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롱 Aug 15. 2021

오랜만의 맥주는 참 달구나

이야기는 쓰고 맥주는 달았다.

 몇 년 전만 해도 어떻게 그렇게 술자리를 많이 가질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일주일에 최소 두 번은 술을 마셨는데 어떤 날은 소주를 잔뜩 마셨고, 어떤 날은 맥주를 홀짝였다. 회식이기도 했고 친구들과의 약속이기도 했다. 코로나 시국이 계속된 탓에 술자리도 자연스레 줄어들었고, 이제는 술에 면역이 떨어져 한 달에 한 번도 힘든 지경이 되었다. 아마 새벽 2시까지 맘껏 술을 마실 수 있다 해도 9시 반이면 "이제 그만 일어날까?"가 자동으로 나올 것만 같다. 


가끔 밤잠 전 유독 힘든 날이면 예전에 하던 것처럼 습관적으로 시원한 맥주 한 잔 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건강 관리의 이유도 있었지만 귀찮기도 해서 최근엔 이 모든 순간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어제는 친구가 맥주집을 가자고 제안해 '오랜만에 맥주 좀 마셔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술이 먹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오랜만에 맥주집 같은 곳을 가는 게 생경해서 좋았다. 2000년대 초반 유행할 것 같은 조명에 뻥튀기를 주는 호프집을 갔더니 맥주 3병에 7,500원이라는 파격적인 행사를 했다. 친구가 3병짜리를 고르길래 나는 너무 많다며 '한 잔도 잘 못 마시는데...' 했다. 친구는 자기가 다 마시겠다며 결국 둘이서 3병을 주문했다. 


안주와 맥주 3병이 나오고 더운 날씨에 목이 말랐던 나는 첫 잔을 들이켰다. 한 잔 들이켠 순간, 

어? 이상하다. 맥주가 오늘은 왜 이렇게 맛있지.




안주를 하나 집을 때마다 꿀떡꿀떡 목구멍으로 맥주를 가득 넘겼다. 오비라거는 탄산도 강하지 않았고 함께 시킨 케이준 샐러드와의 궁합도 아주 좋았다. 

그리고 우리는 사는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어느 때보다도 힘든 날들을 보내며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고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참 씁쓸했다. 안 본 사이 혼자만의 아픔이 참 많았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쓴 이야기를 안주삼아 들으니 맥주가 달게 느껴졌다. 우리는 어느새 3병을 뚝딱 비워냈다. 평소엔 배가 불러 한 캔도 채 못 마시는 맥주인데, 사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순식간에 사라져 있었다. 


몸에는 살짝 열이 올랐고 음식과 맥주병을 죄다 비워냈지만 이야기에서 답을 찾지는 못했다. 

"그냥 하다 보면 답이 나오겠지?" 왠지 답답한 인생을 살고 있는 두 명의 씁쓸한 웃음과 함께 나눈 마지막 말이다. 그래도 맥주를 마시는 그동안만큼은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얼마나 시원한 시간을 보냈는지! 

오랜만에 느껴서 더 좋은 기분이었다. 

앞으로 한 달에 한 잔씩 이렇게 속 시원한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길고양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