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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아 Dec 21. 2021

넷플릭스와 맥주 없는 육아란

#상상할 수 없지 #넷플릭스 추천받아요 #일용직 노동자

육아와 집안일의 공통점이 있다. 끝이 없다는 것과 해도 해도 별로 티가 안 난다는 것. 눈에 보이는 성과와 결과 중심의 사회에서 잘 길들여져 온 나는 정말이지 육아가 체질에 안 맞다. 아니 바로 아래 아래 글에 생명은 기적이고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하다고 쓴 글은 다른 사람이 쓴 글이냐고? 그래 그것도 내가 맞다. 정말 예쁘고 감사하고 소중해서 아이를 셋이나 가지고도 넷은 어떨까 상상하는 못 말리게 육아 예찬론자인 사람, 내가 맞다. 동시에 정말 아주 기본적으로 인간적인 생활을 영위하지 못해 허덕이며 이게 무슨 답 없는 중노동인가 한탄에 빠져있는 사람도, 내가 맞다.


육아와 집안일이 99%로 농도 깊게 채워진 나의 삶에서 '나를 찾는 것'보단 월리를 찾아서에서 월리를 찾는 것이 훨씬 더 빠를 것이다. 정말 숨 막히는 하루하루다. 5세 미만의 생명체 셋과 함께 하는 삶이란 말 그대로 전쟁터이다. 내가 배고플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심지어 싸고 싶을 때 싸는 일은 허락되지 않는다. 허락되지 않는 삶은 살고 있는지 이제 만으로 5년째이다. 아주 잠깐씩 짬이 날 때면 뭘 하지? 뭘 하고 놀지? 허둥지둥거리다 시간이 다 흘러버리기 일쑤이다. 그런 시간은 주로 찰나의 시간이고, 당연히 언제 강제로 종료될지 알 수 없으며, 대부분 늦은 밤인 경우가 많다. 그러니 친구를 만나거나 쇼핑이라도 다녀올 수 있을 만큼 여유롭지 못하다. 폰을 들고 SNS나 유튜브를 켜 이것저것 손가락 닿는 대로 쓸모없는 것들을 보다 보면 한두 시간쯤 훌쩍 흐르는 것은 예삿일이다. 아이를 안아 재우며 넷플릭스를 켜면 시간은 정말 순식간에 증발한다.


허무하고 때론 눈물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 말고 더 의미 있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것 그 조차 정신적인 에너지가 필요하다.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욕구 충족이 되어야 한다. 몸도 피곤하고 마음도 지친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절대적인 시간도 부족하지만 정신 에너지도 한참 달린다. 마음 같아서는 예전처럼 글도 쓰고 상담도 하고 틈틈이 강의도 맡고 싶은데, 어느 것 하나 뜻대로 되질 않는다. 무엇을 할 만하면 한 아이가 아프고, 뭘 해볼까 하면 애들이 끊임없이 날 찾는다. 엄마가 필요한 절대적 시기인지라 손이 열 개라도 부족할 지경이다. 누군가 식사 준비와 장보기 그리고 설거지, 빨래, 청소만 알아서 해줘도 정말 기쁘게 육아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집안 일도 육아도 끝이 보이질 않는다. 해도 해도 티가 나질 않는다. 하지만 슬프게도 어느 것 하나 안 하면 티가 확 난다. 아이들이 먹을 것이 없고, 입을 것이 없고, 잠을 잘 수 없고... 온종일 가족들의 의식주를 해결해내느라 사투를 벌인 후의 엄마는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하다.


애들 셋을 다 씻기고 재운 후 찰나의 시간, 그때 글을 쓰고 강의안을 준비하고 싶냐고?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아무 생각 없이 이불속에 드러누워 넷플릭스를 켜놓고 맥주 한 잔 벌컥벌컥 들이켜면 그게 유일한 삶의 위로다. 아니 당연히 잠도 자고 싶다. 수면은 늘 부족하니까. 근데 잠 보다 더 간절한 것이 있다. 바로 자유. 나도 온전히 방해받지 않는 나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


신랑이 조심스레 묻는다. "그렇게 피곤한데 왜 술이 마시고 싶으냐고." 나는 답한다. "그렇게 피곤하니까 술을 마시고 싶다고." 다 잊고 싶다. 나의 처지도, 나의 의무도. 피곤함마저 다 잊고 싶다. 하루의 마음 에너지를 충전해 다음 날 탈탈 털어 다 써버리는 새로운 개념의 일용직 노동자의 삶이다. 물론 눈에 보이는 경제적 보수는 없다. 


정말 별 것도 아닌데, 오늘의 화나는 일 두 개를 고백해본다.

하나. 오늘 점심, 재택근무 중인 신랑이 회의 시간을 제대로 이야기해주지 않아, 준비했던 점심인 김치말이 소면이 퉁퉁 불어버리자 나는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었다. 불어 터진 면을 먹는 것은 신랑인데 왜 내가 화가 나는 것일까. 

둘. 오늘 저녁, 아이들을 좀 일찍 재우려고 온 힘을 다해 낮잠을 재우지 않고 실컷 놀이터며 도서관이며 끌고 다니며 힘을 빼놓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샤워를 하러 간 사이 애매하게 저녁 6시에 잠들어 버린 둘째에게 왜 화가 나는 것일까. 저렇게 잠들어서 아침에 일어나면 다행인데 너무 이른 시간 잠들면 애매한 시간에 깨버리기 십상인 걸. 이럴 거면 낮에 그냥 잠깐이라도 재우고 쉴 것을 그랬지. 아이가 졸려서 잠든 것이 아이 탓이지 왜 자게 내버려 둔 신랑 탓이겠느냐만은 왜 나는 또 화가 치미는 것인가.


오늘도 하루 종일 뜻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네. 넷플릭스와 맥주 없는 육아라니... 상상할 수 없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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