈을 시간을 덧바르고 이어간다.
아줄레주를 만들기로 한 날도 어김없이 뜨거운 볕이 내리쬐었다. 리스본에 와서 처음 타 본 번호의 버스에서 내린 동네에 도착하자 바람 소리만 들린다. 바람이 세게 불어서가 아니다. 풍성한 나뭇잎이 쐬애- 흔들리는 소리만 들릴 정도로 고요하다. 잘 찾아온 걸까, 너무 조용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마을 어귀의 골목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게 보통의 마을일 테니까. 여행지에서 마주칠 일은 없지만 내가 사는 곳이 그렇듯, 대부분의 마을은 이런 모습이지 않던가.
그녀가 알려준 집의 주소를 따라 천천히 그다음, 그다음 집의 번호를 확인하고 앞에 섰다. 대문 앞엔 그 흔한 표시나 안내 문구조차도 없다. 아, 일반 가정집이었지. 문 앞에서 서성이다가 자그마하게 세워진 우편함을 톡톡 두드려본다. "왔군요!" 낮은 대문을 열고 나오며 그녀가 웃는다. 집 안으로 들어서니 아래층 응접실에는 나 말고도 네 명이 더 있다. 엄마와 딸, 그리고 내 또래의 여자와 엄마와 나 사이 나이즈음을 가졌을 그녀까지.
아줄레주가 얼마나 오랜 시간에 걸쳐 포르투갈과 함께 해왔는지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며 집과 동네마다 특징이 묻어나는 이야기에 대해서도 들려준다. 멀고 낯선 도시지만, 당신이 리스본을 익숙하게 느낄 수 있는 이유는 많다. 벽에 내다 걸린 빨래, 직접 그려 구워낸 타일. 살아가는 모습을 이렇게나 가까이서 보여주는 마을이라니. 나는 내 어떤 것을 보여주어야 할까.
"무엇을 그리고 싶은지 생각해봤나요?"
손바닥만 한 크기의 타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떠오른 기억들을 건져낸다. 그리고 싶은 것보다는 구워내고 싶은 것에 대해. 지워지지 않는, 지우고 싶지 않은 장면. 사진으로 찍어두진 못했지만 그려낼 수 있는 기억.
따뜻함을 느끼는 온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색깔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를 펼쳐낼 리스본.
아줄레주를 그린 후 밖으로 나오니 어느덧 저녁 즈음이다. 집집마다 노릇하게 구워내고 있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풍긴다. 보기만 해도 달큼한 내음의 색깔, 한참 들여다보게 하는 무늬와 덧대고 이어 붙여 가만히 쓸어내리게 하는 자국이기도 하다.
천천히 걸을수록 멀어지고 있는 작은 집에서는 내 이야기도 구워지고 있다. 사흘간 뜨겁게 구워질 타일에는 서툴게나마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그렸다. 내가 좋아하는 꽃, 네가 사랑하는 바다. 어떤 설명이 더 필요할까.
나란히 이어질 타일은 바람에 벗겨지고 햇볕에 바래고 불현듯 날아온 무언가에 깨질 수도 있지만, 덧대고 이어져갈 것이다. 아주 오래, 끝나지 않을 이야기처럼.
아줄레주 Azulejo. 작고 윤이나는 돌.
리스본에 가는 당신이 구워낼 이야기는 무엇일까.
어느 기억에서 가장 오래 공을 들이고, 어떤 내용을 새겨 넣을까.
당신이 낯선 곳에 도착해 발을 디디면 땡- 오븐의 알람 소리로 오래된 이야기를 펼쳐낼 도시,
이제 당신의 이야기를 구워낼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