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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롱 Oct 05. 2020

또다시, 퇴사

oh 지겨운 퇴사 oh 



졸업 후, 세 번째로 들어간 직장에서 퇴사했다. 

스물여섯에 졸업, 지금이 스물여덟이니 1년에 한 번 꼴로 퇴사한 셈이다.

이쯤 되니 주변에서 많이들 걱정한다. 그리고 이쯤 되면, 아무리 회사에 문제가 있었다고 해도 나도 문제가 없다고는 말 못 한다.

이유야 어찌 됐든 간에, 남들은 다 '존버'하는 마당에 또 박차고 나와버렸다.

내 기준에서는 많이 고민한 결정이다. (고민의 양은 상대적인 것이니)



한 줄 감상평 : 긴 연휴 후에 원래는 출근해야 했을 이 시간에 나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벅차고 의미 있는 날이다.




지나온 회사 리뷰 


1. 

스물여섯 살, 졸업하고 지인의 소개로 들어가게 되었던 작은 회사는

재정 상황이 많이 어려웠고, 무료한 매일매일을 보내다 결국 월급이 밀리면서 퇴사 결정을 하게 되었다.


2. 

스물일곱 살, 취업 준비생으로써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알바몬을 뒤적이던 중, 이제 막 시작하는 쇼핑몰의 블로그 마케팅 알바로 들어간 회사에서 사장님의 권유로 정규직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회사의 일이 갑자기 많아지면서, 거의 대부분의 실무를 도맡게 되었고 '포기하면 나약한 사람'이 된다는 사장님의 가스 라이팅에 울며 겨자 먹기로 이 정도는 다들 하는 줄만 알고 열심히 일했다. 

우울한 증세가 심각해지자 한 발자국 물러나 다른 사람의 말도 듣고, 내가 힘든 것이 나쁜 게 아니란 걸 깨닫고 구인구직 사이트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사장님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모든 것에 질려 세 번째 직장으로 이직했다. 


3. 

스물여덟 살, 사람이 급하다며 일주일 후 바로 출근하라던 회사는 출근하자마자 세 시간의 긴 회의에 나를 참여시켰고, 그 날 대표님은 방에서 담배를 피웠다. 회의가 끝난 후 전 직원이 백반집에서 소주와 함께 욕이 섞인 쓴소리를 듣는 시간이 이어졌다. 나는 11시에 집에 갈 수 있었다.

사람들은 좋았지만 일에 대한 회의감과 업무 패턴에 진절머리가 났다. 내일 당장, 오늘 4시까지 마무리하라는 식의 '급한' 일들과 여섯 시, 일곱 시가 되면 "가자!"라는 말과 함께 회식 시작, 11시, 12시에 집에 가기 일쑤였다.

이상하게도 이 회사는 사람 간의 끈끈함이 있었다. 힘든 일을 술로 이겨내는 동지애 같은 것들.

그 기분을 느끼기 시작하자 사람들 때문에 회사에 있고 싶지 않았다. 결정적인 사건도 있었다.

그래서 난, 세 번째 퇴사를 결심했다.




퇴사, 그리고? 


되돌아보니, '직업'과 '직장'이란 것을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말했던 사람 치고는

순간의 중요한 결정들이 너무나 즉흥적이고 빨랐다. 충분히 신중하지 못했던 것은 내 잘못이다.

마지막 퇴사를 고민할 때는, 스물여덟이라는 나이 (곧 서른)라는 타이틀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걱정을 불러일으켰다.


정작 나는 나이보다는, 앞전과 같은 실수를 번복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나의 치명적인 단점이 지금의 내가 있게 한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계획에 약하고 즉흥적이며, 포기가 빠르고 자기 합리화에 강하다. 자기 합리화는 그 어떤 것보다 나를 지키는 무기가 되어 세 번의 퇴사 또한 이 덕분에 남들보다 쉽게 가능했지만, 결국은 내가 더 큰 산을 넘어야 하는 원인이 되어 버렸다.

열정적이다, 성실하다, 인간관계가 좋다 등등. 나의 장점을 다 무색히 하고 

단점은 왠지 실패의 기분을 준다. 단점을 극복하지 못하면, 그리고 단점이 장점보다 힘이 센 나 같은 경우, 장점도 의미가 없게 느껴진다.


퇴사 후의 나는,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키고 나에게 없는 것들을 채워 넣어보려 한다. 조직에서 눈치 보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걱정하고, 다른 사람의 급한 일을 처리해 주는 데에 급급해 나의 부족한 면을 채우는 데 에너지를 쓰지 못했다. 남을 위한 목표가 아닌, 나를 위한 목표를 향해 달려보는 시간이 되어보려 한다.

퇴사 후 공식적인 '출근 안 해도 되는 날'이 오자 그 소중함을 알 것 같다. 여러 가지 계획들을 세우고 있는데 벌써부터 재밌고 즐겁다. 오로지 나를 위해 시간을 쓰는 것, 다만 더 튼튼해지고 성장하려면 아마 과거에 힘들다고 징징댔던 시간들보다 더욱더 아플 것이다.

노력 없이, 아픔 없이 성공의 자리에 있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당연히 마주해야 할 절차라고 생각한다. 나는 침착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보다 더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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