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사업, 투잡에 대한 수많은 글을 읽었다.
퇴사를 준비하는 과정, 각자의 퇴사에 대한 이유, 사업이 힘든 이유, 사업을 하는 이유, 퇴사의 장단점 …
수많은 관련 콘텐츠를 도처에서 접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서른 살이든 쉰 살이든 나이와는 상관없이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순히 단어적인 의미의 퇴사나 회사 생활이 아니라, 그 이면에는 '내 삶'의 가치와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더 짙다.
나 또한 그런 콘텐츠를 소비하는 1인이었고, 디지털 노마드, 욜로족, 경제적 자유까지 하나의 트렌드라고 볼 수도 있는 직업적 관점을 자연스레 타며 막연히 그런 것들을 꿈꿨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원하는 게 도대체 뭔지는 확고하지 못했다. 그래서 남들처럼 당연하게 회사 생활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회사 생활 3년 반 만에 다시는 '회사원' 타이틀을 달지 않겠다고 결심하며 사표를 낸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상황이 나의 행동을 결정했고, 나는 늘 누군가에게 평가받고, 판단되는 수동적인 존재였다. 스스로 조직 안에서 자연스레 어우러질 줄만 알았던 고분고분 한 타입이라고 생각했지만, 자꾸만 표출되는 반항심(?) 같은 감정 때문에 많이 혼란스러웠다.
그렇다면 내가 평생 퇴사를 결심했을 때 돈이 준비가 되어 있었나?
아니다. 경제관념이 전혀 없던 나는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결심한 다음 날 저질렀다. 통장에는 약 300만 원, 그러니까 딱 한 달 급여가 있었고 월세살이를 하던 중이라 금방 지출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퇴사 후 명확한 로드맵이 있었나?
이 또한 아니다. 회사에서 그럭저럭 굴러가다 보니 더 중요한 고민을 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시간을 확보하는 대신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일단 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물질적 풍요로움은 그 이후의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온라인 쇼핑몰을 창업하게 되었고 퇴사 1년이 된 지금까지 사업을 유지해오고 있다.
결국 1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지금, 아직까지는 여유로운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회사에 다닐 때보다 훨씬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고, 늘 똑같아서 지겹다고 생각했던 하루는 오히려 더욱 루틴 있게 보낸다. 그러나 이 생활이 싫어 회사로 되돌아가겠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는 당당하게 아니라고 답할 수 있다. 장점과 단점이 극명하지만 장점이 가진 힘이 단점보다 훨씬 우세하기 때문이다.
퇴사 후 1년, 내가 생각하는 퇴사의 단점과 장점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았다.
모두가 예상하는 당연한 이야기다. 고정적인 수입이 없다는 점은 사람을 정말 불안하게 만든다. 더군다나 누군가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라면 나와는 또 이야기가 다르다. 대부분 이런 불안감은 "누가 이번에 ~를 샀대." "~얼마를 벌었대."와 같은 남들의 소식에서 시작된다. 사람이기에, 가끔은 이런 소식들에 나 자신을 탓하기도 한다. 믈론 다시 마음을 다잡곤 하지만, 어느 순간만큼은 회의감과 자기 불확신이 나를 뒤덮을 때가 있는 건 사실이다.
홀가분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퇴사 후의 생활은 오히려 더 가혹하다. 회사는 지긋지긋한 동시에 나를 지켜주는 존재였다. 명함 빼고 나를 설명해야 하는 자리에 갔을 때, 직함과 소속이 없는 사람은 스스로를 설명할 말을 만들기 위해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나만의 고유함을 가지기 위해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제발 관심을 좀 꺼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사람들이 몇몇 있다. 역설적이게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걱정하고 내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궁금해한다. 이들로부터 스스로를 포장해야 하고 때로는 선의의(?) 거짓말을 해야 할 때도 생긴다. 더욱 곤란할 때는, 내가 진짜 괜찮은지가 아니라 물질적인 상황이 괜찮은지 염려할 때인데, 원하지 않는 보여주기 식의 소비라도 하면서 괜찮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야 할 때도 있었다.
