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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Nov 18. 2021

미안한 김치죽, 감사한 김치죽

< 작당모의(作黨謨議) 10차 문제(文題) : 가장 좋아하는 음식 >

  “어느 것을 고를까? 척척박사님께서 알아맞혀 보세요, 딩동댕동 딩딩동!”

어느 하나를 골라야 하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흥얼흥얼 이 노래를 불렀다. 비단 결정장애가 있어 그런 것은 아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듯 우열을 가리기 힘든 지경에 처해 있음이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꼽으라니,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평생 먹고 살아온 음식 가짓수가 몇 개며, 어느 때 먹었던 시절의 음식, 누구와 먹었던 인연의 음식, 어떤 상황에서 먹었던 환상의  음식... 이 중에 최애 하는 음식을 고르라고? 이건 죽었다 깨나도 답을 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러나 굳이 꼽자면 나에게 있어 최애 음식은 단연 ‘김치’다. 김치 없으면 식음을 전폐할 정도이니 나를 구하고 살리는 음식일 수밖에 없다. 완벽한 한국 토종임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김치죽. 경상도에서는 ‘갱생이죽이라고도 부르며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가면 ‘꿀꿀이죽으로도 불렸다. 저렇게 고운 빛깔을 가진 음식에 하필 꿀꿀이죽이라니. 어렸을 적에는 꿀꿀이죽으로 표현되는 것이 싫었다.

 ‘돼지가 먹는 음식이란 뜻일까?’ 생각됐기 때문인데 ‘난 꿀꿀이죽 따윈 안 먹을 거야!’ 작심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치죽 냄비에서 구수하고 큼큼한 냄새가 올라오면 백기투항, 이내 결심을 접고 김치죽 앞으로 내달렸다. 꿀꿀 돼지 생각도 금세 잊혔다. 개망초꽃의 경멸스러운 이름에도 불구하고 앙증맞고 예쁜 꽃에 홀려 그 뜻을 잊어버리듯이.


  꿀꿀이죽은 유래 자체가 슬픈 음식이다. 한국전쟁 이후 5~60년대, 식량난에 허덕일 때 미군부대에서 버려진 음식이나 c-레이션 등을 섞어 끓여 먹었던 부대찌개와 결을 같이 한다. 식량은 궁한데 식구수는 많으니 양을 불려 먹어야 했다. 미국에서 받은 밀가루가 효자 역할을 했다. 김치에 물을 넣고 밀가루로 만든 국수나 수제비를 넣어 퍼지게 해서 걸쭉하게 끓여 먹었던 것이다.


  이것은 내 어릴 적에도 적용됐다. 김장김치가 익어가던 무렵부터 겨우내 김치죽을 끓여 먹었다.

 ‘오늘은 또 뭘 해 먹나?’ 먹성 좋은 대식구를 앞에 두고 엄마의 시름이 깊어질 때면,

 “김치죽 해 먹자.” 사 남매는 똘똘 뭉쳤던 것이고 가위 바위 보를 해서 김치죽 요리사를 정했다. 김치죽은 특별한 레시피가 필요 없고 요리사 마음대로 식재료를 다 때려 넣을 수 있었기에 뭘 넣지, 뭐가 좋을까 하며 재미있는 놀이로 여겼다. 단 하나, 이것저것 재료를 많이 넣으면 넣을수록 비주얼은 김치죽에서 그야말로 꿀꿀이죽의 형태로 변모한다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이었다.


찬물에 멸치를 넣고 묵은 김치 총총 썰고 식은 밥과 국수를 넣어 바글바글 끓이면 김치죽 완성!


  굵은 멸치와 쫑쫑 썬 신김치를 찬물에 무심히 던져 넣고 김치 국물 한 국자를 더하여 끓이기 시작하면 음식의 반은 성공한 거다. 바글바글 끓기 시작하면 식은 밥이나 국수, 수제비, 콩나물, 가래떡, 만두, 계란, 파, 김가루 등 먹고 싶은 재료를 내키는 대로 넣고 폭폭 끓여주면 김치죽이 완성된다.

