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은 청소와 난에 물을 주는 날인데 오늘은 기운이 없어하지 않았다.
보통 금요일엔 조금씩 일찍 퇴근을 하셔서 다들 자리에 안 계실 때 청소를 하는데, 오늘따라 모두가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누군가 책상에 앉아있는데 의자 주변이나 발밑을 빗자루로 쓸거나 걸레질 하기는 불편한 일이다.
그리고 힘도 없었다. 월요일 아침 기운이 있을 때 하자.
출근을 하고 내 생활은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느슨해졌다. 집안 살림과 그림 그리기 여가생활? (책 읽기 넷플릭스 보기 등)을 하기엔 시간이 늘 모자랐다. 안 그래도 나의 모든 행동은 느리기에 나는 늘 시간이 부족하다.
전에는 나의 무기력과 기운 없음이 내 일상을 갉아먹고 있었지만 출퇴근을 하고 나서부터는 또 다른 종류의 기운 없음과 멍함이었다.
그리고 허기가 생겼다.
매일 꼬박꼬박 밥을 먹고 앉아있는 것 때문일까? 몸이 불어났다. 배가 나오고 편한 옷만 입고 싶다. 8킬로는 찐 것을 알고 있으나 더 이상은 알고 싶지 않고 무서워서 몸무게 앞에 서기를 피하고 있다.
꼬박꼬박 점심식사를 하고, 커피믹스 1잔도 마시고 그뿐인 것 같은데.. 왜지
오히려 이곳에서 일하기 전에는 아무 때나 이것저것 주전부리도 많이 하고 종일 뭔가 자주 먹었다면 지금은 그런 간식을 먹을 일도 거의 없다. 딱 식사만 한다. 그래서일까 왠지 더 허기졌다.
과자의 부스럭거림이 천둥만큼 크게 들리니 그럴 수 없었다. 혼자만 뭔가를 먹기도 어렵고, 아니 혼자 책상에서 내 커피나 내 과자를 먹어도 되는 것인지도 몰랐다.
이거 드시겠어요 해야 하는 것인지 골치 아픈 선택 앞에서 나는 피하는 것을 선택했다.
하루 종일 그다지 힘든 일도 하지 않는데도 6시면 매일의 허기가 찾아온다.
미리 무엇을 시킬지 검색을 해두고, 퇴근과 동시에 배달음식을 주문한다. 그러면 집에 도착해 간단히 씻고 음식을 받을 수 있다. 이게 사람들이 말하는 소확행일까?
머릿속으로 남은 돈과 앞으로 필요한 돈의 계산 등을 하지 않고 치킨을 배달시킬 수 있는 여유, 직업을 갖기 이전에는 이런 일은 없었다. 쓸데없는(그냥 밥해먹기 싫어서, 귀찮아서 식의) 외식도 절대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생활을 이어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금의 여유를 부리면 다른 곳에서 구멍이나고 그걸 막을 방법은 나에게 없으니, 하나하나 작고 큰 모든 씀씀이가 다 계획 안에 들어가야만 했다.
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를 읽고 하루에 만 원을 쓰는 이모, 나와 같은 패턴의 삶을 사는 그녀에게 과도하게 감정이입을 했었다. 그리고 소설 속 캐릭터지만 어딘가에 나와 같은 삶은 사는 사람이 또 있음에 공감했다.
생활비 포함 하루 1만 원 이상을 썼을 때 오는 스트레스, 의도하지 않게 돈을 지출했을 때의 짜증은 날 숨 막히게 했다. 계속 반복해서 이 돈을 썼으니 이제 내일의 만원에서 빠지는 것이라고 되새겼고, 오늘 만이천원을 쓰면 다음날 8000원을 쓰는 계산으로 매일을 살았다.
어쩌다 몇만 원을 쓰면 그 주의 쓸 돈에서 빼 채워 넣는 나만의 계산은 커피 한잔, 뭐 하나 쉽게 집어 들어 사는 것들로부터 망설이게 했고, 만남을 피하게 되는 주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그런 것들로부터도 나의 불안은 점점 심해져 갔던 거 같다. 예측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부터 도망처야만 한다는 생각들이 나를 불안으로 몰았다. 고정적인 수입은 내 선택에 고민의 시간을 줄여 주었고, 그에 따른 불안함도 줄어들었다.
택시도 타고, 외식도 하고 병원도 가고 월세도 냈더니 월 초인데 벌써 돈이 없다.
그런데 불안하지 않다.
얼마있다 들어올 돈도 있고 뭐 어떻게 살아지겠지..
오늘은 뭘 먹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