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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Feb 02. 2020

어떤 꿈

​by J


어떤 꿈.



꿈을 꾸면서도 ‘아, 꿈이로구나!’ 알면서 꾸는 꿈이 있는데, 거부감 없이 편안한 내용이라면 잠에서 깨어나 기억날 듯 말듯하게 기억이 옅어진 채로 여운이 남아있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지금부터 쓰려고 하는 꿈은 빠져나오고 싶지만 꿈인 줄도 알지만 눈이 떠지지 않는 내용의 꿈이다. 끔찍하거나 무서운 장면이 나오는 꿈이 아니지만 악몽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그것 참 흥미롭게도 꿈속의 나는 단순히 걷고 있다.


걷는다. 걷는다. 계속 걷는다..

풍경은 멈춰있다.

걸어도. 걸어도. 걸어도.

나는 제자리에.

앞도 아니고 뒤도 아니고.

나는 멈춰진 황량한 풍경 가운데.


다급해진 나는 걸음이 빨라져 마침내 뛰어도 보지만

정지화면 속의 나는 변함이 없다.


한동안 그러한 주제의 꿈이 반복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서 그렇게 고요하게 충격적인 반복적인 꿈은 꾸지 않았는데 돌이켜보아도 그 꿈은 참 무섭다.


 어린 시절의 그 꿈이 앞날의 예지몽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드는 건 내가 길을 혼자서 헤매고 있는 순간에 느낀다. 큰 도로변이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는,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장소를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찾아갈 수도 있는데 난 혼자 가려고 하는 편이고, 내가 찾아가려고 하는 장소들은 대부분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에 숨어 있거나, 유명한 어떤 곳이 아니다. 스마트폰의 길 찾기 어플이 잘 나와 있어서 예전처럼 모르는 곳을 찾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거의 없어졌지만 어딘가를 혼자 헤매고 있을 때는 여지없이 그때의 꿈이 생각나고, 길도 잘 모르면서 내 취향의 원하는 것 때문에 동행을 만들지 않고(같이 가자고 말할 수 있지만 상대방의 시간과 취향을 방해한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어서 불편해진다) 고민하다가 결국 혼자서 걷는다. 기분이 괜찮을 때도 있지만 조금 우울해져 있을 때는 나 자신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 마음이 춥고 뻐근할 때가 있어도 도착한 그곳에는 온기가 있고 짧은 기적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계속해서 걷고 찾아간다. 묘한 중독성이 있는 것 같다.


덧.

느닷없이 꿈에 대한 이야기를 쓰다니... 왜일까? 생각해보니

어제 있었던 독립 책방 지구불시착의 북토크에 참여하고 나서 잔뜩 즐거운 기분으로 집을 돌아오면서 그곳을 처음 찾아갔던 날, 그 길 역시 무척 낯설고 추웠던 것이 생각났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한없이 걷던 그 꿈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모양이다.






by J

instagram @jankim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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