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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는 매너리즘에 빠질 시간이 없어요

찰떡 직업을 찾는 모험 ep.26

by 일라

프리랜서의 삶을 살다 보니 하루하루가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기분이다.

회사를 다닐 때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매너리즘에 빠지는 게 문제였는데, 프리랜서의 삶은 매너리즘의 빠질 시간이 없다..

아직 내가 초보 프리랜서라 들어오는 일이 일정치 않아 더 그런 걸 수도 있다.


한 2주 전만 해도 뭔가 붕 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시작한 거는 많지만 아직 결실을 맺은 건 없어서, 뭔가를 열심히 하긴 했는데 뭘 했는지 분명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그런 느낌.

그러다 보니 머리 속도 복잡하고 이렇게 사는 게 맞는지 별의별 생각이 들며 혼란스러웠다.


뭔가를 더 해야 하나? 싶기엔 내 나름대로 열심히 달려왔던 터라 몸이 KO 신호를 보냈다.

지난달에 감기 몸살이 심해 거의 일주일을 고생한 뒤로는 무리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열심히 준비는 하고 있지만 미래에 대한 힌트를 찾은 것 같다가도 막상 힌트를 열어보면 이게 힌트였나? 싶게 다시 혼란스러워졌다.


잘하고 있는 것 같다가도 어느 날은 형언하기 어려운 나른함과 무감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이렇게 있다가는 우울함이 더 심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시적인 우울감에서 우울증으로 번지지 않으려면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해줘야 하고, 나를 소중히 대하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이불속에 날 가두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게는 비슷한 시기들이 꽤 있었는 데, 왜 그랬는지 지금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커서 그랬던 것 같다.

주변에서 똑똑하다, 재주가 많다, 좋은 학교를 나왔다 등의 칭찬을 들으면 왠지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할 것만 같아 나에 대한 기대를 정교하게 더 높이 쌓아 올렸다.

나에 대한 기대를 높였을 때 할 수 있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는 데, 하나는 그 기대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쉬지 않고 나를 채찍질해서 더 발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대를 버리고 좀 더 느긋하게 살아가는 거다.


요즘 읽고 있는 <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라는 책이 있는데, 나에 대한 높은 기대가 두려워 걱정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을 "호랑이를 꿈꾸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고양이"라고 지칭했다. 호랑이를 꿈꾸며 열심히 사는 고양이는 자기 발전과 목표를 이뤄냈다는 성취감이라도 느끼지, 꿈만 꾸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고양이는 호랑이와 점점 더 멀어지는 자신을 보며 괴로움만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봤을 때 나는 호랑이를 꿈꾸며 열심히 사는 고양이는 못될 것 같다.

그렇게 치열하게 사는 건 내 삶의 가치관과 반대될뿐더러 별로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다.

한때 치열하게 살아보는 게 내가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시도해 봤는 데, 앞만 보고 달릴수록 불안과 피로가 더 쌓였고 자꾸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더 커졌다.


아무튼 이 붕 뜬 시기를 어떻게 이겨낼까 고민하다가 이 구절을 읽고 좀 더 행동해 보기로 했다.

상담사 채용 공고도 보이는 대로 몇 개 더 지원해 보고, 지인에게 소개받은 일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노력만 하고 결실을 맺지 못하는 과정 중 모아놓은 돈만 날아가는 상황을 보는 게 괴로웠는 데, 다행히도 지인이 추천해 준 디지털 튜터 자리에 붙어서 지금 출근을 하고 있다.


평소 아침 8시에 일어나는 것도 힘들어하는 나였던지라 새벽 6시가 되기도 전에 일어나는 게 정말 고역이지만, 돈을 조금이라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속에 불안이 조금씩 걷히고 희망이 새어 들어오고 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도 아니었지만, 내 커리어와 조금이라도 연결될만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게 기뻤다.


일주일에 2번 정도 새로운 파트타임을 나가고, 나머지는 캐릭터 사업과 기존에 하던 일들을 병행하니 일주일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붕 뜬 것 같은 기분은 새벽에 일어날 때부터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 버렸다.

우울과 불안도 부지런함으로부터 오는 피곤함은 이길 수 없었나 보다.


이제는 피곤해져서 어서 빨리 파트타임 일의 기한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사람이 이렇게나 간사하다.

일이 없을 때는 그렇게나 일을 원했는 데, 이제 일이 생기니 그때 가졌던 여유 시간이 너무 달콤해 보인다.


언제 다시 또 허망함만 느껴지는 날들이 찾아올지는 모르겠다.

다음번에도 조금 더 행동해보는 해결책을 활용했을 때 허망함이 빨리 자취를 숨겨줄지는 때의 따라 다를 거다.

그래도 어쩌겠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아야 하니 뭐라도 해보는 거지.

이 다짐을 잊지 않고 다시 위로 차고 올라갈 힘을 모아봐야지.




찰떡 직업을 찾아 모험하는 강아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www.instagram.com/illam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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