그러나 헐렁헐렁해 보이는 이 요리에도 원칙은 존재했다. 김치죽을 만들기 위해 별도의 식재료를 구입하지 않는다는 것, 즉 ‘없으면 없는 대로 해 먹는다’가 제1원칙이요, ‘죽’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재료들이 푹 퍼지도록 ‘걸쭉하게 끓여야 한다’가 제2원칙이었다.


  고기도 없고 색다른 재료도 들어있지 않은 김치죽 냄비를 박박 소리 나게 긁어먹는 걸 보면 엄마는,

 “그게 무슨 영양가 있는 음식이라고 박박대고 먹냐? 이런 음식이 무에 그리 맛이 있을꼬...” 애처로운 눈길로 쳐다보셨다. 고기라도 양껏 사 먹이지 못하는 안타까움이었을 것이다.


커다란 냄비에 끓인 김치죽을 사이에 두고 남매의 젓가락질은 쉼이 없다.


  한동안 김치죽을 잊고 살았었다. 김치죽은 작은 냄비에 끓여 혼자 먹으면 그 맛이 살지 않아서다. 커다란 솥에 푹푹 끓여 내놓으면 국자가 꽂히고 젓가락과 숟가락이 난무(亂舞) 해야 하는 음식이다. 그러니 먹고 싶어도 입맛만 다시고 말았었다.


  ‘아, 김치죽이라면 한 사발이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간절히 김치죽이 고플 때가 있었다. 힘 없이 누워 천정을 바라보면 거기에 김치죽이 둥둥 떠다녔다. 입덧이 심해 속은 허하면서 거북할 때였는데 김치죽만큼은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음식 냄새에 비위가 상하니 끓여 먹기는 어렵고 죽집에 가서 한 그릇 사 올까 생각하던 참이었다.

 “집에 있으면 올라와. 같이 점심이나 먹게.”

위 층 사는 언니의 전화였다. 점심 먹을 마음은 없었으나 얘기할 대상이 있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세상에나, 세상에나, 언니... 김치죽이잖아! 내가 이거 먹고 싶어서 사러 갈까 망설이고 있었어요.”

 “뭘 이런 걸 사다 먹어. 후딱 만들어 먹으면 되지. 나는 임산부한테 이걸 먹자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마음에 걸려서 망설이다 전화했는데, 좋아한다니 잘됐네.”

언니는 먹으면서도 계속 맛있는 거 못해주고 이런 음식을 해줘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 말도 귓등으로 듣고 두 대접이나 먹고서는 뒤로 벌렁 나가떨어지고야 말았다.

 “뭔 김치죽을 숨도 안 쉬고 마시냐... 아이고!...”

그제야 언니와 나는 한바탕 웃어 젖혔다. 그 후로도 나는 김치죽이 먹고 싶으면 언니를 구워삶고 아양을 떨어 국수 잔뜩 넣은 김치죽을 얻어먹곤 했다. 나와 딸을 살린 고마운 김치죽이었다.



  그래서 김치죽은 미안함과 고마움이 공존하는 음식이자 내가 최고로 좋아하는 음식이다.

김치죽을 끓여주었던 사람들은 음식을 만드는 수고를 들임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이런 걸 음식이라고 해줘도 되는지 모르겠다, 미안하다.’라는 말을 했다. 엄마도 그랬고 위 층 언니도 그랬다. 그러나 나는 엄청 감사한 마음으로 김치죽을 먹었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 어디에도 그보다 맛있는 음식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에 미안한 음식은 없다. 다른 사람을 위해 준비한 음식에 ‘이런 음식’ ‘저런 음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음식 가지고 장난치면 지옥 가서도 그 음식 먹는댔다. 음식에 격이 따로 있지 않으니 괜히 음식 가지고 타박하지 말고 감사히 여기시길 바란다.


  그래서 나는, 커다란 냄비에 질펀하게 끓인 김치죽을 사이에 두고 젓가락 숟가락 세례를 퍼부으며 맛있게 먹어주는 아이들이 참으로 감사하다.


  김치죽은 미안한 음식이 아니고 감사한 음식이다.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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