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당모의(作黨謨議) 10차 문제(文題) : 가장 좋아하는 음식 >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
지금껏 살아오면서 한 두 번 들어 본 질문이 아닌데도, 순위를 먹여 줄을 세워야 하는 질문에는 선뜻 답을 내놓기 힘들다. 내가 첫손가락으로 꼽는 게 뭐였더라. 좋아하는 음식은 상황에 따라 계속 바뀐다. 산을 오르고 내려와 다리가 풀리고 갈증이 밀려올 때엔 막걸리와 파전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되고, 전날 마신 소주 냄새가 아침까지도 계속 이어질 때엔 콩나물국밥이 최고가 된다.
"아 그게 말이지. 그때그때 다른데."
질문의 범위를 조금 좁혀서, 여름이 지나가고 바람이 차가운, 몇 년 전부터인지 가뜩이나 짧아진 가을, 낙엽이 떨어지는 이때에 가장 생각나는 음식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그건 쉽다. 뜸 들일 이유가 없다.
"지금이라면 역시 게국지가 최고 아니겠어?"
여행지 선택의 이유는 신중하게 찾는다. 굳이 이유를 붙이지 않더라도 떠나는 모든 곳이 좋긴 하지만, 매일 아무 때나 일상일 수 없는 여행이다 보니 하나 정도의 그럴듯한 이유를 고른다. 배흘림 기둥 무량수전을 품은 부석사가 있어 경북 영주를 찾고, 석양에 붉게 반짝이는 순천만 습지가 있어 전남 순천으로 떠난다. 그 지역을 직접 찾아가야만 만날 수 있는 것들이다.
여행지를 선택하기 위해 각각의 이유들을 따질 때, 다투는 것들이 언제나 볼거리인 건 아니다. 먹을거리만으로도 충분히 여행지를 고르는 이유가 된다. 그 지역에서만 먹을 수 있은 음식이 있다면 그것만으로 우리에겐 훌륭한 여행지이다. 먹는 것만큼은 진심인 아내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봄철, 충북 단양을 가는 이유는 쏘가리매운탕을 먹기 위해서이고, 돌솥에 갓 지은 곤드레나물밥이 당기는 날에는 내비게이션에 강원도 정선을 입력한다.
"재첩국 생각 안 나? 간 김에 섬진강변도 좀 걷고."
이따금씩 선을 넘는, 음식에 너무나도 진심인 아내를 진정시키기도 해야 한다. 재첩국 한 그릇을 먹기 위해 경남 하동까지 가는 건 과하다. 통영이나 여수 여행이 잡힐 때까지 참았다가, 가는 길 중간에 하동을 끼워 넣기로 한다.
충남 당진은 집에서 한 시간 거리이다. 평일 한산한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서해대교를 넘으면 당진이 나타난다. 당진을 가는 이유는 딱 하나, 당진에는 게국지가 있기 때문이다.
"게국지 먹어야 하는데."
올해 들어서 아직 한 번도 당진을 가지 못했다. 일단은 꽃게가 제철인 가을까지 기다려야 했고, 막상 가을로 접어들자 왜인지 없던 약속들이 많았다. 나보다 먹는 것에 조금 더 진심인 아내는 가을이 가기 전에 게국지를 꼭 먹어야 한다며 초초해했다.
"난 시간 많아. 약속이 많은 너가 문제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2년간 코로나에 적응이 된 건지, 밖으로 나가려는 결정이 둔했다. 10월이 지나고, 가을이 딱 한 달 남은 11월이 되자, 아내는 더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먼저 탁상달력을 집어 들고, 아직 일정이 적혀있지 않은 빈칸을 고르고는,
"이 날이 게국지를 먹는 날이야. 딴 약속 잡지 마."
하며 못을 박았다.
하늘은 제 색깔이 짙고, 고속도로는 시원하다. 게국지를 첫 끼니로 하려 속을 비운 채 당진으로 향하는 내내 아내의 표정도 하늘처럼, 고속도로처럼 밝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에선 유독 졸음을 참지 못해 늘 20분 정도씩 눈을 감는 아내가 오늘만큼은 생생하다.
"배 고프지 않아? 사탕이라도 줄까?"
"아니야. 됐어. 입맛 버려."
먹는 것만큼은 역시나 진심이다. 아내를 보며 내 기대도 차츰 차오른다. 기대하는 끼니가 주는 두근거림을 아내와 함께 즐긴다.
꽃게와 새우와 굴이 한창 맛을 뽐내는 가을, 그 가을을 듬뿍 담아내는 식당에, 가을향을 먼저 크게 들이마시는 아내를 앞세우고 문을 열어 들어간다. 그 지역에서 나는 제철의 식재료로 만든 음식. 그 계절에 그곳으로 직접 찾아가는 설렘. 그리고 그 음식을 나 만큼이나 좋아하는 아내. 더 무엇이 필요하려나. 숟가락으로 국물을 먼저 떠서 입에 넣는다. 당연하지만, 맛이 없을 리가 없다.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