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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Mar 29. 2019

요즘 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병에 걸려있는 듯합니다



 햇빛은 봄이 가득하지만 조금은 냉랭한 바람이 오가는 오전입니다. 오랜만에 글을 써봅니다.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시간에 펜을 든 이유는 조금 답답했습니다. 구글링하다가도 컴퓨터 전원을 내리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곧 인스타에 좋아요를 보냈지만 신선함이 없어 이내 스마트폰을 팽개치듯 내려놓았습니다. 다시 왓챠... ... 커피를 내리고 이슬아를 읽어보려 했지만 그것도 쉽지 않습니다.


 난 뭘 해야 할지를 몰라 컴퓨터와 먼 쪽에 자리를 잡고 글을 써볼 작정으로 커피를 조금 마시고 결의를 다지는 듯 커피를 노려봅니다. 예상대로 쉽지 않습니다. 창밖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 적당히 신경 쓰이는 문제들을 나열해봅니다. 새 책은 반응이 어떨지, 워크숍은 어떻게 해야 할지, 푸딩클럽을 잘 끌어갈 수 있을지, 책방은 이대로 좋을지, 오늘 할 일, 미뤄둔 일은 뭐가 있는지, 지난밤 아내의 한숨은 어떤 색이었는지, 책모임 부끄러브, 미세먼지제로마켓, 드로잉 수업, 시 낭송 때의 나는 어떤 얼굴이었는지, 마을과 마디 운영자 회의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중고 책 프로젝트는 뭐가 좋을지, 나는 왜 소멸하고 싶은지. 나는 또 창밖을 봅니다. 해가 닿는 곳이 제법 봄날의 온도를 띄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날은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겠다고 또 한 번 생각해 봅니다.


 '띵 똥' 새 메일이 왔음을 스마트폰이 알립니다. 작가로부터 정산이 궁금하다는 메일을 받았지만 바로 답하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아직 한 권도 판매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변명으로 시작하는 답장이  부끄러움과 짜증, 염치와 뻔뻔함에 마음이 시끄러워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커피 한 모금 채우고 다시 글을 써보기로 합니다.


 요즘은 자주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홀로 떠나고 싶고, 아무런 배려도 없이 무례한 사람이 되어볼까 합니다. 사실 난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눈치가 없어 해를 끼치거나 너무 경솔해 불쾌하게 한 적은 있습니다. 오해를 사기도 하고 미움받은 적도 있습니다. 대체로 나는 착하고 순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자꾸 삐뚤어지고 싶습니다. 지금의 에너지로 좋은 사람이 되기는 너무 불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리 미안하다고 말해둬야 하겠습니다. 


 밤새 뒤척이며 한숨을 쉬던 아내가 아침에는 책 반응이 어떠냐고 묻습니다. 뜻밖에 목소리가 맑아 울컥했습니다. 승민이가 등교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연우를 아내가 데리고 나가면 30분 정도 혼자 남는 시간이 있습니다. 이 시간을 멍하니 흘려보냅니다. 요즘 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병에 걸려있는 듯합니다.

뭐가 먹고 싶은지도, 어디를 가야 할지도,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증세는 조금 길어질 것 같습니다. 

 

커피도 다 식어버렸습니다.





by illru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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