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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Mar 31. 2019

비 오는 날 아침, 벚꽃처럼

by 퇴근후책방



 약속 시간까지는 아직 시간이 충분히 남아 있었지만, 왠지 늦을 것 같았다. 역시나 위험해져서 결국 택시를 탔다. 달리는 차 창 밖으로 어둑어둑 궂은 하늘, 벚꽃이 보였다.

금방이라도 울컥해서 투둑투둑 빗방울을 떨어뜨릴 것 같은 하늘에 벚꽃이라니. 돌아올 때 벚꽃잎이 바닥에 떨어져 있으면 어쩌지. 네덜란드 튤립농장의 노랫말 ‘비 오는 날 아침에 벚꽃처럼…’ 하는 멜로디를 떠올려보려는 내 마음과는 무관하게 라디오에서는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역시나 그 기억을 떠올리고 말았다.

만발한 벚꽃잎이 흩날리는 길에서 누군가 내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해 봄, 마당에 벚꽃이 만발한 모습을 보며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어.

‘곱다. 참 곱다… 이 꽃을 내가 언제 또 볼 수 있겠노.’”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벚꽃을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는 때는 내가 눈을 떼면 곧 이 꽃이 질 것만 같은,

이 꽃이 지고 나면 이와 똑같은 벚꽃은 다시 볼 수 없을 걸 알아 마음이 아파올 때일 거라고.


 그러나 철학자는 말한다.

“꽃은 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요. 꽃을 피우지 못할 걸 무서워해요. 그래서 영원히 지지 않을 것 같은 각오로 꽃을 피워요. 그래야 진짜 아름다운 꽃을 피워요. 영원을 꿈꾸는 게 아니라….”


 엄마는 꼭 외출 전에 공들여 집안을 정리정돈했다.

그러면서 “돌아오지 못할 때를 생각해야 하는 거야. 지금이 마지막으로 네가 기억될 모습이라고 생각해 봐.” 말하곤 했다.

엄만 어린 내게 왜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죽음’을 상기했을까?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윤동주, <서시>


 어릴 적 윤동주를 읽으며 그의 맑고 여린, 그러면서도 서늘하고 그늘진 감성이 그 시기의 내 외로움이나 우울과 맞닿을 땐 좋기도 하고 싫기도 했었다.


 오늘 두 번, 아니 세 번 정도 내 나이가 많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알고 있다. 내가 나이 들고, 모습이 변해가는 걸 느끼며 내 삶이 영원하지 않음을 깨달을 때 비로소 내 진정한 아름다움에 눈뜨고 내 삶에 대한 진짜 사랑이 시작된다는 것을.

엄마도, 큰언니도, 내 친구들도, 우리 집 멍멍이 고란군도, 옥탑방 야옹이 삼남매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택시 기사 아저씨도, 내가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도, 지나친 사람들도…. 

모두가 영원하지 않구나. 그래서 애잔하다, 아름답다, 사랑스럽다. 이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엄마는 내게 죽음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살아내지 못할 것을 두려워해야, 진정 아름답게 피워낼 수 있다는 걸 가르쳐주고 싶었을까.


삶은 오늘도 죽음의 서곡을 노래하였다.

이 노래가 언제나 끝나랴.


세상 사람은-

뼈를 녹여내는 듯한 삶의 노래에

춤을 춘다.

사람들은 해가 넘어가기 전

이 노래 끝의 공포를 생각할 사이가 없었다. 

-윤동주, <삶과 죽음>


 돌아오는 길, 굵어지는 빗줄기와 세차게 부는 바람에 가녀리게 흔들리는 벚꽃을 보았다. 슬프지 않았다. 


-퇴근후책방

instagram @afterwork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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