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롱 Aug 09. 2021

단순한 사람이라 행복도 참 쉽습니다

짜증이 난 저에게는 먹이를 주세요



소나기

약속 장소인 지하철 역에 도착했는데 사람들이 우왕좌왕 가판대 앞에 모여있었다. 출구 계단에서는 물에 빠진 생쥐가 된 사람들이 인상을 쓰고 내려왔다.

나는 이제 나가야 하는데, 소낙비가 엄청나게 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인 가판대에서 만 오천 원을 주고 우산을 샀다. 왜 하필이면 매일 가방에 넣어 다니던 양산을 안 가져온 거야. 투덜거리며...


약속 장소와 가까운 출구를 구불구불 찾아 밖으로 나왔다. 비는 아까 무자비하게 퍼붓던 기세보다는 조금 줄어들었다. 남자 친구는 비를 피해 중앙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지하철에서 우산을 샀으니 데리러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버스 정류장의 방향도 잘못 찾아 건넜던 길을 되돌아 다시 다른 길로 가야 하는 상황이다.


스멀스멀 짜증이 올라왔다.

안 신던 운동화를 신었는데 하필 비가 올 게 뭐람?

하필이면 왜 내가 나온 시간에 비가 오는 거야?

오늘 아침만 해도 청량한 하늘을 보며 데이트를 기대한 하루였는데 우산과 짐을 가득 들고 이리저리 헤매는 상황이 닥치자 어디냐고 전화 온 남자 친구에게 괜스레 화풀이만 했다.


"아 몰라, 짜증 나.. 나한테 어디로 찾아오라고 좀 하지 말라고! 나 길치에 방향치란 말이야!!!!"

"그럼 나는 비 맞는데 어떡해...?"


위와 같이 짜증을 부리면서도 억지스럽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더 이상 할 말은 없었고, 미안한 얼굴을 한 채 남자 친구를 맞이했다. 역시 오늘도 그는 나와 달리 평온한 얼굴이다. 대신 그는 조금 걸어 멀리 가려던 양꼬치 맛집을 빠르게 포기하고, 인근의 양꼬치집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리고 그 선택은 훌륭했다. 빠른 기분 전환이 가능했다.



양꼬치

영롱하다..

양꼬치 집에 들어오자 시원한 에어컨이 나를 먼저 반겼다. 습한 기운이 없어지자 기분은 급격히 좋아졌다.

그리고 음식이 나왔다. 양꼬치가 무슨 갈비처럼 부드럽네....? 육즙이 살아있네...? 기분이 점점 더 좋아졌다. 아까의 짜증은 잊고 거의 춤을 추며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순식간에 내 앞에는 빈 그릇뿐. 동시에 어느새 아까의 짜증은 잊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밖으로 나오니, 야외는 비가 오던 1시간 전보다 밝아져 있었다. 짜증을 잔뜩 부리며 구매한 우산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타이밍 , 30분만 늦게, 혹은 빨리 만났더라면 겪지 않아도  순식간의 소나기였는데....


소나기가  기분을 망쳤지만 양꼬치로 순식간에 달랜 , 음식 하나에 오늘도 행복하네.

매거진의 이전글 혹시 가벼운 만남에 지치셨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