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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Mar 14. 2019

얼른 일어나

by 김히키

*

"책 안만들거야요?"


지난 한 달여간 누군가 나에게 물어주기를 간절히 바랐으나 나 자신 말고는 그 누구도 물어주지 않았던 질문. 오늘 마침내 이 질문을 듣는 순간 깨달았다. 나는 이 질문을 마치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내 볼 좀 꼬집어봐.'하는 마음으로 기다려왔었다는 것을. 나 혼자 내 자신에게 아무리 다그쳐봤자 꿈 속에서의 절박한 몸부림이 늘 그러하듯 나는 더욱 무기력한 기분이 들 뿐이었다. 책을 쓰겠다고 했던 그 날들이 꿈이었던가?


알람 소리가 내 뺨을 내리쳐 눈이 번쩍 떠지면 나는 아무리 꿈이 한창이었어도, 아직 창 밖에서 빛보다 어둠이 더 많이들이치고 있더라도, 아침이라는 것을 곧장 깨닫는다.


책 안만들거야요? 사장님의 질문이 나의 뺨을 때렸다. 그러나 눈을 번쩍 떴는데 나는 무얼 하는 걸까 어리둥절 혼란스럽다. 그러나 지금 노동자로서의 삶에 아무리 깊숙이 빠져있다 하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실재하는 세상이 바로 여기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오늘 글을 쓰기로 다짐했다.




*

의존하고 싶을 때

오늘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제를 그리워하는 것은 오늘에게도 어제에게도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나는, 어떤 기억으로 도망치는 대신 나를 무척이나 행복하게 만들었던 책으로 달아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내 최초의 책들과 그 책들의 풍경에 대해 생각하면서 받아들여야만 하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그것은, 만일 현재 내가 내 삶의 전개를 설명하고 이해할 수 없다해도,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 해도, 내가 불안에 사로잡힌 사람으로 삶을 살아오는 동안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해도, 나에게는 그 네 권의 책이 발판 혹은 나침반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예전의 절반 정도만 높이 평가하지만, 나는 여러 해동안 그 책들에 의존했다.


프랑수아즈 사강, <기쁨과 환희의 순간들>


이렇게 쓴 그녀의 글에 나는 여러해를 의존해 오고 있다.



*

욕하고 싶을 때

내 입에서 쏟아질 험담을 들어 줄 사람을 찾는 대신, 나보다 더 정확하게 그 사람들을 욕해줄 이를 메모장에서 더듬거리며 찾는다.



이 세계를 가득 메운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결여된 능력은 두가지 이다. 판단력과 자신만의 고유한 사상을 만들어내는 개성이 그 주인공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 두 가지 능력이 매우 공평하게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이처럼 어리석은 집단에 속하는 인간들은 정작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모르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에겐 존재로 인한 슬픔, 즉 "우둔한 인간을 괴롭히는 자기혐오"(세네카, 서간)마저 찾아 볼 수 없다. 그런데 이 같은 결함 때문에 문학의 생성 원인과 존재이유가 발견되고, 가치있는 삶과 그렇지 못한 삶의 경계가 그어지며, 이를 통해 사람들은 좀더 가치 있는 삶을 선택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쇼펜하우어, <철학에세이>



*

신예원의 It was in Shiraz. 나는 이 곡이 바로 나의 주제곡이라고 믿었는데(그 만큼 심각한 공주병이라는 의미다.) 책을 쓰려고 모아놨던 글들이 갑작스레 사랑스럽지 못하게 여겨지는 것은 아침에 회사 화장실에서 마주한 생얼이 못생겨 보이는 것보다도 더욱 나를 당황하게 한다.









by 히키

instagram @helloh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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