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아 Sep 03. 2020

아낌없이 주는 언니, 아낌없이 주는 시어머니

#정서적 부채 #계륵 같은 언니 #고맙지만 안 고마워

나에게는 계륵 같은 언니가 하나 있다. 왜 계륵인고 하니, 버리기엔 배울 것이 많고 뭘 나눠주기 좋아하는 따뜻한 언니인데, 품기엔 너무 부담스러운 언니이다. 이를 어쩌면 좋을까.


이 계륵 언니는 나를 자칭 친동생이라 여기는 나보다 15세 정도 위의 지인이다. 온 동네방네 나를 자기 동생이라 소개해놔서 다들 친 자매로 우릴 오해를 하곤 했다. 사실 온라인에서 처음 알게 된 관계이기에 부담이 없었다. 그냥 나를 많이 아끼는구나 했다. 그러니 서로가 동의하는 선에서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면 좀 멀리하면 되지 뭐 하는 무겁지 않은 관계.


하지만 이 언니는 처음부터 관계 맺음에 너무나 열정적이었다. 정말 평생 알고 지낸 동생처럼 나를 대했다. 내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었고, 매일매일 안부를 물어왔다. 처음엔 나한테 뭘 팔고 싶은 건가 오해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냥 원래 오지랖 넓고 애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점점 통화 빈도가 잦아졌고, 일상의 어려움을 넘어서 아주 깊은 부분 이야기까지 모두 공유하게 되었다. 그래서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게 많은 부분 조언을 구하고 의지를 하게 되었다. 인생 선배이자, 상담 전공자였던 그녀는 어느 부분 내 인생의 '구루'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원할 때만 내게 오는 것이 아니었고, 내가 원하는 선을 지키지도 않았다. 애들을 재워야 하는 저녁 9시가 넘어 불쑥 집을 찾아와 직접 만든 반찬을 주고 가거나, 아무 때나 전화를 하여 오래도록 통화를 하길 원했다. 자꾸 먹을 것을 해놓았으니 가지고 가라 요청하기도 하였다. 반찬은 맛있었고 귀한 조언도 감사했다. 하지만 아이 둘을 데리고 있는 입장에서 그것은 무척 감사하고도 몹시 부담스러웠다. 내 입장을 조심스레 이야기하면(언니 죄송해요, 애기들 있어서 길게 통화가 어려워요.) 언니는 아이가 없어 육아를 해본 적은 없지만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다 이해한다고 했다. 늘 "알지 알지~"로 일관했다. "언니도 강아지가 있잖아. 이 아이들도 똑같아, 얼마나 나를 찾는데 5분도 못 쉬어." 그렇다면 제발 전화 빈도나 시간을 좀 줄여줄 수는 없을까. 찾아오거나 찾아가는 것을 덜 요청할 수는 없을까. 어떻게 또 주는 것을 늘 받고만 있을 수 없으니 부담스러워도 꾸역꾸역 무언가를 사던 만들던 해서 나도 갚아야 마음이 편했다. 그럴수록 관계는 더 부담스러워졌다.


자고로 관계란 주고받음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때 마음이 편안함을 느끼는 법인데, 일방적으로 받는 관계가 지속되자 불편했다.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아니 그 언니 참 좋은 사람인 것 같은데 편히 받으면 되지 왜 배부른 이야기를 하는가'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게 일방적으로 (인생 상담과, 각종 반찬을) 받기만 하는데에 대한 부채를 의식하여 나는 전화를 받아야 했다. 그 밤 중 전화는 자정을 넘어 새벽 5시까지 이어진 적도 있다. 중간에 배터리가 다돼서 꺼지자 충전해서 다시 전화할 것을 요청했다. 나는 사실 상대의 호의를 거절하는 것에 능하지 못했고, 그래서 점차 그녀의 상담과 기도와 반찬이 고맙지만 고맙지 않았다. 솔직한 마음을 들여다보면 나는 그 관계가 힘들었다. 나는 나쁜 사람인 걸까? 정서적 부채가 지속되고 그 관계에 눌려 어느 순간 눈치를 보고 있었다. 폰이 울리고 언니의 이름이 뜨면, 전화를 받아야만 할 것 같은 부담과 절대 1시간 이내에 전화를 끊을 수 없을 것 같은 부담이 마음속에서 싸웠다.


그에 더해 그녀의 강한 어조에 대한 부담감이 마음을 짓눌렀다. 그녀는 인생 전반적인 상담에 더해 각종 의료 지식, 부동산 지식까지도 조언을 했는데 그 어조는 몹시 단호했다. 보통 "절대 안 된다" 또는 "무조건 해야 한다."식의 어조였다. 그리고 주변에 언니의 말을 들어서 대박 난 100건의 예시와 안 들어서 인생이 망한 1000건의 예시를 즉시 나열할 수 있을 터였다. 팔랑 귀에 줏대 없는 나는 그런 강한 어조를 들으면 그것에 따라야 할 것만 같은 부담을 느낀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어떤 것에 그녀가 적극적으로 동의를 해주길 바랬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일이 잘못될 것만 같은 비합리적 불안함이 나를 흔들었다.


아 데자뷔.......... 이거 뭐지?!

그래 시어머니였다. 내가 몹시 힘들어하는 인간 유형. 본인이 사랑이라고 믿는 어떤 것을 강행할 권리를 가진 자. 동의되지 않는 선까지 가족이란 이름으로 마음대로 들어왔으며 (매일 찾아뵙고 안부 인사 올릴 것. 아무 때나 우리 집 비밀번호 누르고 들어오기 등) 내가 그녀의 기대에 충족하지 못하면 대놓고 실망했다. 끊임없이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게 뭘 자꾸 갖다 주셨고, 인생 전반에 걸친 강한 조언은 덤이었다. 그 의견에 따르지 않았을 경우 그에 따르는 화는 필수 옵션. 그 관계는 내게 개 목줄 같은 것이었다. 내가 스스로 내 목을 채운 목줄. 목줄이 내 목을 서서히 조여왔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개. 목. 줄.


간디 같은 신랑은 웃으며 말했다. 시어머니는 웃어른이고 거역할 수 없는 관계의 구조 때문에 내 을 제대로 말하지 못해 힘들다 했으니 이번 관계에서는 한 번 연습해보라고. 내 생각을 이야기하고, 끊어야 할 때 끊고. 상대가 아무리 강하게 이야기해도 볼륨을 줄여서 듣는 연습을 해보라고.


아 이 계륵 같은 언니. 심지어 이 언니 이름은 우리 시어머니 성함과 똑같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왜 나는 한 번 휘둘려 본 관계에 또 능숙하지 못한가. 단련되지 않는 어려움을 어떻게 연습해야 할까. 복세편살. 관계를 끊는 것만이 이상적인 답일까. 내가 더 넓어지고 단단해지기 위해서 이 관계를 어떻게 가지고 가면 좋을까. 계륵이다 계륵. 오늘 저녁은 닭이나 구워 먹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페미니스트는 여성스러우면 안 되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