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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Mar 30. 2022

마음을 다해 대충

김택돌



나는 안자이 미즈마루. 2014년 죽었다. 그러니까 나는 사람이 아니라 죽은 사람이다. 죽기 전에는 죽는 것에 대해 조금은 걱정했었는데 막상 죽고 나니 사망이란 것이 그렇게 허무한 일은 아녔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죽음에 대해 그렇게 슬퍼할 필요 없다고 말하고 싶은데 설득할 방법이 없다는 게 진심 유감이었다. 나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죽었다. 지금은 술을 너무 마셔도 죽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메일을 보지 않아도 되고, 마감 독촉에 시달리는 일도 없다. 좁아터진 인간사에 얽매일 것도 없다. 매일매일 산책할 시간도 있고, 와다상같은 좋은 친구도 있다. 와다상은 나보다 5년 늦게 이곳으로 왔다. 조금 전에도 와다 상과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 했다. 우리는 그리운 사람이 있으면 언제라도 만날 수 있다. 그것만큼 좋은 일은 생전과 생후를 더해도 찾아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조금 전, 와다상과 나는 다이보에 있었다. 다이보는 하루키군의 단골 카페로 유명한 곳이다. 오늘도 역시 혼자 카운터 석에 앉아 브런치를 하고 있었다. 하루끼는 요미우리 신문의 스포츠난을 읽으며 안경을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했다. 어떤 일에 관해서라도 극도로 미니멀적인 표정을 보이는 하루끼군이지만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야구에 있어서만은 시끄러울 정도였다. 와다상과 나는 하루끼를 가운데 두고 좌우로 앉아서 야구광 하루끼에 대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하루끼는 그 사실을 알 턱이 없다. 죽기 전에 우리는 일로, 일 외로 참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와 와다상은 하루끼의 무명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사실 난 하루끼 글을 좋아하지 않았다. 평이한 문장 같은데 스토리가 참 어설프기 그지없었다. “도통 말하고 싶은 게 뭔가?”라고 술의 꼬장함을 빌려와 몇 번인가 말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마다 그냥 쓰는 거라며 왜 사람들이 좋아하는 지 모르겠다고 하루끼는 뚱한 얼굴을 했다. 지금 보니 하루끼도 세월을 탄 것 같다. 종아리나 허리는 마라톤을 오래 해서인지 아직 쓸만해 보였지만, 돋보기를 자주 만지작거리는 것이나 신문을 넘길 때 검지에 침을 바르는 모습이 영락없는 보통의 할아버지였다. 


 나는 생전에 다수의 삽화와 표지를 작업했지만 대부분 원고는 읽지 않았다. 나와 반대로 와다상은 모든 내용을 파악하고 붓을 들었지만 나는 그 점에 있어서 만큼은 와다상과 이견이 있었다. ‘그림이 좋으면 그만이지 뭐’ 라고 말하면 편집자와 하루끼가 멍한 얼굴로 그저 정종이나 마실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책이 참 잘 나왔다며 인사를 잊지 않았다. 그건 내가 그림을 잘 그려서가 아니라 하루끼의 원고가 뻔해서 어차피 대충 그려도 모두가 모른다고 편집자와 나는 하루끼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자주 이야기했었다. 참 그리운 시절이었다. 하루끼군과 와다상은 음악에 있어서 취미가 같았다. 하루끼의 번역서 대부분을 와다상이 작업하기도 했다. 하루끼와 와다상,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8월이었던가? 도쿄 전시 즈음해서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새벽까지 마셨었다. 카운터의 종업원이 퇴근도 못 하고 우물쭈물하다가 우리와 합석해서 다이보 매출 석 달 치를 갱신했다며 모두가 크게 웃는 와중이었지만, 나만 카드 잔액이 싹 빠진 것을 생각해서 아연실색했었다고 말하니 와다상이 무슨 소리냐며 그때 계산은 자기가 했다고 생떼를 쓰는 것이다. 나는 오늘 죽은 사람도 생떼 쓴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어이가 없어서 도움이라고 청하려고 하루끼하고 불렀더니 갑자기 하루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위를 두리번 거리게에 나와 와다상은 바로 전에 불화도 잊고 호들갑스럽게 웃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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