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엄마는 끝까지 엄마 #맘 편히 드세요 #물미역이 뭐라고
이 나라는 한국에 비해 고기가 엄청 싸다. 처음 장 보러 왔다가 어마어마한 양의 소고기에 놀라고, 그 가격에 더 놀랐다. 적어놓고 보니 무슨 식육식당 광고 문구 같지만. 한국보다 저렴한 것은 고기뿐만이 아니다. 고기, 치즈, 우유, 과일 모든 것이 무척 풍성하고 여유로웠다. 정말 체감 물가가 저렴했다. 물론 저렴하고 괜찮은 한국의 재래시장에서 도매가로 구매하면 더 저렴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신혼 생활을 하던 곳에선 적어도 유모차 끌고 걸어갈 수 있는 30분 이내의 거리엔 재래시장이 없었다. 대신 이마트 쓱 배송, 마켓 컬리, 배민, 쿠팡 로켓 배송 이들이 육아의 고마운 동반자가 되어주었을 따름이다. (물론 여기도 아마존이라는 친구가 있다. 하지만 한국의 배송 시스템을 따라가려면 멀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배송 시스템은 훌륭하지만 한국만큼 땅덩이가 효율적이지 못하다. 음식이며 식재료를 당일에 배송해줄 수 있는 도심지는 제한되어 있다. 각종 생활 용품들은 아마존에서 배송을 시키더라도 결국 먹거리는 내가 직접 가는 편이 빠르고 정확했다. 그래서 2주에 한 번 몰아서 식료품 장을 보러 간다.)
마스크에 소독제까지 요샌 영 나가는 것이 귀찮지만 그래도 장 보러 가는 건 재밌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양고기까지 없는 것이 없고 가격은 비교할 수 없이 저렴했다. 둘째가 이유식 하던 개월 수에 이 나라에 왔던 터라 하루 섭취 소고기 함량을 지켜 이유식을 해먹여야 했다. 한우 안심은 너무 비싸서 딱 이유식 거리만 사다 소분하여 사용하곤 했었는데, 여긴 질 좋은 미국 소 안심이 너무 저렴해서 우리 가족이 실컷 구워 먹고 한 조각 잘라다 이유식에 써도 되었다. 고기를 원 없이 먹을 수 있어 그저 감사했다. 치즈도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서울우유 슬라이스 치즈 말고 모차렐라, 브리, 마스카포네, 리코타, 블루, 브리, 까망베르 치즈 등등 그 종류가 다 읽을 수도 없이 다양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우유도 훨씬 종류가 다양하다. 우유 종류가 다양하다니 눈으로 보면서도 의아했지만 소젖으로 만든 홀 밀크, 유기농, 저지방, 무지방, 락토 프리 우유 그리고 양 젖, 염소젖 그리고 이름만 우유인 아몬드 우유, 코코넛 우유, 단백질 우유까지 눈이 돌아가게 다양했다. 온갖 허브 종류들은 또 어떻고. 이태원의 어느 마트나 ssg 마켓에 가야 볼 수 있는 희귀한 허브들이 동네 마트에 기본으로 들어가 있었다. 과일 중에도 우리나라에서 나름 고가의 수입산 과일인 파인애플, 멜론, 망고, 아보카도, 레몬, 라즈베리, 블루베리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고 상태도 좋은데 가격은 반값이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났다. 먹거리가 지천이라 한국 음식 안 먹어도 잘만 살 것 같았는데 몸은 기억하고 있다. 내가 평생 무엇을 먹고 살아왔던 몸뚱이 었는지 말이다. 결국 요새는 일주일에 한 번 한국 마트를 꼭 들르게 되었다. 차를 타고 20분 넘게 가야 하는 한국 마트를 굳이 들러서 파, 깻잎, 냉면, 주꾸미, 미역, 불닭볶음면, 제주 감귤 같은 걸 사 오고야 말았다. 한국에서는 먹지도 않던 밀키스와 바나나 우유 그리고 초코파이는 왜 이렇게 맛있는 걸까. 여긴 군대도 아닌데 정말 이해할 수 없다. 몸이 그것들을 부른다. 정기적으로 먹어줘야 살 것 같다.
어느 날은 싱싱한 물미역이 너무 먹고 싶었다. 굵은 미역귀를 돌돌 말아 초고추장에 찍어 한입 가득 우물우물 씹고 싶어 넘기고 싶었다. 임신 후로 고생 중인 변비도 그 물미역 한 대접이면 사라질 것만 같았다. 한국에선 시장에서 삼천 원이면 검은 비닐 가득 차도록 물미역을 사다 먹을 수 있었는데, 한국 마트에서도 물미역은 귀하다. 항상 있질 않았다. 겨울에 잠깐 들어오는 물미역은 한 줄기 겨우 들어있는 팩 하나가 만 원이 넘는다. 가격을 보면 선뜻 손이 가질 않지만 그래도 한국 가는 비행기 표보다 싸다며 애써 가격을 보지 않고 집어 든다. 일상의 작은 사치이자, 이민자 임산부의 소소한 ㅅㅂ비용이다.
엄마와 통화하면서 물미역 이야기를 지나듯 했는데, 그 덕에 엄마는 먹고 싶지도 않은 물미역이 눈에 밟혀 시장에서 한 봉지 가득 사다 냉장고에 넣어 놓고는 왜 그랬나 싶다고 했다. 지난여름엔 갑자기 간장 게장이 먹고 싶은데 여기선 흔하질 않아서 집에서 어떻게 만들어 먹는지 찾아보고 있다며 주절주절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게 언제 적 이야긴데, 엄마는 선물 들어온 간장 게장이 한 박스 있는데 차마 목이 메어 못 드시고 있단다. 철없는 딸은 너무 가감 없이 먹고 싶은 걸 이야기 해댔구나 싶다. 임신한 딸이 저 멀리 타국에서 먹고 싶은 걸 이야기하면 그게 그리 속이 상하신가 보다. 나 엄청 잘 먹고 있는데, 여기 고기가 너무 싸고 과일이 정말 싱싱하고, 치즈가 정말 맛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백 번 말해도 그냥 "좋구나, 정말 좋구나."하고 웃으며 들으셨는데. 지나가듯 여긴 물미역이 영 비싸더라 한 마디가 목에 걸리는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아직도 철없는 딸 가진 엄마다. 한 번 엄마는 영원한 엄마인가 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냉장고에 물미역 한 줄기를 노려 보고 있으려니 엄마 마음이 찡하게 전해져 코 끝이 시큰해지고 만다.
아니 엄마 고구마도 아니고 물미역에 목이 메면 어째요. 제발 마음 편히 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