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오늘부터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아저씨 뭐가 가장 맛있어요?” 입맛은 개인적인 취향이라 이 질문을 바꿔 말하면 ‘아저씨는 어떤 음식을 좋아하세요?’와 같습니다. 이 아가씨가 저한테 관심이 있는 걸까요? 하마터면 대답할 뻔했어요. 자, 정신을 차려야죠. 저 질문의 정확한 해석은 ‘내가 뭐 먹고 싶은지 맞춰보세요!’라고 묻는 겁니다. 그리고 함정이 하나 숨어 있습니다. 제가 만약 대답을 해버리면 나머지 메뉴들은 덜 맛있는 게 되어 버리는 거죠.
비 오는 날에는 파전과 막걸리가 생각나고, 먼지 날리는 대청소라도 하고 나면 꼭 삼겹살을 먹어야 할 것 같은 우리는. 날씨와 감정 그리고 오늘의 어떤 일을 했는지에 따라서도 뭘 먹어야 하는지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저는 메뉴를 추천하지 않습니다. 대신 메뉴판에 있는 설명을 꼼꼼히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어쨌든 식당 주인은 독심술과 텔레파시로 처음 보는 손님과 교신이 가능할 거라고 기대하는 우리는 ‘1. 심정중심주의’의 한국인이니까요'
“아저씨 뭐가 가장 많이 팔려요?” 좀 전과 비슷한 질문 같지만 그 결과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 펼쳐집니다. 통계학을 공부했던 저는 노트북에서 엑셀파일을 열어요. “최근 6개월 동안 메뉴별 매출 기여도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카레 32%, 라멘 28%. 그리고 우동이 8% ….” 내 소중한 한 끼가 실패하면 안 되는 성격의 손님은 역시 질문도 명확했고 저도 정확한 답변을 드렸습니다. 우리는 ‘2. 불확실성 회피’의 한국인이니까요'
조금 전 손님이 망설임 없이 키오스크 앞으로 다가갑니다. 당연히 1위 카레를 주문하실 테니 저는 그동안 카레소스가 너무 묽거나 되직하지 않게 미리 잘 저어 둡니다. 드디어 삐리리~ 주문서가 출력 됐습니다. ‘가케우동’이라고 쓰여 있어요. 마지막에 마음이 바뀌었다고 하시네요. 괜찮습니다. 우리는 타인이 정해주는 대로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판단을 중시하는 ‘3. 주체성’의 한국인이니까요'
“우리 다른 걸 시켜서 나눠 먹자!” 여성 두 분이 합의에 도달합니다. 그리고 각기 다른 메뉴를 선택하세요. 원래 우리 민족은 평민 가정에서도 독상을 했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이렇게 나눠 먹는 음식 문화는 물자 수탈로 놋그릇을 빼앗겼던 일제 강점기와 빨리빨리를 외치던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생겨난 현상입니다. 오늘은 짜장면을 먹고 내일은 짬뽕을 먹는 여유도 없이 짬짜면을 탄생시킨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죠. 그래서 우리는 어쩌다가 이렇게 ‘4. 복합유연성’의 한국인이 되었습니다'
“넌 뭐 먹을 건데?” “그러는 너는?” 남학생 셋이서 메뉴 선택을 못하고 있습니다. 가게 앞에서는 뉴스보이 율이가 오늘은 새 소식은 없는지 광선검 장난감을 휘두르며 힐끔힐끔 저를 찾아요. 아무래도 나가봐야겠어요. “와~ 대단한데! 어디서 배운 거야?” 기다렸다는 듯이 형광색 불빛을 켜고 몇 가지 동작을 더 보여줘요. “우와~ 율아 이건 더 대단해!” 내 반응에 율이가 신이 났는지 이번엔 밖을 향해 날아 차며 휘두르기를 하더니, 그대로 삼빡하게 사라집니다.
“너부터 골라” “아니, 너부터 고르라고” 이번에는 누가 먼저 메뉴를 선택하느냐를 두고 다투고 있습니다. 내가 뭘 먹을까 선택하는데 친구가 뭘 고르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같은 걸 선택하려거나 일부러 그걸 피하려는 의도도 딱히 아닙니다. 그냥 그게 중요합니다.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이러한 개인적인 관계를 중요시하는 우리는 ‘5. 관계주의’의 한국인이니까요'
“사장님 존경스럽습니다. 식당을 운영하시면서 한국인의 특성을 연관 지어 생각하셨다는 게 저는 놀라워요!” 허태균 교수의 책 ‘어쩌다 한국인’에서 언급되는 한국인의 특성 6가지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예를 들었던 것뿐인데 손님이 재미있었나 봐요. “저 오늘부터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아~ 이건 가족의 개념을 사회적으로 확장하려는 특성을 가진 우리는 ‘6. 가족확장주의’의 한국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