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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하고 아름다운 Mar 30. 2020

조금 떨어져 주시겠어요.

불안과 예민함 사이


그림 그리는 프리랜서로 지내다 보면 혼자 부유하고 다니는 둥둥 떠있는 섬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그리는 일을 하고, 의뢰인과 전화나 이메일로 연락을 받고 하지만 한 번도 만나지 않고도 충분히 일이 가능하기도 하고 결과물이 물론 책들에 사용되긴 하지만, 내 손을 떠나 어딘가를 부유하며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없어지고 하는 느낌이다. 


내가 배를 타고 나가지 않으면 언제까지라도 섬에 스스로 갇혀 지내는데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혼자 둥둥 떠다니다 보니 자연스러운 거리두기를 했고,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어느새 너무 지쳐 버렸다.거리두기는 나를 보호할 수 있었다.

내가 만날지도 모르는 어떤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막아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들은 너무 많았다. 집안에서는 현재 내 상황에 대한 걱정 내일, 미래에 대한 걱정들 집 밖으로 나가면 길에는 타워 크레인이 내 앞길을 물리적으로 막고 있었고, 아스팔트 바닥엔 원형 맨홀이 수도 없이 많았다. 언제 저 타워크레인이 쓰러질지, 내가 밟은 맨홀이 무너 저 내려 빠질지 모르는 일이기에 몸과 마음은 부산했다. 그렇게 천장이 무너질까 봐 앉지 못하는 사람으로 계속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넌 왜 그렇게 예민해"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라는 말은 늘 나와 함께 였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소리와 냄새와 사람들의 움직임은 가끔씩 내 신경을 건드렸고 그건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누군가 내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을 침범이라 느끼는 아주 예민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모든 행동엔 이유가 있었고 불안장애라는 병명이 되어 그동안의 내 행동과 상태를 설득시킬 수 있었다.


내 상태가 극도로 불안하기에 나를 스스로 보호하기 위한 촉각이 곤두서 감각이 평소라면 일부러 집중해서 소리를 듣기 위해 촉을 세운 상태가 하루 종일 유지된다는 것이다. 소머즈처럼 집중한 상태를 하루 종일 유지 하기에 체력도 감정도 금방 탈진 상태가 되어 극도의 피로감으로 무력감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고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듣고 난 이후 스스로에게 조금은 관대해졌지만 외부의 자극은 여전히 피로했기에 이미 나는 사회적거리두기를 실천 하고 있었던 셈이다. .


요즘 사회적 거리두기 (social distance)라는 말이 자주 들려온다. 바이러스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물리적인 거리를 두고 지내는 것이다. 드디어 내가 기다리고 원하던 세상이 왔다. 그동안 손 씻기, 기침예절과 함께 앞 뒤 사람과 떨어져서 줄 서기 등 개인적인 거리 유지에 내적으로 홀로 힘써왔던 나에게 내가 생각한 세상이 틀린 게 아니라고 그 가치를 인정받는 날이 드디어 온 것이다. 나와 나의 고독한 길을 함께 해준 소수의 동지들은 이게 보편적인 태도가 되기를 바란다. 사회적 불안은 화장실을 나오면서 손을 씻는 걸 본 적이 없던 사람들의 손을 씻게 만들었고, 마스크를 쓰게 했다. 타인의 얼굴에 대고 기침을 하던 사람이 그렇지 않은 다수의 사람들의 눈치까지 보게 했다.

과도한 불안은 내 일상을 해치기도 하지만 약간의 예민함으로 지금처럼만 조금 조심스러워 지는것은 스스로를 위해서 타인을 위해서도 배려가 된다. 다같이 아주 조금 예민해 지기를 바란다.


사람들의 소리가 시끄러워서 노이즈 캔슬링(소음 차단) 이어폰을 갖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어 자꾸만 트위터 새로고침을 누르고 카카오톡에 빨간 숫자가 없는지 수시로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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