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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아 Nov 16. 2021

우리 셋째, 없었으면 어쨌을까

#출산육아예찬 #다둥맘 #행복해요 #불편하시면 #조용히 #뒤로갑시다

아이를 잘 낳고 무사히 돌아와 정확히 반년만에 브런치 앞에 앉았다. 아 이게 얼마만인가. 마지막으로 쓰고 간 유서는 지우지 않기로 했다. 좀 오글거리지만 어때 뭐 다 추억이지. 산고는 다시 겪어도 정말 죽을 것 같이 괴로웠지만 감사하게도 아이와 함께 건강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생명은 기적이고, 어떤 것도 당연한 것은 없었다. 셋째라 조금은 출산이 더 쉬울지도 모른다 생각했던 것이야말로 경기도 오산이었다.


셋째 아이의 출산 예정일은 5월 5일 어린이날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5월 7일이었지만 어차피 셋째는 빨리 나올 테니 4월 말이면 이미 낳았을 것이라 생각하고 4월 중순엔 이미 모든 출산 준비를 마쳤다. 아기 방 세팅부터, 아기 옷 빨래, 출산 가방 싸기, 첫째 둘째 아이 맡길 짐 그리고 심지어 미역국까지 미리 끓여놨다. 둘째는 보름이나 일찍 태어났는데 3.8kg로 태어났던 경험이 있어서 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셋째는 더 쉽게 더 빨리 나올 거라는 주변의 조언에 따라 모든 준비를 일찍 끝냈다. 아무리 늦어도 5월 1일에 나올 것이라 생각하고 산후도우미며, 신랑의 휴가 계획까지 다 정리를 마쳤다.


예상했던 날짜에 맞추어 몸도 준비를 하듯 4월 마지막 주 산부인과 검진에서 이미 자궁문은 2cm가 열렸다고 하고 그날 저녁엔 피가 선명하게 이슬도 비췄다. 아 이제 나오려나 보다. 밤새 가진통으로 뭉친 배를 안고 진진통으로 넘어간다 싶으면 바로 병원으로 출발해야겠다고 생각을 하며, 가방을 쌌다. 긴장으로 쉽게 잠이 오질 않았다. 하지만 결국 진진통은 오지 않았다. 새벽녘에야 잠잠해진 가진통 배를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


그렇게 피 말리는 시간을 무려 보름이나 보냈다. 5월이 되고 결국 예정일이 되었지만 뱃속의 아가는 태평하게 나올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더 보내고 아기가 커서 난산이 될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산부인과 선생님의 몹시 강력한 권유에 결국 촉진제를 먹었다. 이제껏 촉진제는 맞는 주사라 생각했었는데 그들은 내게 먹는 약을 주었다. 나는 새끼손톱 반의 반만 한 약을 그것도 반 만 부러뜨린 채로 준 달지도 않은 하얀 알약을 혀 아래 넣고 서서히 녹여 먹여야 했다. 그리고도 진통이 시작되지 않자 의사는 손으로 양수를 터트렸다. 콸콸콸 새어 나오는 양수 그리고 곧 시작된 정말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짧지만 더 강력해진 산고를 겪었다. 그렇게 4시간이 넘는 지옥 같은 산고 끝에 3.8kg 건강한 셋째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예정일보다 일주일이 지난 41주 차에 촉진제를 먹고서야 나온 느긋한 막내 송아지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육아. 신생아와 함께 한 6개월, 이곳에 산후조리원 같은 것은 없었다. 한국에는 백신이 풀리기 전이었고 시국이 시국이라 친정 엄마도 오실 수 없었다. 심지어 산후도우미 도움 조차 받을 수 없었다. 사실 산후 도우미 분은 예약을 해두었으나 스케줄이 꼬여 뵐 수가 없었다. 나는 예약한 일자보다 보름을 늦게 낳았고, 내 다음으로 예약되어 있는 산모 분은 일주일 일찍 출산을 하셨고, 그래서 산후 도우미 분은 내 다음 산모분에게 가버리셨다. 참 막막했다.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가장 편했다. 신랑이 휴가를 썼다. 신랑 혼자서 이제 겨우 3살, 2살 된 첫째와 둘째를 데리고 신생아를 케어하며 산후조리를 해주어야 할 판이었다. 그런데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주위의 이웃들이 가족이 되어주셨다. 정말 미역국과 반찬이 떨어지지 않게 한 달 내내 우리 집 냉장고과 솥을 채워주셨다. 아이들도 나도 배불리 먹고 잘 쉴 수 있었다. 나도 셋째라 요령이 생겨서 일까 신생아 하나 데리고 있는 것은 비교적 어렵지 않았다. 모유 수유도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기적같이 거의 6개월 완모를 해냈다. 그리고 심지어 그 사이에 셀프로 이사도 했다.


삶은 정말 전쟁같이 바쁘다. 위의 아이 둘 옷 입히고 씻기고 재우고, 틈틈이 책도 읽고 바깥 놀이도 하고 동시에 아기는 3시간에 한 번씩 수유를 하며 이제 이유식도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있으면 정말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하다. 첫째는 첫째라 예쁘고, 둘째는 둘째라 예쁘다. 그리고 셋째는 셋째라 예쁘다. 딸은 딸이라 예쁘고, 아들은 아들이라 예쁘다. 영리하게 세상을 배워나가는 모습이 기특하고, 형제나 친구들과 나눌 줄 알면 감사하고, 달려와 안기면 그저 사랑스럽다. 정말 하나하나 귀하고 소중하고 감사하다. 이런 생명들이 우리 손에 잠시 맡겨졌다니 허락하는 한 기쁘게 함께 크고 싶다.


남들은 그런다. 어떻게 셋을 낳았느냐고. 혼자 힘들어서 어떡하냐고. 아이가 없을 때는 몰랐지만, 있으니 이 아이들 중 정말 하나라도 없었으면 어쨌을까 생각하면 아찔해진다. 꽉 찬 행복이다. 첫째를 가지고 아 이제야 가족이 완성된 기분이었는데, 둘째를 가지고 똑같은 생각을 했고, 이번에 셋째를 가지고 나니 정말 이제 가족이 제대로 완성된 기분이 든다. 이 시대에 참 안 어울리는 출산 육아 예찬이다.


젊은 독자들에게 시선을 받는 글을 쓰려면, 이 시대의 기혼 여성들의 경력과 인권과 그리고 노산의 어려움과 독박 육아의 억울함을 토로해야 잘 읽힐 텐데. 출산 육아를 할 수 없는 사회 구조적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해야 속 시원해할 텐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도 내 경력이 아깝고, 늙어가는 내가 아쉽고, 독박 육아는 서럽고, 진상 부리는 아이들 틈에선 눈물이 쏙 빠지게 힘들다. 지원 하나 없는 사회가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래도 주어진 생명 앞에선 이 모든 문제들이 다 겸허해지고 만다.

삶의 이유가 되어주는 귀한 생명 셋, 지금은 그저 감사함이 넘치는 가을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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