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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Feb 12. 2020

아침정돈

by 승민

 


 움푹 파인 데와 같은 장소에 필수적으로 의지할 수 없겠지만 나에게도 필요한 것이다. 집이 있다면 방이 방이 있다면 구석이 광장이 있다면 틈이 거리가 있다면 그늘이 사람이 있다면 품이 시간이 있다면 기억도 움푹 파인 것이 될 수가 있을까?


 위는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이다. 책방에 다녀오는 길 버스에서 읽었다. 피천득의 인연을 선물 받은 날이다. 장미꽃이 갖고 싶어 여섯 송이를 산 남자가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꽃을 하나씩 나눠주고 빈손으로 귀가한 이야기만큼

뜻밖이기에 더욱 소중한 선물이라 느낀다. 수필은 현재와 가깝게 느껴져 기피한 지 몇 해만에 손에 잡아본다. 공연히 책을 펼치고 덮어보기를 반복한다. 엷게 바랜 흰 표지의 읽어보지 못할 생이 좋았다. 피천득의 책에서 봄내음이 난다.


 한나절을 잠으로 보낸다. 근래부터는 건강 찾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아침 기상을 연습하고 있었다. 비록 오늘은 실패했지만 그만큼 풋풋한 아침의 향이 고파지는 날이다. 두통과 잠 그리고 무기력 다시 두통 이와 같은 악순환을 끊는데 주력하는 봄이 되어야겠다. 요즘엔 스스로가 보다 호기롭게 세상을 살아가야 할 필요를 느낀다. 내일을 살아가는 나를 상상하자면 기분이 꽤 좋고 이는 나에게 있어 큰 변화이다. 부디 이런 상상을 오래오래 유지할 수 있길 나에게 바라본다.


 방구석에 웅크린 나는 봄을 느낀다. 배고프고 한적한 어제는 참 맑았다. 오늘의 비가 차가워보이지 않는다. 나는 내 마음이 내 머리가 내 건강이 언제고 뚝, 낡은 밧줄이 끊어지듯 뚝 추락해버릴지 모르는 일이라 불안 불안한 하루들을 보낸다. 불안하다는 건 좋은 징조다. 아픈 건 아니니까. 적당히 아픈 건 괜찮다. 이정돈 전부 익숙해질 수 있을 만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며칠의 아침을 맞은 나는, 살아있다는 증거가 통증뿐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그제는 언니의 직장에 제출할 독후감을 재미 삼아 대필했다. 길지 않게 적어 보낸 글은 독후감을 위장했지만 실상 언니에게 쓰는 편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읽게 될 언니의 머릿속 무언가를 흔들어 깨울만한, 손톱만큼의 힘이라도 존재하기를 바라본다. 강렬한 동요는 없을지라도, 조용하고 다정한 방식이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스며들어 사람의 생각을 자세를 시야를 

바꿀 수 있는 글은 영향력을 가진 글이며 좋은 글이라는 보편적인 생각-이 있다. 나 또한 동의하는 바이다. 하지만 보다 먼저 나에겐 나의 글이, 나 스스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가 관건이다.

편지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천천히 삶을 풍요롭게 채워나가기로 한다.




by 승민

instagram @seungm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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