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는 회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 야근, 부서, 이직에 관한 것들. 그리고는 건강으로 이어지며, 직장인이면 누구나 하나쯤은 앓고 있는 자질구레한 것들을 말하고는 했다. 헤어진 연인이라면 대개 같을까. 아주 가끔 걸려오는 전화는 참 평범한 것을 물었고 나 역시 그랬다. 대답하기에 적당한 질문을 건넸다. 그러니까 직장 동료에게 "주말에 뭐 했어요?"같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는, 그래서 적당한 반응을 해 줄 수 있는 것들처럼.
연인이기 전에 친구였고 동기였다. 그래서 헤어지고 나서 시간이 꽤 흘렀어도 가끔씩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잘 산대, 와 같은 소득 없는 문장으로 서로의 안부를 전해 받았다.
어느 날이었을까. 문득 걸려온 전화에 또 회사와 건강 따위에 관한 대화를 나누던 중에 그는 처음으로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부서 이동이나 이직과 같은 이야기를 하며 "한 직장에 오래 있네, 지점 이동은 얼마나 자주 해?" 와 같은 것을 묻자 문득 그가 말했다. "아, 회사에 편지들 있어."
편지? 무슨 편지를 말하는거지, 싶은데 그가 말한다. "군대에 있을 때 네가 보냈던 편지들, 상자 안에 넣어놨거든. 계속 보관해야 하나 버려야 하나 했는데 가끔 읽으면 좋더라고. 그러다가 집에 두고 있기는 그래서 회사에 갖다 놨어."
허, 그 옛날의 편지들. 순간 말문이 막히며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싶은 와중에 그가 연이어 말했다. "자리 이동하면서 서랍을 옮기느라 사람들도 꽤 알고 있어. 짐을 옮길 때 나는 선배들을 도와주고 후배들은 내 짐을 옮겨주거든. "선배, 이거 버려요?" 할 때마다 버리지 말라고 하니까."
아직도 있을 줄 몰랐고 거기에 있을 줄은 더욱 몰랐다. 물론 나도 버리지는 않았다. 모든 사람들과 주고받은 편지는 한 장도 버리지 않으니까. 설령 사진은 버려도 편지는 포스트잇에 쓴 낙서마저도. 그렇지만 어느 상자 속에 봉한 채로 -특히 헤어진 연인의 편지라면- 넣어두기 때문에 꺼내 읽을 일은 잘 없거니와 내 일상 속에 두지는 않는다. 게다가 매일 열고 닫는 서랍이라니. 더군다나 회사라니.
"일 년에 한 번쯤 꺼내서 읽어. 생생해지더라고." 그리고 또 뭐라고 했던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읽으니까 어떻다느니와 같은 말을 늘어놓다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런데 편지를 읽고 나면 나는 전혀 다른 일상이잖아. 여기는 현실이잖아. 그래서 쉽게 빠져나올 수 있더라고."
이건 또 무슨 말인가. 금세 현실로 돌아올 수 있어서 좋다는 건가. 자랑하는 건가. 머리를 빠르게 굴려도 대체 그 뜻을 알 수 없어서 어설픈 웃음을 지으며 "어, 그러니까 편지는 편지고, 현실은 또 현실이라서 좋은 추억이라는 거지?" 물으니, 느려진 대답이 돌아온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 다행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
다행.
다행이라고 했다. 왜 그 단어 하나에 수많은 날들이 생생하게 떠올랐을까. 매일 감정이 요동치던 날들이었다. 좋아서, 그리워서, 보고 싶어서, 서운해서, 아파서. 편지로 쏟아내던 날들이었다. 한 줄 한 줄이 소중해서 몇 번을 다시 읽었다. 사진에는 담지 못 한마음이 있었다. 하나 둘 셋, 찰나의 표정은 담지 못한 그 무수한 날들의 사랑이.
이제 다시는 할 수 없어서 다행인 날들이.
이제 다시는 하지 못하기에 다행인 날들이.
다행인 날들이.
다행이도, 또 아니기도 한 날들이.
좋아한다는 말도, 그립다는 말도 아닌, 그저 버리지 못해 갖고 있다는 편지의 소식이. 그리고 마지막까지도 버려야 하나 생각한다고 말하며 대체 이 말을 나한테 왜 하는 것인가 묻고 싶었던, 편지의 보장받지 못한 미래를 마지막으로 잘 지내라며 전화를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