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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하고 아름다운 Jul 17. 2019

나중에 더 큰돈 들어

저도 아는데요

약 10년 전부터 나에게 편두통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통증, 하루를 넘겨도 다음날까지 멈추지 않고 지속되는 상태, 아무것도 못하고 불 꺼진 방에 누워 자다 토하다 자다를 반복하다 병원을 찾았다. 당시 외국의 공짜 병원에 갔는데, 큰 기대가 없었음에도 엄청나게 긴 문진을 받았다. 수도 없이 많은 질문에 토할 거 같았다. 한국에서는 특진이 아닌 이상 슈퍼마켓처럼 다음 환자가 내 등 뒤에 기다리는 기분을 느낀다. 그런 빠른 진료가 아니어서였는지  '아니 뭘 이렇게 많이 물어보나' 싶은 마음과 당연하고 진료임에도 당시 나는 의사가 서툴어서는 아닌지 잠깐 의심했다.


편두통이라는 단어부터 바뀌어야 하는 것 같다. 한쪽 머리만 아픈 것을 편두통이라 생각했기에 전혀 의심하지 못했다. 그 후로 나는 끊임없이 시달렸고 불치병 같은 편두통은 내 생활을 망가트리는 주범이었다.

할게 많은데 누워있으며 그 스트레스를 받아 또 머리가 아파져 내가 소모되는 기분이었다.

이게 내 인생을 갉아먹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나는 통증에 점령당하고 있었다.


그러다 약이 다 떨어진 어느 날 다시 동네 의원을 찾았고 의사 선생님은 평소 생활 습관을 잘 지켰냐며 여기서 주는 약으로는 안된다고 종이 한 장을 주며  종합병원을 을 찾으라 했다.

나의 동네병원 의사 선생님은 정말 특이하신 분인데 이분은 약대신 본인 책상 위에 있던 <편두통> 올리버 색스 책을 추천해 주셨다. 약으로는 해결 못한다고, 근본적인 문제를 찾아야 한다고 틀린 말은 아니나 당장 고통을 말하는 환자 앞에서 의사로서는 하기 어려운 말은 아닐까. 어쨋든 나는 선생님의 추천으로 예방을 위해 몇 년 전에 산 그 책은 하드커버에 두꺼웠고 아직까지 다 읽지 못했다.

이전에 응급실도 찾았던 적이 있기에 더 센 약을 써야 하나보다 생각하고 좀비처럼 병원을 나왔다.



이미 내과에서 가지고 있던 잔액을 거의 소진했기에, 돈이 없었다. 그래서 가는 내내 두려웠다.

나에겐 신용카드가 없다.

잔고 없는 일용직 노동자에게 신용카드를 내주고 싶은 곳은 없다. 혹시라도 내가 만들었다 해도 다음 달 들어올 돈이 없는데 빚을 지는 일을 할 순 없었다.


언니에게 전화해 5만 원을 빌렸다. 그 정도면 되겠지 다행히도 언니는 바로 즉시 이체해주었다. 택시를 탈까를 잠시 고민하다 버스를 기다렸다. 몇 정거장 안 가니까 참을 수 있을 거야. 버스에서 토하면 어쩌지 택시에서 토하면 시트 청소비용을 물어야 하니까 버스가 나을지도 아니 그냥 나는 걸어가기로 했다. 걸어갈 만큼 멀지 않은 거리었기는 했지만 바로 토할 것 같은 상태로 차를 탈 수 없었다. 변수가 생겼을 때 내가 치러야 할 비용과 여력이 없었다. 병원에 가까이 왔을 때  나는 다시 무서워졌다.

뭘 찍자고 하면 어쩌지, MRI를 찍어 봐야 알 것 같다거나, 혈류검사? 혈관검사? 같은 걸 하자고 하면 어쩌지 그날이 언제 든 오겠지만 오늘만은 아니길 바랬다. 만약 의사가 찍어야 한다고 하면 나를 어디로 가세요 할 텐데... 그때 뭐라고 하면 지금 이걸 찍지 않겠다고 다음에 찍겠다고 말하고 나올까, 덜 거지 같이 말할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걸으면 걸을수록 머릿속에서 뇌를 잡고 있던 무언가가 빠져나가 따로 안에서 덜그럭 거리는 것만 같았다.

내 걱정이 발을 잡고 놓지 않는 것처럼 걸음걸음이  무거웠다.


사람들에게 흔하게 숱하게 들어온 말들,  이 말은 내 머릿속에서 모두 돈으로 환산이 되었다.


"실비보험 없어?"

없는데..

"암보험 들어둬야 해"

"치과 미루면 나중에 더 큰돈 들어"

"스케일링은 공짜니까 한 번씩 가는 게 좋아"

"가서 검사해야지 늦게 아는 것보다  빨리 발견하는 게 나아"


그걸 제가 모를까요?


뭐가 낫다는 걸까?

빨리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인데,

무언가를 발견한 후부터는 더 큰돈이 든다.

수술, 치료, 약, 검사, 치료, 수술 무한반복이다. 나는 그걸 감당할 만한 경제력이 없고, 빚을 져 가면서까지 (아무도 꿔주지도 않았겠지만) 살고 싶은지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아파지는 게 무서웠다. 갑자기 아파져 삶에 대한 의욕이 넘치면 어쩌지 살기 위해 무엇이든 하려 들면 나는 감당할 수 있을까?


치과는 제일 무서운 곳 중에 하나이다. 사람들은 치과의 치료와 통증이 무섭다고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돈이었다. 예상할 수 없는 비용들은 통장 잔고에 존재하지 않았고, 앞으로 언제 생기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당장 눈앞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데 고개만 돌리면 외면할 수 있는 문제를 덮어 두는 건 쉬운 일이었다.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으니 모른척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였고 그게 조금이라도 평화를 주니 말이다.


너무 무서웠던  병원에서는  일반 질료 후 약만 타 무사히 나올수 있었다. 다행히도 주머니에 몇천 원을 남기고서..


약은 빠르게 흡수되어 한두 시간 만에 평화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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