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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Jul 30. 2022

쌍소란 시전

김택돌


테이블 위에 올라가 가장 높이 있는 서가에서 책을 찾았다. 특별히 찾는 책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가끔 아무 책이나 찾아보곤 한다 그럴 때마다 이런 책도 있었지 하는 것이 한둘이 아니다. 낙서로 가득한 노트도 있었고, [주말엔 숲으로]가 일본어 문고판으로도 있었다. 빨간색 표지의 [삼국지] 속에는 아내에게 보내지 못한 편지가 들어있었다. [마종기 시 전집]을 하나 꺼내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테이블에는 이미 박소란의 시집과 [소란]이라는 박연준의 산문집이 아무렇게나 놓여있었다. 테이블 위에 있는 책은 꼭 읽기 위함이 아니다. 장식이나 인테리어라고도 할 수 없어 그냥 있다는 말이 적합하다. 나는 아주 가끔 책을 열어보기도 하지만 빠르게 덮을 때가 더 많다. 테이블에 책이 놓여있으면 왠지 모르게 안정감이 생기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이다.


오늘은 토요일, 일요일로 착각한 토요일이었다. 10시에 오픈한 가게는 오전이  지나도록 손님이 없다. 나는 손님이 없을  입구를 내다보는 버릇이 있다. 바깥은 여름의 중심에 있다. 불볕에 익숙한   세상에 없는  확실하다. 지난날까지 초록했던 비비추가 노랗게 병들어 있다. 거리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6차선 도로 위에 자동차만이 짙은 그림자를 안고 쌩쌩 달리고 있었다.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쯤 문이 열렸다. 서서히 달궈진 거리의 온기를 끌고  남자가 들어와 손톱깎이를 빌려달라고 한다. 손톱을 깎고 나와야 하는데  깎고 나왔다는 것이다. 나는 순간 빌려줄까 하다가 모르는 사람과 손톱을 공유해야 하는 찜찜함에 손톱깎이는 없다고 했다. 원하는  얻지 못한 남자는 별다른 액션 없이 온길 그대로 나갔지만  마음에 시끄러움만을 남기고 갔다.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멍하니 모니터를 보다가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책에 다시 한번 시선이 머문다. [박소란의 시], [박연준의 소란], [마종기 시 전집]에서 몇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쌍소란 시전이란 말인가. 나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책을 치우고 종이와 펜을 가져와 고양이를 그릴 준비를 한다.





by 김택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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