장점을 하나씩 적다 보니 핵심은 모두 '시간'에 있었다. 예전에는 내 시간의 주인이 나한테 있는 것 같지 않는 기분에 많이 답답했다. 종종 누군가의 부름에 술자리에 불려가거나, 손님들을 위해 커피를 탔다. 또는 아침마다 당번을 정해 대표의 책상을 닦았다. 나에게는 그 모든 것이 '시간'을 잃고 있다고 느껴졌다.
또는 업무에 있어서도 비효율적, 비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도 꼭 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 나는 아무리 사소해도 기준에 맞지 않는 것들을 하는 시간은 5분도 아깝게 느껴졌다. 그러나 해야만 했다.
쉽게 말해 회사의 구성원으로 일하는 시간 동안, 나는 나의 시간을 회사에 주는 셈이다. 그래서 나의 절대적인 시간이 줄어든다. 퇴사를 하고 나니 그런 것들이 없어 가장 좋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 내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시간을 쓴다.
아이러니하게도 단점으로 언급했던 2번과 같은 맥락이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알고 남이 알게 하기 위해 수많은 일들을 해 내야만 한다. 그리고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
나를 책임질 수 있는 존재가 '나' 밖에 없다는 고독한 감정은 책임감으로 다가와 '뭐라도 해야만 하는' 당위성을 부여한다. 억지로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도 있지만 모든 일이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싫지 않다. 오히려 바쁠 때면 꽤 설계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기분에 도취되기도 한다.
역시 시간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게 되면서 늘 뒤로 밀려났던 '나 자신 챙기기'가 우선순위가 되었다. 나를 챙기는 시간을 확보할수록 성공을 위해 버틸 수 있는 지구력이 늘어난다고 믿는다. 회사를 다닐 때에는 그게 참 잘 안되었다. 특히나 남에게 피해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머릿속에 나보다는 타인에 대한 생각, 처리해야 하는 일이 더 가득했다.
이러한 압박감이 줄어들자 자연스럽게 운동하고, 책 읽고, 취미 생활을 하는 시간을 확보해냈다. 예전에는 시간이 있어도 우선순위에 밀렸다. 그때는 오로지 몸의 휴식이 우선이었다. 시간이 있으면 잠을 자거나 가만히 누워 뒹굴댔다. 그보다 나를 소중히 대해주는 시간이 확보되니 더불어 삶의 질과 만족도가 상승했다.
퇴사의 장점과 단점을 이렇게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단점도 만만치 않은데... 왜 나는 단점보다 장점을 크게 여겼을까?라는 물음을 던져 봤다.
: 단점은 내가 아닌 외부적 요인으로부터 기인하는 것들이기 때문이었다.
남들이 하는 이야기, 남들의 기준에 맞춰 나 자신을 생각하는 순간에는 한없이 나약한 나 자신을 발견한다. 이 부분을 크게 느끼는 사람이라면 퇴사를 했을 때 장점보다 단점이 더 크다고 여길 것 같다. 사람마다 다른 기준을 가졌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타인으로부터 100% 자유로운 사람은 없기에 나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반면 장점은, 나를 방해하는 외부적인 요인을 하나 없앰으로써 오는 자유감, 내면의 소리를 듣기 시작하는 데에서 기인한다. 모든 생각이 나로부터 뻗어나간다. '시간'은 그 생각들을 실현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도구이다. 시간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는 것은, 그 어느 것보다 큰 선물임을 체감한다. 그래서 나는 수많은 힘듦이 있어도 이것만은 포기할 자신이 없다.
또한, 퇴사의 단점은 나에게 신기하게도 동력이 되었다. 극복할 수 있는 것들이다.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나의 것'을 만들어 냈을 때 전부 해결이 되는 문제다. 그래서 매우 사소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든 순간이 오면, 나에게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이 장점들을 포기하겠어?"
곰곰이 생각하다 다시 마음이 잡히곤 한다. 옳은 길을 걷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