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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아 Sep 06. 2020

완벽한 독일 남자

#부러움과 질투의 사이 #다 가진 자 #뻬비안아저씨 #화장실 일곱개

독일인 부동산 중개업자,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작년 겨울 이 지역에 집을 찾기 위해서였다. 남편은 함께할 여러 후보의 부동산 중개업자(리얼터) 사진을 보여줬고, 그중 하필이면 가장 경력 없는 이 독일 리얼터와 함께 하고 싶다고 했다. 교회, 성당 지인 소개로 만나 뵈었던 경력이 화려했던 다른 한국 누님들은 인생 조언을 얻기에 좋을 것 같지만, 재무 상담을 하기엔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했다. 이 독일인 리얼터는 본업이 따로 있고, 세컨드 잡으로 리얼터 일을 하는데 자격증 유지를 위해 한 해에 달성해야 하는 경력을 아직 채우지 못한 것 같아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탐탁지 않은 이유였지만 남편이 신뢰가 간다 하니 따르기로 했다. 훤칠하게 큰 키에 선한 인상. 처음 그를 만나 인사를 나누었을 때의 그는 차분했고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뭔가 재무 분석을 정말 잘해서 우리 입맛에 맞는 집을 딱 물어다 주거나, 집주인과 싸워 집 값을 낮춰주거나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여전히 나는 그를 쉽게 신뢰할 수 없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 여름을 거쳐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9월 지금까지 무려 일 년 가까이 우리는 그를 만났다. 이 지역 부동산에 무지한 데다 까탈스럽기 그지없는 우리 가족을 따라 거의 격 주로, 심할 때는 매 주말 만났다. 아이 둘을 혹처럼 데리고 다녀야 해서 이동 시간도 오래 걸렸고 때론 양해를 구해야 할 일도 많았지만 기꺼이 함께 해주었다. 우리가 집을 볼 때 나중엔 아이들과 친해져서 밖에서 아이들을 봐주고 있기도 했고, 언제나 싫은 내색 하나 없이 우리의 요구를 다 들어주는 그가 무척 고마웠다. 우리가 그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나중엔 마음이 괜히 급해져 성급히 결정을 하려 하면, 후회 없는 선택을 위해 재고할 것을 제안하는 여유로움도 보였다. 어쨌든 우리 아기들에게 뻬비안 아저씨는 미국에 와서 가장 자주 본 아저씨가 되고 말았다. 낯가림이 심한 첫째도 아저씨를 보면 반갑게 달려가 안길 정도로 친해졌다.


원래 그는 베를린에서 왔다. 교육 전공인 나에게 미국 로망은 없어도 독일 로망은 엄청났다. 만약 나라를 선택할 수만 있다면 언젠가 독일에서 꼭 한 번 살아보고 싶었다. 유럽 여행 중 어쩌면 가장 멋없는 독일이, 나는 제일 좋았다. 몹시 불친절하지만 잊지 못하게 소시지와 맥주가 맛있었던 그 나라는 내 취향이었다. 독일, 내겐 드림 컨트리 같은 곳. 왜 그런 조국을 두고 미국에 와서 사는 걸까. 의문과 부러움이 함께 했다. 그의 조국에 대한 부러움이 1차였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한민국도 내겐 자랑스러운 조국이므로, 이건 질투가 아니라 부러움이었다. 그리고 본디 세컨드 잡으로 리얼터 일을 하고 있지만, 그는 집에서 엔지니어로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고 했다. 늘 우리 신랑이 재택근무를 하며 집안일을 함께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터라 나는 그가 부러웠다. 그것이 2차 부러움이었다. 물론 지금은 우리 신랑도 코비드 덕분에 강제 재택근무를 하고 있으므로... 경험해봤고. 그러므로 이것은 부러움에서 부러워할 일이 아니었다는 걸 알아 버렸지만. 그리고 그다음에 알게 된 사실은 결혼하여 아이가 둘 있다고 했는데, 딸이 중학생 이래서 그가 보기와 다르게 나이가 많은가 보다 했더니 웬걸 연하인 우리 신랑과 동갑이란다. 아니 그러면 언제 결혼을 한 거지? 우리 신랑과 함께 늘 역사를 되돌이킬 수만 있다면 20살에 당신을 만나 빨리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인생을 좀 더 가치롭게 살아봤을 텐데, 소득 없는 연애와 술로 보낸 청춘을 늘 한탄하는 것이 내 레퍼토리 중 하나였다. 물론 지금도 늦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바른 길을 앞서 걷고 있는 나보다 한 살이라도 젊은 사람을 보면 부러웠다. 그의 나이와 빠른 결혼과 미리 끝낸 육아가 3차 부러움이었다. 마지막 4차 부러움은 모든 집 관련 기술을 섭렵하고 있는 것이었다. 두 번째 벌이로 부동산 관리를 하고 있어서, 자기가 직접 모든 렌트 집의 핸디맨(집 안팎의 잔손질 보는 일) 역할을 하고 있었고, 자기 집 마루도 직접 깔고 페인트 칠도 직접 한다고 했다. 오오오 멋있었다. 우리와 함께 집을 보러 가면 여기가 몇 평이니 바닥 마루 얼마, 페인트 얼마, 창문 유리 얼마 해서 총 공사 견적을 대략적으로 내줄 수 있을 정도였다. 우리가 원하는 삶의 방향에서 조금 앞서가는 그가 역시 대단해 보였다. 거기까지는 부러움이었다. 음 괜찮은 인성을 가진, 좋은 조건을 두루 갖춘 여유 있고 영리한 리얼터 동생, 부럽다.


그런데 내 시야가 바뀌게 된 것은 그의 차 때문이었다. 다섯 번째 즈음 만남에서 몰고 나온 그의 차는 내 드림카, 테슬라 모델 X. 거기에 취미로 BMW 바이크를 탄다고 했다. 아 여기서부터 살짝 내 시선은 부러움에서 '아 뭐야, 잘 나가네 진짜ㅋㅋ'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것이 1차 질투였다. 내가 가지고 싶은 인간적인(세속적인) 조건들을 다 가지고 있는 것만 같아서였다. 그리고 오랜 취미로 유도를 한다고 했다. 10여 년 단련한 유도 유단자였다니 어쩐지 같이 다니면 위험한 지역에 가도 든든하기만 하더라. 마지막 나를 무너트린 질투는, 최근 이사 간 그가 조심스레 집들이에 초대해도 되는지 물어봤을 때였다. 우와 독일인 친구 집이라니 궁금했다. 그 집에 가면 꿈에 그리던 맥주에 소시지를 얻어먹을 수 있는 것인가 더 궁금해졌다. 그런데 그 주소를 찾아 집을 보니........... 내가 그토록 목 놓아 외치는 지역(여기도 강남 8 학군처럼 어마어마한 동네가 있다. 우리나라만 한 이 주를 통틀어 제일 잘 사는 동네란다.)에 대저택이 아닌가. 아 왠지 울컥했다. 그 위대한 개츠비가 사는 것 같은 집 말이다.


부러움과 질투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냥 그가 하는 일이 좋아 보이고 나도 열심히 노력하면 따라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어떤 것은 부러움인데, 어느 순간 아 이건 따라갈 수 없는 지경의 넘사벽이면 아니 뭐야... 뭘 저렇게 다 가졌어? 하는 감정일까. 아 나 왜 자꾸 화가 나지? 내가 믿는 신을 이럴 때 찾아도 되는 것인가. 아 갑자기 주님을 외쳐본다. 오 주님, 아니 저 자는 어떤 덕을 쌓았길래, 다 주셨나요. 딸도 아빠 닮아 늘씬하고 착하고 예쁘던데, 뭘 저렇게 다 가졌나요. 화목하고 건강하고 부유하고 여유롭고... 네? 멀리서 봐도 희극이고 가까이서 봐도 희극인 인생도 있나요.



** 이어서 연재할게요. 집들이는 다음 주 토요일인 9월 12일이에요. 그 화장실 일곱 개 있는 대저택은 어떻게 생겼는지 가보고 감상평을 제 브런치에 남길게요. 저는 평범한 서민이라 화장실 일곱 개 있는 집은 어떻게 생겼는지 영화에서나 봤지 말이에요. 화장실이 일곱 개면 월화수목금토일 돌아가면서 쓰나요? 거기 가서 이런 질문하면 저 너무 멍청해 보일까요? 에이 걱정 마세요. 안 그럴게요. 그들도 한국인 친구는 처음일 테니 동방예의지국 출신답게 예의 바르고 교양 있게 행동해야겠지요. 아니 생각해보니 그 집 화장실만 합쳐도 지금 저희 집보다 넓네요? 앞마당에 수영장이 저희 집 보다 넓어요. 저는 소인배라 그런지 많이 부럽고 좀 배 아파요. 차 타고 저런 요란한 대저택들 지나가면서 아니 저런 집엔 어떤 사람이 사나 늘 궁금했는데... 맨날 목 늘어난 티에 반바지에 쓰레빠 끌고 와서 빈 집 문 열어 주던 선량하게 생긴 우리 리얼터가 그런 곳에 사는군요. 뭔가 다른 종족이 사는 줄 알았지 뭐예요. 그러니까 막 아이언맨 같이 생긴 사람들만 그런 곳에 사는 줄 알았다고요. 그는 우리와 비슷한 이민자이고, 그도 그냥 좀 빨리 결혼해서 재택근무하면서 투잡 뛰는 애 아빠인데. 그래서 전 지금 부러운 걸까요. 아니면 질투가 나는 걸까요. 제 좁은 속을 이렇게 브런치에 솔직히 털어놓아봅니다. 신랑이 이러고 있는 저를 보고 골룸 같대요.(마이 프레셔스!) 선한 자아와 악한 자아가 오락가락합니다. 저 집들이 선물로 '코리안 팬케이크'라면서 해맑게 '전'이랑 '김치전' 구워가려고 했는데 왠지 소심해져요. 저런 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 음식 안 먹을까요? 도대체 그런 집 하우스 워밍 파티엔 뭘 사가야 하는 걸까요. 아니 근본적인 질문부터.... 부동산 중개인 일은 취미였을까요? 히잉... 막 부러워요. 독일에 제 사촌은 없는데 왜 배가 살살 아픈 걸까요. 아무래도 뭘 잘 못 먹었나 봐요.



[질투]

다른 사람이 잘되거나 좋은 처지에 있는 것 따위를 공연히 미워하고 깎아내리려 함.


[부러움 (부럽다)]

남의 좋은 일이나 물건을 보고 자기도 그런 일을 이루거나 그런 물건을 가졌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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